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Aug 19. 2024

[토론하는 밤길] 김희재 <탱크> 토론 후기

샛별BOOK연구소 

김희재 장편소설 <탱크>, 한겨레출판, 2023. (280쪽 분량)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탱크>는 김희재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 김희재는 영화를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인물들은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난다. 주인공 둡둡과 양우는 <007 노 타임 투 다이>라는 영화 채팅방에서 만나 연인이 된다. 둘은 함께 지낸다. 둡둡은 양우에게 '탱크'라는 존재를 말한다. 양우는 둡둡이 믿으니까 최대한 '탱크'를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믿지 않을 때 타인의 믿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탱크'는 미국에서 루벤이란 사람이 만들었다. 루벤은 입양됐고, 이방인이었다. 탱크는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무너진 자신감, 믿음을 되찾을 수 있는 도구였다. 루벤은 '자신을 믿는 힘을 되찾는 방법'(p.61)을 고민하던 끝에 공간을 생각했다. '교회, 성당, 절, 사당과 같이 전지전능한 존재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p.62)이 있듯이 루벤은 컨테이너를 설치해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탱크'라고 불렀다. 루벤은 사람들에게 믿는 신이 없어도 이곳에 들어가 기도를 하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명상을 해보라고 권했다. 루벤을 알게 된 황영경은 탱크에 들어가 어린 소녀를 만난다. 교복을 입은 슬픈 소녀. 목구멍 뒤로 울음을 삼키는 소녀. 그 소녀는 황영경의 어린 시절이다. 탱크에서 황영경은 자신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탱크에서의 강력한 체험은 탱크를 한국에 세우기로 결심한다. 


  탱크 이야기를 들은 손부경은 언니 황영경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한다. "언니, 정신 차려. 언니, 그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사이비야. 언니. 그런 거에 빠지면 인생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라고."(p.69) 하자 황영경은 손부경에게 네가 임용에 떨어지는 건 스스로의 믿음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대받아 친다. 속이 타는 손부경이다. 황영경은 회계사에 도전했고 바라던 대로 됐다. 황영경은 탱크 커뮤니티를 만들고 '탱크의 세기'(p.72)라고 이름 붙였다. 탱크 방문예약과 규정을 만들고 노쇼를 위해 예약금을 받았다. 예약자가 왔다간 게 확인되면 예약금은 돌려주는 형태였다. 


  둡둡은 탱크를 여러번 방문하는 이용자였다. 둡둡은 탱크에서 무엇을 믿게 되었을까. 둡둡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모님께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둡둡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아들이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둡둡은 집에서 나와 양우를 만났고, 같이 살면서 둡둡은 자신이 믿는 탱크를 얘기한다. 양우는 둡둡이 믿는 탱크를 직접 가서 봤지만 더 믿지 못했다. 다 낡고 녹슬고 초라한 컨테이너가 간절히 원하면 기적을 이뤄준다니... 


  양우는 둡둡에게 묻는다. '정말 이 컨테이너가 너랑 나를 이어줬다고 생각해? 이것 덕분에 네가 같은 삶을 지향하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해? 혹시 다른 사람의 기도가 이뤄진 것도 본 적 있어? 그 질문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p.103)이었지만 둡둡은 양우의 질문을 왜곡했다. 날선 감정들은 헤어짐으로 귀결되고 영영 이별한다.  


  둡둡은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이 컸을까. 자신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견디지 못했을까.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외면받는 자신이 괴로웠을 것이다. 탱크에서 자신을 찾으려 했던 둡둡. 소설은 둡둡을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는 둡둡의 죽음을 알 길이 없다. 둡둡이 죽은 후 탱크예약 담당자, 가족, 양우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자신들이 둡둡을 지켜주지 못한 거 같다. 


  양우와 둡둡, 황영경과 손부경의 관계를 통해 믿는 자와 믿지 않은 자를 본다. '탱크'를 강하게 믿는 둡둡과 황영경, 탱크를 믿지 않는 양우와 손부경의 차이는 무엇일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간극은 멀고도 멀다. 타인이 믿는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소설은 질문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해 타자의 시선이 따가울 때 그 믿음은 한없이 흔들린다. 둡둡은 '탱크'에서 무엇을 기도했을까. 자신을 믿지 못했던 둡둡에게 기적은 없었다. 


