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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Sep 12. 2023

불법촬영범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호기심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고? <불법촬영 대한민국의 민낯> ②

판결문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정리해 나갔다. 선고일, 관할법원, 죄명, 판사, 검사, 변호사, 징역형 유무, 형량, 벌금형 유무, 형량, 범죄사실, 범행장소, 범행일시, 범행수법, 범행도구, 피해자 성별, 피해자 나이, 피해자 특징, 양형이유, 양형 가중요소, 감경요소, 그 외 특이사항 등등.


1차 정리한 걸 놓고 보니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튀어나왔다. 당연하게도 모든 피고인의 죄명이 동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폭력 처벌 특례법 14조 위반만으로 재판을 받은 경우도 많았지만 다른 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판결문도 꽤 많았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나 아동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등이 함께 적용된 사건도 적지 않았다. 다른 사건과 병합된 사례도 여럿이었다.


이들의 양형이 불법촬영 죄에 대한 것인지가 불분명해져 버리는 게 문제였다. 


가장 가벼운 건 선고 유예였고 가장 무거운 선고로는 사형까지 있었다. 불법촬영 범죄에 사형? 설마 한국 법원이 그렇게까지 양극화된 선고를 했을까. 사형이 선고된 사건 판결문에 담긴 다른 죄는 살인, 청소년 성폭행, 강제추행, 시신 유기 등이었다. 알고 보니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영학 사건이었다. (이영학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 선고에 불법촬영의 지분은 얼마나 될까. 이를 놓고 “불법촬영 범죄에 최고 사형까지 선고됐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정제 작업을 다시 했다. 불법촬영이 주요 죄인 사건을 골라냈다. 피고인은 같으나 다른 사건이 병합된 것이라든가 강간, 강제추행 같은 다른 성폭력 범죄를 함께 저지른 3백여 건을 덜어냈다. 그리하여 2018년 한 해 동안 선고된, 불법촬영이 주요 죄명인, 서울 지역 5개 법원의 1심 판결문 432건을 확정했다. 이제야 분석을 위한 기본 작업을 마친 셈이었다. (이로부터 1년 뒤엔 다시 2019년 한 해 동안 선고된 서울 지역 5개 법원의 1심 판결문을 추려내 413건을 분석했다.)


2019년 5월 초, 마부작침은 경찰의 불법촬영 단속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주로 단속하는 현장은 사람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 전동차와 역사였다. 며칠을 다녀도 현장 포착이 안 될 때도 많다고 했는데 다행히 경찰이 홍대입구역에서 현행범을 붙잡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남성 대학생이었던 피의자는 왜 불법촬영을 했느냐는 질문에 “진짜 호기심 때문에 했다. 궁금해서…”라고 답했다. (1년 뒤에 재차 요청한 동행취재는 거절당했다.)


불법촬영범을 다수 검거한 경험이 있는 수사관은 “일단 검거하면 증거물을 확인하기 전까지 무조건 ‘안 찍었다’며 범행을 부인한다. 범행 사실이 확인되면 그다음에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조사 과정에서 왜 그랬냐고 질문하면 ‘호기심’이라는 변명을 많이 한다.”라고 설명했다.


호기심의 사전 정의는 ‘새롭게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성인이라 해서 호기심을 갖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범죄와 관련해서는 다르다. 호기심에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극소수의 사이코패스 같은 경우에만 호기심에 살인이나 기타 강력범죄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불법촬영범 상당수는 입을 맞춘 것처럼 “호기심 때문에 그랬다.”라고 말하는 걸까.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성폭력처벌특례법 14조 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 범죄는 2009년 834건에서 2018년 6,085건으로 7배 넘게 증가했다. 어디까지나 경찰에 입건된, 즉 드러난 사건만 그렇다. 2010년대 초중반까지는 아직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았다고 치더라도 


최근엔 불법촬영 근절, 뿌리 뽑자는 움직임이 정부와 언론,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데도 왜 줄지 않고 있을까.


마부작침이 세운 가설은 이러했다. 첫째, 호기심이 유독 강한 사람들이 불법촬영 범죄를 저지르는 것. 둘째, 불법촬영을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 수준이 낮아서. 첫째 가설은 호기심 수준을 측정한다는 게 어려워 검증 불가. 그다음 가설도 범죄라고 여겼는지 아닌지를 일일이 물어볼 수는 없어서 검증 불가, 다만 그 범법자에게 내려지는 처벌 수준을 놓고 추정은 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리 중대한 법 위반이라도 처벌 조항이 없다면 그 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적잖을 수 있다. 

처벌 조항이 있더라도 받는 사람이 별 거 아니라고 느낀다면 역시 법을 안 지킬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가령, 호기심이 유독 많은 사람이라든가… 판결문을 분석한 건 그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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