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에세이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배수아 옮김, 봄날의 책, 2014.(807쪽 분량)
한 달 동안 <불안의 서>를 읽고 필사, 낭독했습니다. 여름 내내 페소아와 함께 했네요. 다섯 번 ZOOM으로 만나 낭독하고 잠깐 미니단상을 나눴습니다. 낭독할 때마다 샘들께서 읽고 싶은 챕터를 세 군데 정도 올렸고, 그 부분을 낭독하고 고른 이유를 말씀했어요. 이 책을 겨울에 읽었으면 어땠을까요. 더 우울했을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여름에 읽어 다행이었라고 했어요. 삶을 고민하는 문장들을 새기기에 여름날씨는 방해요소였어요.
하지만 <불안의 서>엔 풍경묘사가 많아 햇빛과 장마가 반복되는 계절과 알맞기도 했어요. 우리는 <불안의 서>를 들고 포르투갈 리스본에 가자고 필사하고 낭독할 때마다 말했어요.
문장마다 '불안'이 내포되어 우리를 흔들었습니다. 작가는 이토록 감정을 쏟아내는지 문학적 표현에 놀랐습니다. 페소아 문장은 예술이고 생각은 철학이고 표현은 시였어요. 페소아를 그토록 사랑한 배수아 작가님이 이해됐어요. 배수아의 번역이어서 그 묘하고 알듯 말듯 잡히지 않는 문장들이 더 페소아스러워 좋았습니다.
'내일이면 나 또한, 생각하고 느끼는 이 영혼, 나에게는 우주 자체나 다름없는 나 자신도, 내일이면 이들 거리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 사람이 요즘 왜 안 보이는 거지?”하고 문득 떠올릴 것이다.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은,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던 행인 하나가 줄어든 사건으로 요약되고 말 것이다.' (p.788)
7월 31일 <불안의 서> 필사도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 장 마지막 문단입니다. 마지막 낭독 때 우리는 술과 차를 들고 모였습니다. 잔잔한 음악도 틀면서요.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잠깐 열을 식혔다 쌀쌀해지는 가을에 다시 펼쳐보기로 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창가에서 한 줄 읽어도 괜찮겠죠. 우리 일상을 보내다 문득 페소아 문장이 그리우면 단톡방에 '불안의 서 번개'하자고 말했어요. 그때 책장에 꽂혀 먼지가 앉은 <불안의 서>를 꺼내 잠깐 만나기로요. 이때는 뜨거운 라떼나 핫초코, 뱅쇼도 좋겠네요. ㅎㅎ
7월 페소아 문장을 읽고 필사하고 낭독하는 샘들이 계셔 뜨거웠던 불멸의 밤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페소아 작가님~~ 기다려 주세요. 곧 만나러 갈게요.
낭독 후 소감
-편의점 사장님을 말했듯이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마지막 낭독 감사하다. 이 책이 처음에 읽을 때 표현이 좋다~ 이런 생각은 했지만 우울하고 무겁고 읽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버티고 나니까 즐기면서 읽고 마음의 감동도 받고,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OO 샘)
-낭독, 책을 함께 읽고 하는 경험이 좋았다.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저의 생각이랑 살짝 달라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요, 그러면 너무 힘들잖아 이러면서 읽기도 했다. 다른 분들이 주는 문구, 해석, 나눔의 경험이 좋았다. 목소리가 좋으신 분들이 계셔 좋았다.(OO 샘)
- 한 달 동안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데 칭찬한다. 함께 마무리까지 해서 좋았다. 낭독의 매력이 느껴진다. 낭독하면서 샘들의 감상을 들으면서~~ 그냥 흘리면서 넘겼던 페이지가--- 다시 보게 됐다. 함께 낭독하는 힘. 페소아가 리스본의 야간열차에도 계속 등장하고, 화폐도 있어서~ 아 진짜 놀라운 작가를 알게 됐다. 포트와인~ 롯데 19천 원. 맛있다고 하니 구입하길 ㅎㅎ (OO 샘)
- 낭독을 하면서 필사를 못 따라간 책이었다. 필사를 하면서 좋았던 부분이 많았다. 필사를 계속 이어가야겠다. 작가를 통해서 삶의 감정들을 이렇게 쓰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를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같이 낭독해 더 좋았던 책, 시너지가 일어났던 책~이다. 중간중간 페소아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속도가 더뎠다. (OO 샘)
