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일도무사히 Sep 09. 2023

기록 피하는 ‘꼼수’

고양이 목에 방울을 어떻게 달았나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④ 

지금까지 거론했던 국회 예산안 심사의 문제점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여겨지는 건 기록을 피하는 ‘꼼수’들이다. 앞서 적었듯 국회법에 따라 국회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회의는 기록을 남기게 돼 있다. 이 회의록은 조선왕조의 실록처럼 역사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국회의원의 잘못된 언동을 기록해 현세와 후세의 교훈으로 삼거나 마부작침이 했듯이 취재와 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록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정회합시다, 속기록에 남으니까.”


이런 발언을 2020년 예산안 심사 회의록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떤 의미인가. 회의가 열리는 동안의 발언만 기록하기 때문에 회의를 멈추면 기록을 피할 수 있다. 이때 정부 관계자나 여야 의원들이 예산안 관련한 쟁점을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에 기록을 피하는 건데 기록이 없고 발언 내용을 따로 공개하지도 않으니 알 수가 없다. 회의록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행위인데 의원들이 이를 악용해 논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예산안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자며 그동안 관행적으로 운영해 왔던 비공식 기구 ‘소소위’라는 게 있었다. 소위원회의 소위원회를 줄여 부르는 말로, 여야 간사와 정부 관계자만 참여해 쟁점 예산을 빠르게 논의하자는 취지인데 법 외의 기구인 만큼 발언 내용을 기록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소소위’에서 결정된 내용은 회의록도 존재하지 않으니 어떤 과정을 거쳐 심사한 건지 당사자들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예산안 심사 막판에 가면 상당수의 쟁점 예산이 소소위에서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져 비판받았다. 


2020년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는 이런 비판을 수용해 ‘소소위’ 대신 간사 협의체를 운영하면서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이름만 바꾼 소소위에 불과했다.



데이터 저널리즘의 현장은 데이터요, 숫자나 코드이겠으나 그럼에도 이를 잘 보여주기 위한 시각화는 중요하다. 특히 방송뉴스에서는 제한된 시간 내에 어떤 영상과 그래픽으로 내용을 보여줄 것인지가 핵심이다.


회의록이 기본 데이터인 만큼 이걸 영상으로 구현해야 했다. 실제 회의 영상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상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 소위원회 회의까지 촬영하거나 녹화된 영상은 없었다.(사실 의원들과 정부 관계자가 모여 회의하는 영상은 실사 영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 눈길을 끌거나 생생하진 않다.) 디자인팀과 상의 끝에 카카오톡 채팅방을 보는 듯 시청자에게 익숙한 형태로 회의의 한 대목을 보여주고 여기에 실제 음성이 아니라 기계음으로 오디오를 더빙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주 참신한 건 아니었으나 딱딱하기만 한 예산 심사 회의 내용의 문제점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 그만이었다. 


특히 문제가 있다고 꼽은 일부 사업들은 사업 예정지를 찾아가 현장을 촬영하고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왜 이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는 게 문제가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예산, 국회, 심사, 회의록… 듣기만 해도 따분할 것 같은 소재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취재 결과를 한 명이라도 더 재미있게 보고 관심을 갖도록 하자는 건 방송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당연한 목표였고 데이터 저널리즘이 적절한 시각화를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에 바로 정책에 반영되고 비리를 저질렀거나 그 문제에 책임이 있는 누구는 물러나거나 수사를 받고… 기자라면 누구나 자기가 쓴 기사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기에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다.


마부작침의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프로젝트는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을까.


거창한 변화 혹은 가시적인 움직임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게 있었다. 먼저, 무풍지대와 같았던 국회의 예산안 심사에 대해 언론사 최초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메시지를 국회에 던질 수 있었다. 감시 카메라가 있으면 아무래도 그 앞에서 문제 행동을 삼가게 되듯이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지는 힘은 적지 않다. 특히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자 여야는 2019년 말 예산국회에서는 소위원회의 소위원회, 이른바 소소위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 대안마저 소소위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예산안 심사 감시를 의식했다는 점은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 보도를 매번 할 때마다 각종 보도상을 휩쓸었다. 언론계와 학계, 시민단체들 평가도 좋았다. BJC 올해의 방송보도상, 이달의 기자상, 이달의 방송기자상, 올해의 데이터 기반 탐사보도상(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회발 신규사업'에 주목했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