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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Dec 12. 2023

"저 스타벅스에서 일해요"..."저도 가요!"

권남희 <스타벅스 일기>

북적북적 403: '스타벅스 일기' 듣기


“화장실에 다녀오니 아이와 엄마는 집에 가려고 밖에 나와 있었다. 언젠가 또 동네에서 마주치길 기대하며 헤어졌다. 자리에 돌아와서 보니 노트북 위에 하트 모양의 스벅 마카롱이! 그러잖아도 정하가 일하며 먹으라고 사준 수제 쿠키가 있어서 아이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심전심. 얼른 뛰어나가서 모자를 쫓아가 쿠키를 선물했다. 일은 별로 못했지만, 왠지 자꾸 웃음이 쏟아지는 오늘의 스벅이었다.”


전 세계 스타벅스 지점은 3만 6천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2022년 기준) 한국은 지점 수로 전 세계 4위인데 1750개 정도 있다고 하네요. 스타벅스의 발상지인 미국이 약 1만 6천 개로 1위, 중국이 6천 개로 2위, 다음은 캐나다 2천100개. 인구밀도가 높고 서울 같은 메가시티에 온갖 시설이 집중된 한국이 역시 가장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것 같네요.


미국 뉴욕에 1년 머물 때는 집이 있던 스트리트 모퉁이에도 스벅이 있었지만 딱 두 번 갔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스벅 1호점 방문까지 합쳐서 스타벅스에 갔던 횟수가 열 번을 넘기진 않았던 것 같네요. 중국은 7-8년 전 방문했을 때 베이징에서 한 번, 항저우에서 한 번 들렀고 몇 년 전 칭다오에 가서 한두 번 갔던 기억이 납니다. 스타벅스를 왜 이렇게 들르게 될까... 전 세계 어디 지점을 가더라도 스타벅스에선 이 정도 품질의 커피와 이 정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지 기대치가 있고 그걸 배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모험 없이 무난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곳, 한국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작업 공간이나 스터디 카페 역할도 한다는 게 좀 다른 점이겠네요.


"집에서는 한 줄 쓰고 우느라 못 쓰던 나무 이야기가 쭉쭉 잘 쓰였다. 눈물이 나도 집에서처럼 마음 놓고 울 수 없으니 애써 참게 된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스타벅스에 가서 일했다. 나가는 게 습관이 되니 하루에 한 번이라도 나가지 않으면 답답해졌다. 이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조용한 집 놔두고 왜 시끄러운 카페에 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3일만 집에 있으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늦었지만 완벽하게 이해했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라는 에세이집을 2년 전 여기 북적북적에서 읽었는데 이제는 32년 차 번역가이자 작가인 권남희 작가의 새 에세이집입니다, 무려 제목이 <스타벅스 일기>.


"마침 오늘 번역한 페이지에 스타벅스가 등장했다. 스타벅스에서 번역 작업을 하는데 스타벅스 얘기가 나오면 괜히 반갑다. '나도 지금 스타벅스야' 하는 기분. 취준생인 주인공 커플의 집은 역에서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두 사람은 버스를 타는 대신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집까지 걸어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생활비 지원이 끊겨, 스타벅스 커피는 편의점 커피로 바뀐다. 참고로 일본은 '스타바'라고 줄여서 부른다. '스타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 두 사람은 한동안 의기소침했지만, 드디어 취업하여 다시 스타바 커피를 마시며 귀가한다."


학생들이나 취업이나 시험 준비하는 분들, 또 프리랜서들이 많이 공감할 텐데 기자들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저도 외근을 주로 하던 때는 회사 말고 아침에 나가 있을 공간이 마땅치 않을 때 스타벅스에서 아침 업무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처음엔 교통의 요지로 가다가 어떤 때는 동네, 어떤 때는 회사 근처로 갔다가 오해를 사기도 했고요. 스타벅스가 그만큼 많고 특히 서울에는 정말 많고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이 정도 비용을 지불하면 이 정도 분위기와 공간을 일정 시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작가처럼 매일이다시피 스벅에 나와 일을 하면서 쓴 일기를 읽다 보면 예전 동네 사랑방 느낌을 받게도 됩니다. 사랑방에 찾아온 꼬마 손님이나 여러 사연과 분위기를 지닌 군상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드러나면서 함께 아 나의 스타벅스 일기도 쓸 수 있겠는 걸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네요. 저도 숱한 스벅을 다녔지만 최근에는 아이와 함께 갔던 스타벅스 풍경이 떠오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 달라지니 스벅 에피소드에도 꽤 변화가 있었습니다.


"브런치를 다 먹은 뒤 부모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들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하고 또 한 번 인사를 시켰다. 아빠와 엄마도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가족에게 손수건을 선물해서 기뻤다. 이 행사 준비하신 분들, 손수건 한 장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준 걸 모르시겠지."


"유아 때부터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집순이의 삶을 지향한 내가, 아메리카노도 못 마시는 내가 빈둥지증후군을 고치기 위해 스타벅스에 다닌 것이 엄청난 결과물을 낳았다. 아마도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집순이 권남희와 스타벅스와의 언밸런스함에 경악할 것 같다."


대명사가 되어버린 스벅에도 물론 문제가 없진 않습니다. 몇 년 전엔 직원들이 처우와 복지 문제를 제기하며 트럭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취소가 안 되는 사이렌오더 같은 문제가 불거지거나 이벤트 상품의 품질 문제가 나오기도 했죠. 꼭 스벅이 아니어도 되겠지만 작가님이나 저나 그 외 일하거나 쉬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찾는 많은 사람에게 편안한 공간이 될 수 있는 스벅이 한동안은 유지될 수 있으면 싶습니다. 스타벅스 일기 2나 전국 혹은 세계 스벅순례기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고요.(스타벅스에서 꼭 협찬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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