- 낭독이 줄어드는 시간이 아쉬웠다.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쉬웠다. 처음 불안의 서를 읽을 때 너무 몰입이 안 돼서 졸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길을 찾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불안, 어두운 감정들에 대해서 피해 가고 싶은 심리. 그런 감정을 직면하면 서 더 딥해질 수 있어 외면했던 거 같다. 어는 순간에 이 시간만큼은 실컷 누려보자. 작가 따라가면서 누려보자라고 했더니 너무너무 문장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느끼는 시간들이 해방감을 주는구나. 그냥 흘러가는 느낌 그대로가 좋았다. 투명한 습자지같이... 문장에 심취했고, 황홀했던 시간이다. 선생님들 낭독할 때 좋아하는 챕터에서~ 샘들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OO 샘)
-페소아를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페소아는 수려한 문장으로 기억될듯합니다. 낭독하기 정말 좋은 책. 함께가 아니면 절대 완독불가였던 책을 함께 해서 완독할 수 있었어요. 좋은 추억을 또 하나 갖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OO 샘)
-페소아 알게 돼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다른 책에서 페소아를 만나게 되는 동시성 경험도 했고요. 어떤 책보다 마음에 머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체념할 수 없는 페소아ㅋ 완독까지 이어 나갈게요. 정말정말 감사해요! (OO 샘)
-일상을 잘 지내려고 애쓰는 저에게 불안의 서는 우선순위가 높은 하루 일과였습니다. 페소아의 책이 계속 상위에 랭킹 되는 하루 루틴이 된 것은 함께 하는 기쁨이 있어서일 겁니다. 이제 페소아 하루 루틴은 종말이네요. 페소아 정서로 그리움이 남았어요. 안녕~~~(OO 샘)
-완독은 못 했지만 발췌독으로 따라왔습니다 고맙습니다~~^^ (OO 샘)
-선생님들 감사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 가득한 여름 보내세요! (OO 샘)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은,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는 행인 하나가 줄어드는 사건으로 요약(p.787)’될 것이므로, 오늘 내가 하는 일, 지금 느끼는 것, 이 순간을 살아가는 일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페소아의 이 마지막 문장은, 나에게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울고 감동하고 느끼며 풍성하게 살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아 볼 때마다 자꾸 울컥하게 되네요. 페소아의 힘을 빌어 오늘 아침 커피를 건네주는 점원의 눈빛에 한번 더 미소를 보내봅니다. 푸른 하늘에 걸린 보드라운 구름들에 내 마음을 실어 보내며 달콤한 하루를 시작해 보고요. 소중하지 않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물 위에서 유쾌하게 노는 어린 오리들의 눈동자와 깃털을 멈춰 서서 바라봤어요. 정교한 형체와 빛깔들이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더라구요. 나를 보고 있는 오리도 만약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나란 인간을 보며 와, ‘그것 참 대단한 예술 작품이다’하지 않을까요.^^ ‘그냥’ 만들어진 삶을 없는 것 같아요. 생명이 싹트는 그 순간부터 지금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과 우연과 노력, 손길, 사랑, 고통, 눈물, 힘들이 흘러갔을까요. 그런 상상을 하니 인간이란 일생을 공들여 만든 참 아름다운 존재구나 싶어요. 삶이 유한하기에, 또 그 끝을 도무지 알 수 없기에 어쩌면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어요.
감성 폭발하는 7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누가 권하지 않으면 잘 먹지 않던 맥주도 페소아 덕분에 손수 사서 먹고 즐겼던 뜨겁고 아름다운 7월이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획해 주고 이끌어주신 진희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뜨거운 여름밤을 함께해 준 낭독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나에게 차곡차곡 선물하고, 그 빛나는 마음으로 행인에게조차도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루를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우리는 이미 “페소아”라는 이름에 모든 것이 들어 잇음을 설명 없이 깨닫는다. 페소아는 페르소나이며, 가면이고 허구다. 즉 페소아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그로 인하여 그 누구도 아니다. 그는 우주 자체만큼이나 복수다. 페소아는 끊임없이 분열하고 와해되는 작가의 정신, 부조리하게 술렁이는 불가능의 숲을 향해 영원히 산란하는 작가의 영혼에 부여된 이름이다. 페소아는 거기에서 왔다. 고대 로마의 극작가 티투스 마키우스 플라우투스가 암시했듯이, 노멘 에스트 오멘. 이름은 하나의 징후다.“(p.806) 그러므로 7월 <불안의 서>를 필사하고 낭독한 우리 모두는 페소아의 또 다른 징후입니다. (OO 샘)
낭독 마지막회!
