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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22. 2024

김인정 기자 <고통 구경하는 사회> 리뷰

샛별BOOK연구소


인문교양 『고통 구경하는 사회』, 김인정, 웨일북, 2024. (269쪽 분량)


  10년 동안 기자로 일하며 질문하고 취재하고 보도한 일에 대한 반성문이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이며 기자의 역할에 대해 논한 책이다. 사건, 사고 현장에 달려가 기사를 쓰고 대중에게 알리는 기자의 직업을 유용하고 보여준다. 기자들의 윤리적 딜레마, 책무성도 서술했고, 대중들이 뉴스를 대하는 부분도 언급했다. 대중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소비하는가. 정치는 어떻게 이슈화하는가. 기자는 어떻게 보도하는가 등을 10년의 경험으로 술회한다. 책은 매일매일 보도되는 고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기억하고 조금씩 움직이라는 외침이다. 대중들이여. 고통을 소비하지 말고, 아파하자.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자고 말한다. 



별점은 4점, 4점, 3.9점, 4.5점, 4.5점이 나왔다. 읽은 소감으론,


-가독성은 좋았지만 문장이 길었고, 아름답게 쓰려는 부분도 있었다. 

-기자 의식, 기자의 딜레마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사회가 고통을 대하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역지사지' 공감되는 뉴스의 보도에 대해 생각했다. 

-시의성이 좋았다. 최근 이슈들이 나와 적절했지만 몇 년 후에 어떻게 읽힐지는 미지수.

-비문학을 읽을 기회가 좋았다.

-기자들이 발악하는 부분. 기레기 소리 들으면서 알아보고 싶은 욕망을 생각했다. 

-기자여서 더 깔 수 있는 부분 등도 염두했다. 

-'나락보관소' 등 유튜브의 기능도 고민했다. 

-그 외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뉴스를 보는 사람/ 뉴스를 만드는 사람 등 각각의 입장에서.

-저널리즘의 특성에 대해.

-기자들의 책무성에 대해.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는 문제에 대해.

-날씨 뉴스를 보도하는 부분에 대해.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p.94) 있는 부분에 대해.

-계속 일어나는 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반응에 대해.

-이색적인 고통은 보도하고 흔한 산업재해에는 침묵하는 부분에 대해.

-산업재해를 보도할 때 '다양한 감수성'을 끌어내기 이해 생생한 표현을 묘사하는 부분에 대해.

-부단한 자기 단속의 시대에 대해.

-기자가 뉴스를 내보낼 때 보이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뉴스가 왜 만들어지고, 뉴스를 왜 보고 있는지에 대해.

-기자들 간의 취재 경쟁에 대해. 

-정확한 질문을 해야 하는 기자들에 대해.

-기자들은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뉴스 취재를 하고 결과물을 어떻게 방송에 내보내는지에 대해.

-기자의 직업정신과 용감성에 대해.

-그 외 






발췌



그러니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 말 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 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로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곳으로 분명히 이동할 수 있다.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p.16)


영상 각도를 토대로 상황을 복구하면,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고 소방당국과 의료진, 시민이 응급처치에 나서는 와중에 스 마트폰을 꺼내들어 렌즈를 현장에 겨누고 녹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p 24)


이태원참사를 목격한 사람들,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것을 찍는 사람들.

그렇다면 기자는 무엇이 다른가. 구조를 도울 때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이댄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p.28)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 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 때로 대중이 활용하는 기술은 부당할 정도로 쉽게 공격받는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볼 수 있는 큰 단위의 숫자만으로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행 동했다는 효능감을 느끼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좋아요'와 '리 트윗' 같은 대중화된 기술의 효과를 괄시하거나 폄하할 필요 역시 없다.(p.36)






고통을 함께 나누는 쌤들~ 사랑해요. 


우선순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황에서는 무엇이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고통인지를 식별해 내는 것부터가 노동이다. 불행히도 원래 인간에게는 확증편향이 있는데, 알고리즘은 더 극단적이고 단순화한 콘텐츠를 추천하며 이를 부추긴다. 개인화 알고리즘은 잘 걸러낸 맞춤형 정보만 주입하여 우리를 필터 버블 안에 가둔다. 우리는 그 버블에 올라타 양극단으로 부지런히, 광대역 인터넷의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p.50)


디지털 교도소 웹사이트에는 손정우를 포함해 디지털 교도소가 흉악범으로 지목한 사람들의 얼굴 사진, 실명, 거주지, 직업, 휴대전화 정보가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죄목은 주로 성범죄, 아동 학대, 살인죄 등이었다. 디지털 교도소는 사법부가 성범죄에 솜방 망이 처벌을 일삼는다는 사람들의 무력감과 실망감을 건드렸다.(p.63)


-우리는 안전한 자리에서 자연재해라는 스펙터클을 관람한다. 악천후는 구경거리로 전시되고, 재난 현장은 정치적 포토월로 전략한다.(p.81)


-방글라데시는 아시아의 빈곤한 국가 중 하나다. 개발을 위해 앞장서서 탄소를 배출한 나라가 아니다. 기후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반시설을 갖추지 못한, 극도로 가난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을 기후 위기의 샘플이자 해결책으로 소개하는 뉴스는 누구의 시선인가.(p.89)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에 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p.100)


더구나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나에게 '신경 쓰이는'뉴스만이 가장 중요한 뉴스가 되는 것이다. (p.150)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 것. '나'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p.154)


-인류의 상상력과 지성을 믿어본다면, 오늘날 여전히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세계와 타인을 배우고 싶어 하는 호기심과 욕망을 갖춘, 퍽 유연한 공동체다. (p.154)





빵도 함께 나눕니다.^^



 이 지점에서 《타인의 고통) 을 쓴 비평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날카로운 분석을 떠올린다. 연 민은 우리의 무능력함과 더불어 무고함을 증명하기에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이며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는 손택의 말은 행동을 촉구한다.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 제 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손택은 이로써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을 하려 했다.(p.225)

그러나 방 한구석에 던져 놓은 신문뭉치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듯이, 시야 어딘가에 머무르다 펼쳐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하며 되도록 조금 더 천천히, 더 담담한 뉴스를 만드는 건 어떤가. (p.238)

언론이 하는 일은 겪은 이들과 겪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기억의 연결고리가 깜빡이다 꺼지지 않도록 기능하는 일인지도 모른다.(p.262)

기사는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하며 쓰는 글이고, 그 글의 효용을 얼마간 믿으면서 쓰이기 때문이다.(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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