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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r 09. 2024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후기(feat.국립극장 달오름

샛별BOOK연구소

고도를 기다리며

장르: 연극

150분

기간: 2023.12.19-2024.2.18.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1953년 1월 5일 파리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무엘 베케트가 쓴 희곡이다. 그의 작품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이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건 사무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난 1969년 12월이었다고 한다. 2023년 12월에 선보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블라디미르에 박근형 배우, 에스트라공에 신구 배우가 맡았다. 포조는 김학철 배우, 럭키는 박정자 배우가 각각 맡았다. 전석 매진이라 표 구하기가 어렵다. 책은 난해한데, 연극도 어려운데 사람들로 꽉꽉 차는 공연이라니. 이유가 뭘까.    




  무대는 단출하다. 나무 한 그루 덩그러니 서 있다. 소품도 거의 없다. 돌 하나 놓여 있다. 조명도 단출하고, 음악도 없다. 무조건 연기로 승부해야 하는 연극이다. 신구 배우와 박근형 배우는 최선을 다해 호흡을 맞췄다. 에스트라공이 신발을 벗으며 시작되는 연극이다. 블라디미르는 시종일관 에스트라공 옆에 붙어있다. 안 그래도 나이 많은 배우들을 더 늙어 보이게 분장했고, 낡은 의상을 입혔다. 가난한 노숙자처럼 이들은 초췌하고 더욱 비루해 보였다. 




 포조의 성량은 우렁찼고, 럭키의 관절은 삐거덕거렸다. 비인간적인 장면에 압도되는 무대. 박정자 배우께서 럭키라니... 럭키 목에는 밧줄이 매여있다. 밧줄을 당기고 풀어주며 럭키에게 명령하는 포조. 포조의 말을 잘 듣는 럭키. 럭키는 큰 트렁크와 바구니를 들고 있다. 압권은 역시 럭키의 대사. 8분 정도 이어지는 대사를 박정자 배우는 특유의 발성과 몸짓으로 읊었다. 럭키가 하는 말은 무의식의 세계. 혼돈의 언어였다. 언어조차 부조리한 상황이다. 



 연극 내용은 간단하다. 고고는 신발을 신고, 디디는 모자를 쓰고 서로 의미 없는 말들을 주고받다 포조와 럭키가 오면 구경하고 또 지낸다. 하루가 너무 지루해 죽음을 생각할 때 꼭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내일 고도가 온다고 말하고 나간다. 다시 2막. 1막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연극은 2막에서 끝나지만 만약 3막이 있다면 또 1막과 같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는 인생이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진 게 너무 없다. 가진 게 없는 건 인간의 한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일을 기다리는 일뿐. 




  고고(에스트라공)와 디디(블라디미르). 둘은 50년을 이 짓을 하고 살았다. 50년 전에 죽으려는 고고를 디디가 구해주고 인연이 된 거 같다. 고고는 늘 자살을 생각한다. 그만 삶을 끝내려 하지만 디디는 고도가 온다니 곧 기다리라고 말한다. 디디가 말하는 고도는 희망, 꿈, 내일, 이상, 신, 구원 등등일 수 있지만 나는 고도=죽음으로 읽혔다. 이들이 확실한 건 고도가 온다는 사실 만이다. 다른 것들은 잘 모른다고 대답하지만 고도가 온다는 건 확실히 알고 있다. 




  인생에 자명한 건 죽음뿐이다. 인간은 꼭 죽는다. 그 외에는 모두 불확실하다. 알 수 없다.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죽음을 기다리며로 읽혔던...연극을 그렇게 보고 온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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