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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님 Feb 15. 2023

고쳐 쓰고 지우고 버리는 일

결혼생활이 짧긴 했지만 생각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다. 이사를 가기 전 둘이 함께 쓰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사를 할 때 함께 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서 이삿짐센터 분들이 헷갈려하지 않도록 분리하는 작업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물건들을 버리면서 아직 남아 있는 마음들도 함께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함께 썼던 가구들은 모두 버리고나 팔기로 했고 가전제품은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물건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와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가구들은 차마 다시 쓸 수가 없다 느꼈다. 


혹여나 나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매달리는 그 사람과 함께 다시 살게 될지 모른다는 미련이 물건을 하나 지우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솔직히 차마 버리지 못하고 미리 박스에 동봉해 놓은 물건들도 있다.  특히 웨딩앨범과 영상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있는 앨범과 영상은 버리기가 쉽지 않아 우선 들고 가기로 했다. 정말 내 마음이 완전하게 정리가 되면 그때 버려야 하겠다고.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하겠지만 나는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조금 덜 불행해지는 길이라고 믿으면서. 


사실 물건을 버리는 일 말고도 지우고 고쳐 써야 하는 것들도 아직 내게 많이 남아있다. 외도를 처음 알고 나서 인별에 있는 추억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지우다 멈추다 다시 복구시켰다가. 30일 뒤엔 완전히 삭제가 되는 우리가 행복했던 그 많은 추억들. 그도 내가 이혼결심을 내린 날 전부 다 지워버렸다. 나는 한동안 또 미련스럽게 지우며 울다가 멈추다가 하면서 결국 다 지워냈고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 글들을 수정해 나갔다. 이제는 남은 거라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나의 사진에 댓글을 단 그의 흔적뿐이다. 아마 그것도 이삿날 버려지는 짐들과 함께 영영 지워지겠지. 


생각보다 나는 지우고 고쳐 쓰고 하는 것들이 많았다. 평생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겼던 기록들. 그중 하나가 바로 블로그이다. 연애 초창기 때 협찬을 받아 간 곳들부터 여행, 결혼준비, 신혼여행, 일상들까지 그의 흔적이 없는 것들이 없었다. 수제청을 협찬받았을 때도 그의 이름이 언급이 되고 그 흔한 샴푸후기를 남기면서도 그의 이름을 언급한 나였다. 남편도 좋아했다고. 곧곧에 남아있는 그 흔적들을 지우고 고쳐 쓰며 현타가 왔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걸 알기 한 달 전 함께 간 마사지 게시글은 그와 헤어져도 한동안은 지울 수가 없다. 


이렇게 지우는 일이 번거로운 것보다는 정말 열심히도 써 내려간 그와의 추억이 허무하게 클릭하나에 사라지는 걸 보며 참 많이도 행복해지려고 애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 또한 그의 흔적으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와 관련된 기록이라기보다는 이 글은 이혼을 하게 된  나의 솔직한 심정을 기록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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