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과 절제 사이 Jun 21. 2020

효심을 저버리게 하는 '고추장물'

늦은 밤 엄마의 고추 다지는 소리

스무 살 초반까지 경상도의 어느 고추가 많이 나던 산간지방에 살던 내가, 처음 서울로 왔을 때 이미 말투부터가 서울 여자가 되어 있던 고향 친구는 '촌년'의 극치를 달리던 나를 보며 서울 여자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순대집에서오로지 소금에다만 콕 찍어먹어야 하며 지난날 우리가 알던 순대와 쌈장의 세계는 다 잊어야 한다고 했었다.


어떻게 순대를 쌈장에 안 찍어먹을 수가 있어? 라며 묻는 나에게 친구는 담담히 "여기선 그래." 라며 뭔가 큰 깨우침을 얻은 듯 거기에 사투리만 조심하면 경상도에서 갓 올라 온 촌년이라는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었었다. 지나고 보면 그때 우리는 촌빨 날리는 사람이 아니라 완벽한 서울 여자가 되고 싶은 그런 개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차마 가슴이 시키는 입맛은 잊지못해서 순대집에서

"저기! 이모~ 여기 쌈장이 빠졌네요. 쌈장 좀 주세요."를 외치곤 했었다.

결국, 순대집에서는 아무리 쌈장을 애타게 불러도 사장님은 소금밖에 내주지 않는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대신 집에서나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는 것으로 서서히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도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 시절의 순대 사건은 하나의 추억이 될 세월이 흐르고,  20여 년이 지나서야 도시 밥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그 어디에도 없을까?

                  그러고 보니 20년 동안 서울에선

모양도 맛도 똑같은 걸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네?


고추 다대기. 고추장물. 고추 다짐. 고추 다진 거.

경남 거창에서 자란 나의 어릴 적 고향에선 집집마다의 밥상에 붙박이처럼 붙어있던

음식이기도 하며 누구 하나 먹는 사람 없더라도 밥상 한 구석을 차지하고 데코레이션이라도 되어야 하던 것. 하물며 너무 흔하고 당연한 음식이어서 이름조차 제대로 없이 "고추  다진 거~"라고 불리던 것. 하물며 반찬이기도 했다가 양념이기도 했다가 먹는 사람 마음이던 음식이었는데 말이다.

더구나 세월이 성큼 지났는데도 고향에는 있고, 여기에는 없는 것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던 그것은 고추다대기라 불리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 음식을 어디선 고추 다짐이라고 부르며 추어탕 정도에 올려먹는 양념이라고도 했고

애써 찾아본 전통 향토음식 용어사전에선 고추장물이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몇십 년을 곁에 있으면서도 있는지도 몰랐던 어느 날 문득 삶에 스며든 음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비록, 건사한 재료도 레시피도 아니지만

혀 끝에 닿는 매운 청양고추의 알싸함과

씹을수록 멸치에서 우러나는 짭조름한 맛에 몸이 먼저 그리웠던 것 같다.

그보다 뜨거운 하얀 쌀밥에 고추에서 배어 나온

초록 빛깔에서 우러나는 매운 향이 아른거렸다.


아마도 그건,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거기에만 있는 음식인 것처럼,

거기에 가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를 받아줄 따뜻한 가족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의 외로움은 어느 음식을 향하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혼자서 끙끙- 앓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들지만 바쁘게 살고 있는 엄마에게 그 음식을 만들어 보내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란,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기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이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라 여겼었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어깨너머로 배웠을 그 음식이

그런데 너무나 먹고 싶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던 상황에서 그 흔해 빠져 쳐다도 안 보던 그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당장, 안 먹으면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고추, 그 다진 거 어떻게 만들어?

청양고추를 팍팍- 도마 위에서 칼로 다져.

   그리고 멸치를 손으로 잘게 손질해.

   둘을 물과 간장을 넣고 끓여.

   그런데 이런 걸 뭐하러 물어?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아니야. 엄마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데    힘들잖아.

 내가 알아서 해 먹을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일 봐.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가족들에게 우울증 진단을 받았음을  알릴 수밖에 없었고 나의 고추장물은 실패를 하고 말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 나 고추 다진 거... 그게 너무나 먹고 싶어.



그즈음, 우리 시골집의 저녁에는

느즈막에 배운 농사일이지만 어쩜 그리도 늘지 않는지 농사를 망쳐 놓는 아빠의 허접한 실력이 주된 관심사였고 아버지가 키운 고추들이, 고추장 물이 될 준비를 하며 아빠의 농사 실력때문에 생긴 엄마의 하소연 함께 팍팍- 다져지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여유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