마지막 날 낭독하면서~ 각자 음료와 술을 준비했어요.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낭독하는 밤~ 황홀했습니다. '오! 리스본, 나의 고향이여'
▮1
우리 모두에게 저녁은 다가올 것이다. 우편마차는 도착할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마음껏 즐긴다. 그리고 산들바람을 즐길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영혼도 마음껏 즐긴다. 나는 더 캐묻지 않는다. 나는 애쓰지 않는다. 내가 지금 여행자의 책에 써넣는 것이 언젠가 다른 이들에 의해 읽히게 된다면, 그래서 그들의 휴식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무도 이것을 읽지 않거나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해도, 그래도 나는 괜찮다.(p.26)
▮7
나는 정말로 해방된 상황에 있다고 간주하고 말을 하는데, 해방은 어려운 일이다. 바스케스 사장, 모레이라 회계사, 계산대의 보르게스. 이 모든 착실한 사람들,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가는 유쾌한 사환아이. 일 잘하는 보조원들, 그리고 살갑게 다가오는 고양이까지. 그들 모두는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을 완전히 떠나야 한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내 존재의 한 조각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 가운데 남아 있으며, 그들과의 이별은 절반의 죽음과 비교할 수 있다는 생각을 채 떠올리기도 전에 말이다.(p.34)
▮45
열정이 배제된, 고도로 다듬어진 삶을 살기, 이상의 전원에서 책을 읽고 몽상에 잠기며, 그리고 글쓰기를 생각하며,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 생각과 감정에서 멀리 벗어난 이런 삶을 살기. 오직 생각으로만 감정을 느끼고, 오직 감정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태양 아래서 황금빛으로 머문다. 꽃으로 둘러싸인 검은 호수처럼, 그늘 속은 독특하고도 고결하니, 삶에서 더 이상의 소망은 없다. 세상의 소용돌이를 떠도는 꽃가루가 된다. 미지의 바람이 불어오면 오후의 대기 속으로 소리 없이 날리고, 고요한 저녁빛 속 어느 우연한 장소로 내려앉는다. 더욱 위대한 사물들 사이에서 자신을 망각한다. 이 모두를 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햇살을 주는 태양에 게 감사하고, 아득함을 가르쳐 주는 별들에게 감사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굶주린 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p.97)
▮50
나는 그런 물건들을 갖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테주 강을 사랑한다. 대도시는 대개 큰 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하늘을 즐긴다. 그 하늘을 도심 거리의 어느 건물 5층 창으로 올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라사 혹 은 상 페드루 드 알칸타라에서 바라본, 달빛 아래 고요하게 잠든 도시의 지붕들이 만들어내는 불균일한 윤곽선과 비교할 만한 것을, 시골의 삶이나 자연은 나에게 결코 줄 수 없을 것이다. 찬란한 햇빛을 받은 도시 리스본의 다양한 색채는 그 어떤 꽃의 아름다움도 따라갈 수가 없다. (105쪽)
▮55
나는 읽는다. 그리고 나는 해방된다. 나는 객관성을 원한다. 나는 나라는 하나의 개별체로 존재하기를 멈춘다. 내가 읽는 것은, 나에게 전혀 흥미롭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종종 내 목을 조이곤 하는 양복과는 달리, 압도적이고 위대한 외부세계의 명료함이다.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이는 태양, 고요한 표면과 그늘진 얼룩을 가진 달, 바다에 가서야 끝이 나는 드넓은 공간들, 흔들리는 초록 이파리를 머리에 인 나무들의 흔들리지 않는 검은 직립, 농장에 딸린 연못의 동요 없는 평화, 계단식으로 정돈된 산비탈 위 포도나무가 우거진 길들. (p.116)
▮74. 뇌우
가만히 정지한 구름들 사이로 나타난 푸른 하늘 한 조각, 투명한 흰색 수증기 조각들이 하늘의 푸른색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사무실 뒤편 영원의 꾸러미를 끈으로 묶고 있던 배달원이 일을 잠시 중단한다. …
"이런 뇌우는 내 평생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네요." 하고 통계적인 논평을 내렸다.
차가운 침묵. 거리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예리한 칼로 싹둑 잘려 나가버린 것 같았다. 호흡의 우주적인 정지, 그것은 길게 이어지는 총체적인 불편함과 같았다. 우주 전체가 입을 다물었다. 한순간 동안. 영원한 한순간 동안. 침묵은 어둠을 까맣게 그을렸다.
갑자기, 생기를 띠고 살아나는 강철(...)
전차들이 지나가는 금속성 딸랑거림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암흑의 심연에서 부활하여, 소박하게 비를 맞고 있는 거리 풍경은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가!
오 리스본, 나의 고향이여!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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