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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Mar 28. 2021

<싫존 주의자 선언>을 읽고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눈팅하기 시작했던 2년 전부터, 사과집님의 글을 기다리고, 글귀들을 다이어리에 적어놓곤 했다. 그래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잠잠하던 브런치에 출간 소식이 올라왔을 때 정말 반가워서 책 선물 이벤트도 바로 참여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여본다면,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분노함으로써 사랑하는 자들을 지키고자 하는 날 선 목소리." 작가의 말마따나, 공동체의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기질적으로 싸우고 비판하는 걸 어려워하며, 분노하는 게 낯설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1장을 열고 그 치열함과 날카로움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작가는 삶에서 겪었던 부조리한 상황들을 다시 돌이켜보고, 논리를 정리한다. 가장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겪는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로 나아간다. 싫존 주의자 선언에 실린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작가가 겪은 것들이지만, 동시에 그녀가 처하고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계약직 비서, 자퇴한 청소년, 욕망을 존중받지 못하는 10대, 등 주류의 사회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놓여있는 차별의 시선까지도 빠짐없이 조명한다. 사과집 개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본인이 겪고 관찰한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분노하고 연대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혼자 만의 글이 아닌, 확장하는 글쓰기를 보여준다.


"빈자와 부자가 누려야 할 것이 나뉘어 있다는 시선, 가난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시각이야 말로 가난한 자들의 기본권을 좁힌다. 둘 다 똑같은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한된 형편 안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우아함을 누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는 버거운 일상에서 나름 투쟁하며 어떤 것은 포기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각자의 아름다움만은 기필코 쟁취해낸다… 우리는 그저 삶의 우선순위가 다를 뿐이다. 가난한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가 있다는 편견이 슬픈 건 단순히 그의 좁은 식견 때문만은 아니다. "있는 집 자식이나 세계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고는 본인의 삶도 그런 방식으로 좁게 만든다는 점에서 슬프다."

<흙수저 고백을 강요하는 사회> 에피소드 中





사과집 작가의 최근 행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글쓰기 동료와의 연대였다. 작가는 <마감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글쓰기 클럽을 운영하며 동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걸음을 딛고 있다. 브런치에 올려주신 글에 영감을 받아서, 나도 처음으로 참여가 아니라 글쓰기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분노의 글쓰기 클럽>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작가는 앞으로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넌 언제나 좌절하는 순간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거야." 작가님도 이제는 뚜렷이 알고 계시겠지만, 작가님의 책, 그녀가 꾸려온 글쓰기 공동체가 이미 사과집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표가 아닐까. 원하시는 방향으로 의심 없이 달려가시길 응원하게 되었다.





3장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산다>는 주체로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고민하고 움직이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그럴듯한 삶이 아닌 마음이 설레는 삶을 살고 싶은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다행인 것은 한 번 다뤄본 적 있는 초조함이라는 사실이었다. 과거의 나는 그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서 나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지 못했었다. 지금의 이 시기는 사실 첫 번째 조바심을 잘 다루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진다.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 고병권, 철학자와 하녀, 29쪽, 재인용>

당장 생존과 연봉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제 안다는 것, 나아갈 삶의 가치관이 선명해지고 있으며, 그런 시기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는 확신. "좋아하는 걸 잘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알랭 드 보통은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가는 길에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길의 끝에서 알게 될 때다"라고 말했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자아 찾기'를 시작한 내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탐색의 시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모은 <창작자들>이라는 책에서 임순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한 번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난 이후에는 그 결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모든 것을 고민해보고 결정했기 때문에, 자신이 고민했던 것을 바탕으로 그다음 선택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 고민을 대충 넘긴 사람은 다음 선택의 순간에 다시 또 굉장히 큰 갈등에 직면하게 됩니다. 별로 생각을 안 해본 문제기 때문에 모든 선택이 너무나도 어렵고 복잡해지는 거죠. “


 감독은 당신을 당신보다  아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절대 스스로의 인생을 맡기지 말라고 했다. 3장을 읽고 나서  말이 이런 것이었구나, 사과  작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소개글에 쓰여있듯, 작가는 지금 시사 PD 일하고 있다. 공채형 인간과 방을 나가지 않으면서 썼던 여행기 때에는 가끔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마음이 녹아있었다면.  책에서는 다시 방향을 수정하며 단단해진 작가님이 느껴진다.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고민하고 분노하며 연대하는 사과집님이 스스로의 강점을 앞으로 본업에서 어떻게 틔워내실 지도 기대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낸 사람이 단단하게 꽃을 피워낸 여정을 보고 싶다면, 함께 분노하며 연대감을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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