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고? <불법촬영 대한민국의 민낯> ①
30여 년 전, 한 TV 인기 예능프로그램 코너 이름이 ‘몰래카메라’였다.
‘몰래카메라’를 대명사처럼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주로 연예인인 주인공을 황당한 상황에 처하도록 속이고 그 반응을 몰래카메라에 담은 뒤 방송으로 공개하는 식이었다. ‘몰래카메라’가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속속 나왔다. 당시엔 ‘몰래카메라’ 하면 이런 코미디나 예능을 떠올렸지 범죄와는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촬영 장비 자체가 고가에 희소하다 보니 범죄 행위로 연결되기가 어려웠다.
‘몰래카메라’ 행위가 문제가 되면서 해당 법 조항과 처벌 근거가 마련된 건 칠팔 년이 지난 뒤였다. 1998년 12월 성폭력 범죄 처벌법에 ‘카메라 등 이용촬영’ 죄가 신설된 건데 그즈음에 이른바 ‘몰카’ 범죄, 불법촬영 범죄는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제는 전체 성폭력 범죄 중 20%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왜 이렇게 불법촬영 범죄가 말 그대로 기승을 부리는 걸까.
법무부는 2020 성범죄 백서를 발간하면서
"성범죄 발생 장소가 교통수단, 찜질방 등 대중이용시설이 많은 것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 보급이 일반화된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급증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고 밝혔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꼭 관련 범죄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뭔가 부족했다. 범죄라면 뒤따르는 단속과 처벌, 그리고 예방과 재발 방지. 이런 건 잘 이뤄지고 있을까.
2019년 3월, 버닝썬 게이트에 이어 승리‐정준영 등 유명 연예인의 불법촬영 등 범죄 혐의가 불거지면서 화제가 됐다.(이후 법원에서 대부분 혐의가 범죄로 확정됐다.)
마부작침은 이들 범죄 가운데 불법촬영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유명 연예인들이 불법촬영 같은 범죄를 별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다면 일반 시민들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참에 그동안 한국 사회는 불법촬영 범죄를 어떻게 단죄해 왔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건 주로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판결문이었다. ‘판결문을 통해 본 불법촬영 대한민국’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저렇게만 나와 있으니 공개방식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2018년까지는 일반 시민이 자기 사건 외에 다른 판결서를 보려면 특정 판결의 판결서 사본을 신청하거나 법원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검색 열람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2019년 1월부터 비로소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임의어 검색이 가능해 특정 단어나 범죄명, 판사 이름까지 입력해 찾아볼 수 있어 편의성이 높아졌다.(대단히 편리해졌지만 뒤집어 말하면 이런 서비스가 제공된 지 겨우 5년 남짓 됐다는 말이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 판결서 1건 열람에 1천 원을 내야 한다. 유료 서비스다.)
가장 먼저 불법촬영 범죄의 개념부터 정의해야 했다. 불법촬영 범죄는 법에 나온 명칭은 아니다. 통상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처벌 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 사건을 가리킨다. 그래서 살펴봐야 할 판결문은 우선 이 14조 위반 사건을 기본으로 했다.
다음에 정해야 했던 건 기간과 관할 법원이었다. 14조가 처음 만들어진 1998년 12월 이후부터 가장 최근 판결까지, 즉 구할 수 있는 모든 불법촬영 판결문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면 데이터로선 최선일 것이나 쉽지 않아 보였다.(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는 2013년 이후 판결만 제공했다.) 한국 사회가 불법촬영을 어떻게 처벌하고 있는지 분석하려는 게 목표인 만큼 최근 판결은 당연히 포함돼야 했다. 1심 법원 판결만 우선 분석하기로 했다. 201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 치를 검색했더니 3천 건이 넘었다. 인터넷 열람이 가능한 2013년 이후부터라면 6년 치, 대략 1만 8천 건이 된다. 금액으로는 1천8백만 원, 프로젝트 하나에 투입하기엔 부담이 많이 컸다.
참고자료와 논문, 보고서 등을 찾아보니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불법촬영 판결에 대해 분석했던 자료가 있었다. 마침 2011년부터 2016년까지, 2017년 한 해 동안의 판결 분석이었다. 접근 방식과 세부 내용에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경향성은 비교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들의 분석 대상 판결문은 서울 소재의 지방법원 5곳(중앙, 동부, 남부, 북부, 서부지방법원)이었다. 2018년, 서울 소재 지방법원 5곳으로 한정하니 755건으로 좁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