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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토르 Mar 02. 2022

봄은 길을 잃고

 해가 바뀌고, 겨울바람이 힘을 잃고, 날짜는 부지런히 지나가는데, 모든 것은 자꾸만 나빠져 저 멀리서 오던 봄이 길을 잃은 듯합니다.


 세상을 멈추었던 팬데믹이 이제는 풍토병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이런저런 전문적인 분석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숫자는 저를 주춤거리게 합니다.


 지금 내가 언제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전쟁과 총성, 목숨을 건 결사항전에 대한 이야기가 시시각각 보도됩니다. 아, 아마도 이것은 내가 몰랐거나 모른 척했을 뿐 우크라이나 이전에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행 중이었을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비관하며,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답 없는 물음 앞에 무기력해집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우크라이나와 그와 같은 많은 곳의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모르면서, 천진한 아이처럼 지구는 돌고, 시간은 흐르고, 더디게라도 봄은 오겠지요. 봄날 흐드러지는 꽃을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 알 수 없는 흐릿한 죄책감을 동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올해 봄은 좀 더 선명한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봄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이 평안을 찾길 바랄 뿐입니다. 이 바람조차 이기적이라서, 한 인간이라서 미안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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