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여름>, 이디스 워튼, 민음사. (264쪽 분량)
최초 여성 퓰리처 수상 작가 이디스 워튼의 <여름>(1916)은 미국 뉴잉글랜드 한적한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시간적 배경은 늦봄에서 한여름을 거쳐 초가을까지다. 사랑하기 좋은 여름. 첫사랑의 뜨거움이 여름을 닮았다.
로열 변호사의 집에서 지내는 채리티 로열은 ‘오노리어스 해처드 기념 도서관, 1982’(p.12)의 사서다. 주인공 채리티가 “모든 게 지긋지긋해!”라고 생각할 때 뉴욕에 온 남자가 도서관으로 들어온다. 그는 채리티에게 “색인 카드가 있나요?”(p.14)라고 묻는다. 자신은 건축가이며 이 지역 옛날 집들을 찾아다닌다고 알려준다. 채리티는 색인 카드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이 지방의 역사에 관한 책이 있나요?”(p.17)라고 묻는다. 둘의 첫 만남이다. 하니가 방문한 후 채리티는 기분이 좋아 도서관 문을 일찍 닫아버린다.
점심을 먹고 로열 씨는 채리티에게 “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날에 도서관을 비운 거지?”(p.40) 말한다. 채리티는 “제가 자리를 비웠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묻더니 어제 4시쯤 자리를 비웠을 때 해처드 부인과 루리어스 하니가 왔다간 사실을 알게 된다. 채리티는 지금 당장 그 낡아빠진 도서관을 그만두겠다며 씩씩거리며 도서관에 가 장부를 챙겨 해처드 부인에게 가려고 한다. 이때 하니가 도서관에 들어오고 채리티는 어떤 상황인지 듣는다. 하니는 “제가 아가씨의 가슴을 아프게 할 어떤 일을 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p.49)라며 덧붙인다.
채리티는 하니에 대한 오해가 풀리자 친해진다. 하니는 옛집을 찾아다니고, 채리티는 동행한다. 둘은 햅번에서 네틀턴행 기차를 타고 독립기념행사를 보러 간다. 하니는 시계가 멈춘 것을 발견하고 고치러 들어간 보석상에서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들어?”(p.125)라고 채리티에게 묻는다. 채리티는 금으로 만든 은방울꽃 장신구를 가리켰지만 “푸른색 브로치가 더 나은 것 같지 않아?” 하더니 브로치를 선물한다. 브로치를 선물받은 채리티는 감격해하면서 ‘하니는 절대 약혼반지를 사 주지 않을 것’(p.133)이라고 생각한다.
친구 앨리가 채리티에게 손질 중인 볼치 양의 블라우스를 보여주며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앨리가 “볼치 양이 떠나기 전에 나보고 뭐랬는지 알아? 스프링필드로 나를 불러다 결혼식에 입을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겠다지 뭐야.”(p.199)하며 “난 몰랐는데…… 여기 사람들 말로는 볼치 양이 하니 씨와 약혼했다고 하던데.”(p.200)덧붙인다. 채리티는 이 소식을 듣고 하니에게 편지를 쓴다.
'만약 당신이 애너벨 볼치와 결혼을 약속했다면 그녀와 결혼했으면 해. 당신은 그 일로 내가 몹시 가슴 아파할 거라고 걱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나는 당신이 옳게 행동했으면 하는 마음이야.
당신을 사랑하는 채리티'(p.203)
사랑하는 채리티에게
당신의 편지를 받고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큰 감동을 받았어. 그 답례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 말을 믿어 주지 않겠어? 이 세상에는 설명하기 힘들고 정당성을 증명하기는 더더욱 힘든 일 들이 있지. 하지만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이 모든 일을 훨씬 쉽게 만들어 주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나를 이해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뿐이야. 내가 옳게 행동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말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 만약 우리가 꿈꾼 것을 실현할 희망이 있다면 당신은 당장이라도 나를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아직 나는 그런 희망을 잃지 않았어.
채리티는 편지를 서둘러 읽었다. 그러고 나서 읽고 또 읽었고, 매번 점점 천천히 정성을 들여 읽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들로 쓰여 있어 네틀턴에서 성서 그림을 설명해 주던 신사의 말만큼이나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그 의미의 요점이 마지막 구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우리가 꿈꾼 것을 실현할 희망이 있다면……." (p.208)
하니의 답장을 받은 채리티는 임신한 사실을 알고 병원에 다녀온 후 ‘산’에 간다. ‘산’은 그녀의 고향이며 어머니가 있는 곳이며 도피처다. 산에 가는 도중 마일스 목사를 만난다. 목사는 “얘야, 네 어머니가 지금 돌아가시려고 한단다. 리프 하이엇이 나를 데리러 내려왔지……. 마차를 타고 우리와 함께 가자.”(p.221) 채리티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고 자신이 태어난 집을 목격한다. 어머니는 관도 없이 땅에 묻히고 채리티는 무덤 가장자리에서 기도한다. 마일스 목사는 이제 내려가자고 하자 채리티는 “전 가지 않을래요. 이곳에 남을 거예요.”(p.234)라며 산에 남는다.
로열 씨는 채리티가 있는 ‘산’에 와 그녀에게 청혼한다. 채리티는 “아, 그럴 순 없어요…….”(p.246)라고 말했지만 결국 승낙한다. 채리티는 로열 씨가 있는 곳이면 ‘온기와 휴식과 침묵이 있으리라는 것’(p.249)을 알았고, 그녀가 바라는 것이 이게 전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은 한 여성의 진취적인 행동, 사랑을 향한 열정, 자존심, 모성애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니를 통해 분별력과 이기심, 배신을 볼 수 있다. 로열을 보며 자기충족, 부성애, 인내를 본다. 채리티에게 사랑은 여름처럼 뜨겁고, 폭풍우 치며 찬란하고 우중충했을 것이다. 하니를 향한 사랑은 꺾였지만 브로치를 찾았고 간직하게 됐다. 채리티에게 사랑은 지나갔지만 아직 가을과 겨울이 남았다. 채리티는 여름을 추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작품은 당시 사랑의 한 형태를 표현했다. 또 신분적 한계와 여성의 능력, 시골마을의 따분함, 배신과 사랑, 계층 간의 갈등을 볼 수 있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과 결혼하는 현실은 고통스럽다. 로열의 아이는 또 어떻게 키울 것인가. 그럼에도 채리티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선택을 했다. 하니에게 매달리지 않고, 로열에겐 연민을 베푼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현실을 선택하는 채리티. 하니와의 여름은 끝났지만 로열과 가을, 겨울이 남았다. 그녀에게 남은 사랑이 브로치만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