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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겸 Aug 23. 2016

Epilogue

Bye. For now.


70일 동안 5905km. 처음 이 여행을 구상했을 때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이걸 내가 완주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체력 문제는 둘째치고 그런 장거리 동안 자전거를 탄다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기에,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조차 모르고 뛰어든 것 같다.

장거리 주행 연습으로 춘천을 갔을 때, 어느 자전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인 아저씨께 내가 미국 횡단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걸 듣더니 아저씨는 자기도 그런걸 항상 해오고 싶었다며 응원을 해주셨다. 그러나 내가 혼자 갈 생각이라고 하니 온갖 겁을 주며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사고가 나도 혼자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하고, 설사 사막에서 죽어가거나 총을 맞을 수도 있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미국횡단을 하는 동호회가 있을테니 거기에 낑겨 단체로 가라고 하셨다. 물론 그분은 미국횡단을 해본적이 없다.

아마 아저씨 조언대로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기다렸다면 미국 자전거 횡단은 한낱 젊은 날의 망상으로 남겨졌을 것 같다. 물론 아저씨 말대로 죽을 위기는 정말 많았다. 내가 생사가 간당간당했던 에피소드를 다 줄줄이 썼다면 아마 부모님은 내가 있는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라도 나를 집으로 끌고 가셨을지도 모른다. 혼자이기에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쳐 때려치고 싶던 때도 많다. 그러나 그런 위기들 덕분에 나는 그 어느때보다 많은 사람들의 온정과 도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의 나라면 모르는 사람의 집에 무작정 문을 두들겨서 재워달라고 하거나 길바닥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거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속에서는 지푸라기 하나라도 감사히 쥐어답는다. 나는 오직 혼자였고 이동 수단도 자전거 뿐이었기에 그렇게 내 경계를 풀고 사람을 믿게 된거 같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5일째에 묵었던 John네 집에 도착하고 Ketu와 함께 얘기하다가 내 나이를 말하자 Ketu가 'So you're old enough for some sense'라 한것을 'So you're old enough for some sex'라고 잘못 들어 당황하기도 했다. 마침 John이 웃통을 벗고 있었기에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구나 싶었다. 내가 들은게 맞냐고 하자 Ketu 아저씨가 엄청 웃으면서 그러면 팜 스프링스까지 왔는데 그냥 갈 생각이었냐고 답했다.(물론 조크다... 아니 joke다) 그러면서 한참 우리끼리 웃었다.


처음에 남아있던 경계심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믿음과 신뢰로 변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 하더라. 지구 반대편에서 자전거 한짝 들고 온 나를 보자마자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내가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세계를 난 발견했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가 규정한 선입견, 미디어에서 내보내는 이미지들 때문에 실체 없이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에 아직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이제 나도 그중 한 명이다.

그렇게 혼자 뭔가 해보겠다고 떠난 여행이지만 이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어느때보다도 더 절실히 느낀 여행이 되어버렸다. 가는 길에 본 경치보다 마주친 사람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쯤 감사타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우선 나를 여행 중 도와주신 모든 분들... 아마 그분들이 없었으면 이미 난 죽었거나 중도포기였을 거다. 그러나 단순 도와주는 것을 떠나서 내게 믿음과 나눔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기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블로그 글에 올라온 분들 말고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이야기에 다 못 담은게 너무 아쉽다. 다시 되갚을 기회가 온다면 되갚겠지만 무엇보다 나도 그분들 처럼 누군가에게 댓가 없이 인간대 인간으로 선의를 배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블로그를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사실 이 블로그에 글을 처음 쓸 때 누가 읽겠나 싶었다. 나는 그냥 일기 목적으로, 그리고 부모님에게 생존신고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글을 올려도 조회수가 한자리였는데 마지막 글을 올릴 때쯤 누적 조회수가 1만이 넘었다. 때로는 쓰기 귀찮아서 대충 휘갈길 때도 많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특히 댓글로 응원해주신 분들... 한줄짜리 글이라도 홀로 있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되더라.

마지막으로는 당연히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강경하게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 아들의 고집에 져주셨다. 물론 부모님이 뉴저지에 살고 계셨기에 내가 여행을 하면서 좀 더 안심이 되었던 것도 있다. 그런데 가장 감사한 거는 결국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신 것이다.

사실 이제 말하건대 여행은 본래 NYC-LA였다. 그런데 아빠께서 자꾸 내가 무슨 사이클 선수냐면서 내가 미국횡단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자, 내가 '아빠한테 한 번 보여주자' 싶어 반대로 LA에서 출발해 뉴욕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면 부모님 집에 도착해 '봤죠?'라고 한 마디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유치하지만 그런 면에서 좀 오기가 있는 것 같다.(어쩌면 아빠의 전략에 빠져든 것일지도)

그런데 처음에는 전화할때마다 비행기표를 보내줄테니 집에 오라던 아빠가 나중에는 내 가장 열혈팬이 되셨다. 특히 로키 산맥 한가운데서 자전거 짐을 잃어버려서 나는 덴버에서 뉴저지까지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는데, 그전까지 집에 오라고 노래를 부르시던 아빠는 다시 사고 끝까지 완주하라며 캠핑용품을 다시 살 돈을 입금해주셨다. 나중에는 현수막까지 제작하고 꽃목걸이도 준비해 놓으셨다. 그리고 완주했을 때 그 어느누구보다 자랑스러워 하셨다.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대부분 중국인이나 한국인) ordinary 부모님이라면 내가 이걸 하게 내비두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Extraordinary한 부모님을 가져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내 여행기를 마무리 짓는다. 에필로그에 쓸 멋진 명언들을 여행하는 내내 생각했는데 귀국행 비행기를 타니(지금 비행기에서 글 쓰는 중이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뉴저지에서 맥주좀 덜 마시고 글좀 쓸걸 그랬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난 아직도 무엇을 하고 먹고 살아야할지 고민중인 학생이다. 그러나 이 여행에서 깨달은 단 한 가지를 말하자면 출발지가 있고 목적지만 있으면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다는 것. LA에 친구가 한 명있고 뉴저지에 부모님이 계시기에 무작정 LA로 가서 뉴욕을 향해 달렸다. 계획 없이 갔기에 자전거로는 도저히 달릴 수 없는 길도 많이 마주치고 탈수로 죽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결국 동쪽으로 계속 달리다 보니 어떻게든 겨우겨우 도착하더라. 가는 길에 돌아가기도 하고 노숙도 좀 하면 어떤가. 결국 도착만 할 수 있다면 문제 없다. 어쨌튼 이제 이 글을 마쳐야할 시간. 그동안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럼 다음 목적지가 생길 때까지... 이만 안녕.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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