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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님 Feb 16. 2023

애증의 관계도 정리가 되겠지

이혼서류와 합의서를 작성해서 그에게 전달했다. 작성하면서 사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그가 법원 가는 날짜를 정하자고 말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정말 이혼하는 게 맞는구나 싶어서 덜컥 겁이 나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 한 잔을 하고 그가 없는 집에서 펑펑 울며 친구에게 너무 무섭다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연락을 했다. 이게 정말 나의 모습이고 마음이겠지. 그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마음 정리가 이미 끝난 그를 앞에 두고 바보처럼.


이혼하고 나서 후회한다는 글들이 내가 방문하는 카페에도 수없이 올라온다. 그중에 속이 시원하다 빨리 이혼할걸 그랬다고 하는 글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에 잘 휘둘리는 편은 아니지만 나도 그렇게 될까 사실 많이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용서해 줬는데 몇 년 뒤 또 바람을 폈고 여전히 바람을 피우고 있어서 결국은 이혼한다는 글들을 보면서 계속 함께 살면 언젠간 또 그가 외도를 할지 모른다는 그 두려움에 더 나를 갉아먹고 살지 않을까 싶어 한 발자국 나아가보려고 노력 중이다. 


서류를 접수하고도 한 달의 숙려기간 그리고 법원에 방문을 더 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과연 무사히 이혼을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정리가 안 된 상태로 이혼하는 게 맞긴 한 걸까. 혹시나 그가 다 감당하며 살 테니 본인을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하진 않을까. 그때 나는 과연 외면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많은 생각들이 나를 집어삼킨다. 물건을 버리고 글을 수정하는 일처럼 마음은 단 번에 끊어지지 않는다. 


요즘 이혼으로 이름이 자주 보이는 인플루언서가 공개한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글을 보며 그 마음이 내 마음 같아서 참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 지금도 많이 힘들 텐데 애써 아닌 척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외도를 알고 한 달은 그에게 울면서 매달려도 봤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니까.

그렇게 낮에는 회사에서 웃으며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하고 일을 하고 밤에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마 이혼 후에 내 주변 사람들은 잘했다 잘 선택한 거다 하겠지만 아마도 나 자신이 정말 괜찮아지기 전까지 나에게 그런 위로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아무 말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힘들고 지치고 얼른 시간이 훅 가버렸으면 좋겠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도 잊히는 상처는 아닐 테지만 적어도 희미해지거나 무뎌지길 바라면서. 이 애증의 관계가 하루 빨리 정리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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