"어떤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문제였다" 둡둡은 살기 위해 탱크를 붙들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둡둡을 사랑하는 엄마, 아빠, 양우가 있었음에도 그걸 알지 못했다. 둡둡을 위해 죽으려 하는 양우나 둡둡을 사랑했던 아빠의 마음이 조금만 둡둡에게 닿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탱크가 소실되었듯 둡둡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탱크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세울 공간은 필요하다. 그것이 꼭 '탱크'가 아니어도 말이다. 타자의 관계가 탱크가 될 수 있고, 나에 대한 믿음이 탱크가 될 수 있다. 인간에게 어떤 행태로의 '믿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소설은 보여준다.  


등장인물



-둡둡: 영화를 좋아함. 대학생. 

-최양우 : 공장에 다님. 작년 여름 <007 노 타임 투 다이>채팅방에서 둡둡을 만남. 

-황영경: 손부경과 열한 살 터울의 이부자매. 외국계 기업의 경리로 취직. 미국 출장에서 루벤을 만나 탱크에 감. 한국에 탱크를 세움. 

-손부경: 탱크 예약 매니저. 마을 이장과 연락. 

-도선: 시나리오 작가. 토익학원에서 제임스를 만남. 영화를 많이 봄. 제임스와 캐나다로 건너가 딸(로사)를 낳고 이혼.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옴. 

-강규산: 둡둡의 아버지. 둡둡을 이해하면서도 외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탱크라는 공간에 대해

-'탱크의 세기' 커뮤니티의 폐쇄에 대해. 

-탱크가 소실되고 다시 탱크를 세운다는 부분에 대해.

-탱크를 세운 목적은 '믿음의 힘과 기도의 힘'(p.208)을 알리는 것에 대해

-둡둡과 최양우의 관계에 대해

-황영경과 손부경의 관계에 대해

-탱크를 다시 만들려는 황영경에 대해.

-둡둡의 커밍아웃을 바라보는 강규산과 그의 아내에 대해.

-둡둡이 믿고 있는 탱크를 바라보는 양우에 대해.

-둡둡과 양우가 싸우는 부분에 대해.

-탱크가 소실되는 부분에 대해.

-탱크를 믿는 황영경과 둡둡, 믿지 않는 손부경과 양우에 대해.

-마지막 장면에 대해.

-탱크가 사회에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탱크라는 공간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에 대해.

-탱크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

-탱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남/여의 대사)에 대해. 

-그 외 


샘들의 소감 



-믿음에 대해서 말하려는 부분이 좋았다. 

-인물들이 납작한 부분이 있었다.

-둡둡의 죽음이 뚜렷하지 않았다.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믿음을 얘기하는데 답답함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 마음은 모르면서, 탱크만을 쫓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가독성이 좋지 않았다. 

-읽으면서 촘촘한 부분도 있었고 완성도는 좋다고 생각했다. 

-종교를 말하고 싶은 걸 말하지 애매했다.

-탱크라는 존재는 강인하다. 

-나를 방어할 힘이 없을 때 나를 보호받고 싶을 때 탱크라는 공간을 찾아간다.

-읽으면서 우울감을 느꼈다.

-산불이라는 사건이 글의 구성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탱크가 산불에 소실되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여성의 희망, 공동의 소망 등을 생각한다. 

-퀴어 문제, 성소수자 문제를 살며시 드러내고 있다. 

-그 외 



[토론하는 밤길]에 오신 샘들 감사합니다. 



발췌



컨테이너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황영경을 향해 그는 웃었다.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그렇게 발견한 새로운 자아가 한 번도 내디뎌본 적 없는 세계로 자신을 이끌면 그때부터는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세계에든 속할 수 있고 어떤 세계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p.65)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신에게 기도를 올렸고 명상을 했고 자신의 의식을 고양시켰다. 만약 누구나 조용히 기도하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바로 그 공간에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기도할 수 있다면 누구든 책에 나온 세계관을 더 빨리 실현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p.62)


집엔 아무도 없었어. 혹시나 해서 안방으로 가봤는데 거기에도....... 나는 생각했어. 이게 무슨 뜻일까. 여전히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건가. 몸이 한없이 꺼지는 것 같았어. 문득 내가 바라는 일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기도가 이번에는 이뤄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다시 그 집을 나왔어. 우리 집에 가자 내 집에 가자 생각하면서......." (p.98)


끝날 듯 말 듯 계속 이어지던 둡둡의 이야기는 흐릿하게 사라졌다. 말을 마친 둡둡은 집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지친 얼굴이었다. 양우는 가슴이 아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둡둡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양우는 조용히 일어나서 밥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 미역을 제대로 불리지도 않고 바로 볶았다. (p.98)


