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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27. 2024

[고전문학BOOK클럽]사뮈엘 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

샛별BOOK연구소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민음사, 158쪽.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1952)는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됐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관객들은 내용과 형식이 새로워 충격 속에 빠졌다고 한다. 20세기 후반 서구 연극사의 방향을 돌려놓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이 된 연극. 극은 어느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언덕 밑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를 기다리며 시작된다. 둘은 심심함을 견디기 위해 어릿광대처럼 횡설수설하거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낸다. 아니 시간을 때운다가 맞을 것이다. 하릴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상황. 이들에게 포악한 주인 포조와 하인 럭키도 나타나며 극은 활기를 띤다. 또 낙담하며 삶의 끈을 내려놓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소년이 나타나 희망고문을 한다. 오늘은 고도가 못 왔지만 내일은 꼭 올 거라고. 고도 씨가 전해달라고 했다고. 


표지 사진 감사합니다. 샘들~ 


  <고도를 기다리며>를 구성하는 1막과 2 막은 대칭구조를 형성한다. 1막과 2막이 순환, 반복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동작이나 어법 같은 구성 요소들도 치밀하게 반복, 배치되어 있어 극의 주제를 강조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두 떠돌이가 만나 고도를 기다리는 설정은 1막과 2막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의 디테일은 있다. 늘 일상이 반복되는 거 같아도 모든 날들은 다르다. 


  <고도를 기다리며> 제1막 시작은 에스트라공(고고)이 돌 위에서 구두를 벗는 장면이다. 이때 블라디미르(디디)가 등장하며 “구두는 매일 벗어야 한다고 그랬잖아?”(p.12)라며 자신의 말을 좀 들으라고 충고한다. 에스트라공은 있는 힘을 다해 구두를 잡아 빼고 구두 속을 들여다보고, 손으로 더듬어보고, 뒤집어본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우스꽝스러운 질문과 대답을 하거나 장난도 치고 춤도 추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이 짓을 하는 게 너무 힘들다. 50년 넘게 이 짓을 하며 고도를 기다려 왔다. 


필사 감사합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하루 종일 고도를 기다린다. 하루해가 다 지날 무렵 기다림에도 한계가 왔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에스트라공은 소년에게 “왜 이렇게 늦게 왔냐?”(p.83)라고 물어보고 블라디미르는 “너 고도 씨의 부탁을 받고 온 거지?”(p.83)라고 묻는다. 소년은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p.84)고 했다며 1막이 끝난다.  2막에서 소년은 다시 등장하며 거의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무대에는 포조는 럭키가 등장한다. 럭키는 목에 끈이 묶여 있고 트렁크와 바구니를 들고 있다. 포조는 끈을 잡아당기며 럭키에게 “일어서, 이 망할 놈아!”(p.34) 소리치거나 채찍 끝을 럭키의 가슴에 대고 밀어낸다. 럭키는 트렁크를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몸이 기울어지다가 허리를 펴다가를 반복한다. 1부 끝에선 포조는 럭키를 생 소뵈르에 팔러 간다고 했다. 2부에 포조는 눈이 멀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다시 등장한다. 





  고고와 디디의 기억력도 쇠하고 판단력도 흐려 고도를 만날 장소와 시간조차 수시로 헷갈려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인식한다. 버드나무에 에스트라공은 “목이나 맬까”(p.156)라고 하자 블라디미르는 “무얼로”(p.156)라고 하면서 허리띠를 풀어 끈이 튼튼한지 살펴본다. 그러나 끈이 끊어지자 내일은 더 튼튼한 끈을 가지고 오자고 하면서 에스트라공은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하겠다.”(p.158)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어 블라디미르는 "내일 목이나 매자.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라고 한다. 블라드미르도 지쳤나 보다. 그런데 단 조건이 있다. 고도가 안 오면 목을 맨다는 것. 에스트라공은 다시 묻는다. 만약 고도가 오면? 이라고. 블라디미르의 마지막 말 "그럼, 살게 되겠지" 이들에게 고도는 죽음과도 연결된다. 


  고도가 오지 않으면 죽을 것이고 고도가 오면 살 것이다. 그런데 고도는 오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행위는 고도가 아닌 '기다림'에 있다. 삶에서 무엇을 기다리는 행위는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그 기다림은 천국일 수 있고 행복일 수 있다.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기다림. 오늘은 슬프지만 내일은 기쁠 것이라는 기다림. '고도'의 자리에 무엇을 넣어도 다 가능한 형태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기다림이 없다면 오늘 당장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삶에 내일이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고고와 디디처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삶이라는 부조리를 이토록 간단하고 선명하게 '고도' + '기다림'으로 연출하다니.


  우리, 함께, 고도를 기다리자.





발췌



1부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한다. 기를 쓰며 두 손으로 한쪽 구두를 잡아당긴다. 끙끙거린다. 힘이 빠져 그만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같은 동작이 되풀이된다. 

블라디미르 등장.

2부

다음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푸트라이트 가까이 에스트라공의 구두 두 짝이 놓여 있다. 뒤꿈치는 모아져 있고 앞축은 벌려져 있다. 럭키의 모자도 같은 자리에 있다. 

나무에는 잎이 조금 달려 있다. 

블라디미르가 활기 있게 등장한다. 



에스트라공 구두를 벗고 있는 거다. 너한텐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냐?

블라디미르 그러게 그전부터 내 뭐라고 하데? 구두는 매일 벗어야 한다고 그랬잖아?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단 말이다.

에스트라공 (약한 소리로) 좀 거들어줘!

블라디미르 아프냐?

에스트라공 아프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냐?

블라디미르 (화를 내며)이 세상에 고통을 당하는 게 너 하나 밖에 없는 줄 알아?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거지. 네가 내 입장이라면 무슨 소릴 할는지 보고 싶구나. 당해 봐야 알 거다.

에스트라공 너도 아팠냐?

블라디미르 아팠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에스트라공 (집게손가락을 가리키며) 그렇다고 단추까지 안 끼고 다닐 거야 없지 않아?(p.12)



블라디미르 왜 그렇게 말하겠지. (사이) 그래, 얘기해 봐라.

소년 (단숨에)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블라디미르 그게 다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 넌 고도 씨 밑에서 일하고 있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 고도 씨는 너한테 잘해주냐?

소년 네.

블라디미르 때리진 않니?

소년 아뇨, 난 안 때려요.

블라디미르 그럼 다른 사람은 때리고?

소년 제 형은 때려요.

블라디미르 아, 너 형이 있구나? 

소년 네. (p.87)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31297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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