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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l 20. 2019

음식도 먹어봐야 안다. 인생처럼.

브런치 무비 패스#13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스포일러와 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의 후원을 받아 관람한 후기입니다.




하루 종일 먹으러 돌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그에겐 하루 24시간도 부족해 보인다.

그는 바로 세계 최연소 3스타 획득, 세계 최초 트리플 3스타 획득, 총 21개의 미슐랭 스타를 획득한 거장 셰프 알랭 뒤카스이다. 그는 오늘도 최고의 식재료와 최상의 요리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그리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깝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를 보기 전에 배를 채우고 가는 걸 권장한다.



요리를 하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요리사다


다큐멘터리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은 알랭 뒤카스가 베르사유 궁 안에 최초로 레스토랑을 오픈하기까지 2년간의 여정을 밀착 취재한 작품이다. 그는 국내외 20여 개의 업체가 참여한 공모전에서 당당히 베르사유 궁전 호텔 레스토랑 운영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렇게 시작된 2년간의 준비는 그가 하루라도 쉴 수 없게 만들었고 본인조차도 쉬는 걸 원치 않아하는 엄청난 열정을 보여준다. 


요리에 있어 그 무엇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로 유명한 셰프라는 명성답게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최고의 맛을 찾아 나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런던, 홍콩, 도쿄, 뉴욕, 베이징, 마닐라, 리오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모든 식재료를 맛보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다. 그렇게 선정된 식재료의 생산 과정부터 출하 과정까지 일일이 체크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보면 그가 요리하는 장면은 딱 한 번 나온다. 오직 단 한 번 말이다. 그가 유명 셰프라고 들었던 나에게 다큐멘터리 영상 속 그가 요리하는 장면이 이토록 희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직접 요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훌륭한 요리사들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재단을 운영하고 후원한다.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들이 더 훌륭한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할 수 있게끔 직접 발로 뛰며 식재료를 찾아다닌다. 이번에 맡게 된 베르사유 궁전의 레스토랑에서도 총괄 지휘를 하며 모든 손님들에게 한 접시를 내놓아도 귀감이 되고 마음의 울림이 될 수 있는 요리를 구상하고 의논한다.

레스토랑의 분위기, 장식, 커트러리 그리고 웨이터들의 매너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관여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묵직하게 그의 행적들이 가슴에 다가온다. 그는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요리사이다.



모든 감각에 맛있는 기억을 남겨야 한다


그는 베르사유 궁전의 레스토랑 'Ore'의 오픈을 준비하며 어려움에 봉착한다. 단순히 그만의 현대적인 음식을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00년도 넘은 당시 왕의 요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물론,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것은 빼며 그만의 현대적인 해석을 가미해 새로운 요리를 선보여야 했다.

너무나도 복잡한 작업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300년 전 왕의 요리와 현대적인 맛을 한 접시에 오롯이 담아내고 만다.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손님들의 모든 감각에 맛있는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그의 신조 때문이다.



특히나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그는 셰프라는 직업을 '자연과 사람의 연결고리'라고 정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년 전 세계적인 요리사의 뒤를 이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이어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기교 넘치고 훌륭한 요리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손님들의 기대를 완전히 깨고 오직 돼지와 감자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그만큼 그 당시 사람들에겐 센세이션한 사건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그만의 유니크한 시도가 있었기에 지금 식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요리를 지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육류와 지방뿐이던 식탁이 채소와 자연의 향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시작된 더 다양한 요리들의 향연을 위해 더욱 발로 뛰는 그는 여전히 더 나은 식재료와 더 훌륭한 맛을 찾아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요리를 단순히 맛있게 먹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을 넘어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다.



음식도 먹어봐야 안다. 인생처럼.


영화 속 알랭 뒤카스는 매우 바쁘다. 온 세계의 음식을 다 먹어보기라도 할 것처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먹고, 보고, 경험한다. 그가 잠을 청하고 쉬는 시간은 오직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만 이뤄진다. 

다양한 셰프와 다양한 요리, 다양한 식재료와 다양한 맛. 오직 그것들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순간, 알랭 뒤카스는 비로소 웃음을 보인다.


세계 정상은 물론, 프랑스에서도 손에 꼽히는 셰프로 알려진 그는 말한다.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더 나은 요리를 개발하기 위한 그만의 요리 철학과 도전 정신은 이 영화에 매우 고스란히 잘 담겨 있다. 가끔 그걸 보고 있는 내가 피곤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배우고 만다. 최고의 셰프도 아직 맛보지 못한 식재료와 개발하지 못한 음식이 많은 것처럼 어쩌면 내 인생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투성이라고. 알랭 뒤카스처럼 발에 불이 나도록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쉽게 레토르트 음식을 돌리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음식도 먹어봐야 알고 요리도 해봐야 느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다. 모든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다.

알랭 뒤카스가 그의 요리 한 접시에 요리와 인생철학을 담아냈다면, 과연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어디에, 나의 인생철학을 담아낼 수 있을까. 설령 그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글이라는 길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며, 얼마나 더 진심 어린 글을 쓸 수 있는지 매우 고민해야 할 시기임을 깨닫는다.


문득 요리가 하고 싶어 진다. 오늘 저녁은 직접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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