아이가 왔다 간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울었다. 강규산도 눈물이 났다. 강규산은 장을 보는 내내 아이에게 해줄 말을 고르고 골랐다. 잘 지냈니, 밥 많이 먹고 좀 쉬어라, 저번엔 미안했다. 다시 돌아오니 좋구나....... 강규산은 어떤식으로든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알릴 생각이었다. 물론 아직 아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이해하지 않아도 아이는 아이였다. 늙어 죽을 때까지 아이는 우리의 아이, 나의 아이였다.(p.112)


산속엔 도선 혼자였다. 도선은 산을 내려가면서 엉엉 울었다.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냈다. 커뮤니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적 어도 세 번은 실컷 울어야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우는 건 일 종의 통과의례라고. 도선은 그 사람의 말이 맞길 바랐다. 자신이 너무 절망적이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우는 것이기를 바랐다. (p.140)


무언가가 양우를 조금씩 삶에서 밀어내는 것 같았다. 둡둡도 이랬을까. 둡둡도 이렇게 조 금씩 삶에서 밀려나다가 어느 순간 어어, 하면서 완전히 밀려나게 됐을까. 양우는 후회했다. 둡둡과 같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둡 둘이 떠나게 둔 것을. 결국 둡둡 혼자 있게 한 것을. 그리하여 무 엇이 둡둡을 삶에서 밀어냈는지 영영 알지 못하게 된 것을. (p.174)


기억나니. 너는 그게 나만의 생각이라고 했지. 사람들은 자 신의 믿음을 믿는 게 아니라 탱크를 믿는다고,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잘못된 숭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야, 너는 언젠가 사람들이 탱크를 신으로 모시게 될 거라고 했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탱크 안에 가만히 앉아 억만장자가 되게 해달라고 비는 신자 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했어. 그때 난 네가 나를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기도하는 이들을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았어.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너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런데 부경아, 그거 아니.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거. 너는 삶을 방어하듯 살지. 늘 최악의 것을 먼저 상상하고 그래야 최악의 것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실제로 최악의 것이 오더라도 깊이 상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지. 네가 틀렸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가끔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어. 하지만 자꾸만 최악을 상상하는 것 역시 습관이고 습관은 종국에 인생을 바꾼단다. 최악을 상상하며 사는 인생이라니. 그건 좀 슬프지 않니.(p.181)


손부경은 전소된 컨테이너를 다시 바라보았다. 한결 세진 바람 때문에 손잡이를 잃은 컨테이너의 문이 무겁게 삐거덕거렸다. 손부경은 황영경이 보낸 편지가 떠올랐다. 어떤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다시 컨테이너를 들여올 수 있지. 어떻게 그 컨테이너에서 또 기도를 하게 할 수 있지. 손부경은 당황하여 발밑만 바라보았다. 그사이 바람이 바닥을 쓸며 올라왔고 컨테이너의 문 이 또한 번 삐거덕거렸다. (p.189)


받아들여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걸 꽤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잃게 마련이고 그러면 계속 이렇게 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버티는 사람이었다. 최소한의 음식과 최대한의 잠, 약간의 햇빛, 사치라고는 매일 보는 똑같은 영화가 전부인 사람. 그는 남아 있는 사람이었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양우였다. 양우는 한참 만에 고개를 들었다. (p.203)


살다 보면 누군가를 잃게 마련이고 그러면 계속 이렇게 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믿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버티는 사람이었다. 최소한의 음식과 최대한의 잠, 약간의 햇빛, 사치라고는 매일 보는 똑같은 영화가 전부인 사람. 그는 남아 있는 사람이었고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양우였다. (p.203)


늘 그랬듯 모든 미래는 빠짐없이 과거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쓴다. (p.204)


하지만 양우는 끝내 탱크의 부활 소식을 보고야 말았고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탱크가 다시 생길 수 있지? 어떻게 커뮤니티가 다시 생길 수가 있지? 양우는 벌떡 일어나 새로 만들어졌다는 커뮤니티를 찾기 시작했다. (p.226)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서 죽었다고, 그렇지만 그게 탱크의 잘못이나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었다고, 그것은 무언가를 강하게 믿고 희망을 가질 때 따라오는 절망의 문제였고, 세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맞닥뜨리는 재해에 가까웠다고. 그러니 언젠가 당신에게도 재해가 온다면 당황하지 말라고, 대신 잠깐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보라고. 그러면 한 번도 기다린 적 없던 미래가 평생을 기다린 모양을 하고 다가오는 날이 올 거라고. (p.261)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5300948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