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
그 속도가 너무도 빠른 탓에 트렌드에 발 맞춰가려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옷을 소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누군가가 수십벌의 옷을 구입할 때, 다른 누군가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일하며 옷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원재료가 직물이 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많은 양의 물과 화학물질이 쓰입니다. 자켓 하나를 만들기 위한 1kg의 직물을 한번 생산하는 데는 2L짜리 페트병 420개 분량의 물이 필요하고, 거친 원재료를 부드러운 섬유로 만드는 데는 8,000여종의 화학성분이 사용됩니다. 이 성분들 중에는 발암성과 알레르기 유발성을 가진 것들도 있고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쓰레기가 쌓입니다. 트렌드에 뒤쳐진 옷들, 애초부터 수명이 짧았던 품질 낮은 옷들,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에 흠뻑 적신 옷들은 생산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버려집니다.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들은 땅에 묻혀 토양을 오염시킵니다. 대량 생산으로 인한 대량 폐기. 악순환입니다.
이렇듯, 트렌드를 좇는 의류 산업은 대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노동 착취, 유해 물질 사용, 환경 파괴와 같은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폐해는 석유산업에 이어 두번째로 심각합니다.
지금 내가 입는 옷은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책임 있는 소비자로서 우리는 매일 입는 옷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 일찍이 의류 산업이 가진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 해결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그 방식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공정무역이란 빈곤 완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윤리적인 무역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생산된 제품에 대해 공정한 대가를 치르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것, 과도한 노동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 것, 남녀 노동자 간 동등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 환경을 파괴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생산하는 것까지. 모두 공정무역의 원칙에 포함됩니다.
공정무역의 역사는 생각보다 깁니다. 1940년대에 공정무역 공급망이 처음 개발되었으니까요. 하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이용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와 기업 모두 공정무역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계기를 하나 꼽자면, 라나 플라자(Rana Plaza) 붕괴사건을 꼽을 수 있을겁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13년 4월 24일 일어난 사상 최악의 붕괴사고 말이죠. 이 사고(Letter는 인재라고 생각합니다)로 인해 1,127명이 죽고 2,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문제는 이 재난이 이미 예견된 바 있었다는 점입니다. 라나 플라자가 붕괴되기 하루 전, 당시 건물 관리자였던 압둘 라자크 칸은 건물주 소헬 라나에게 붕괴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심지어 사고 당일에는 경찰까지 와서 직원들을 모두 대피시키라고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일어난 것은 건물주 소헬 라나의 욕심, 그리고 라나 플라자에 의류 생산을 하청한 회사들의 압박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 공장은 29개의 패션 브랜드들의 제품 생산을 도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고 이후 피해자 보상계획에 참여한 것은 Primark, Loblaw, Bonmarche, El Corte Ingles를 포함한 단 9개의 브랜드 뿐이었습니다. 다른 브랜드들은 보상 계획을 거부하거나 참여하지 않았죠.
언론은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라나 플라자에 하청했던 브랜드들이 보상계획에 외면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라나 플라자’가 개발도상국에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도 말이죠. 소비자들은 분노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알려진 모든 기업들에 항의전화와 메일이 빗발쳤고, 불매운동도 일어났습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들은 해명을 하거나 말을 바꾸기 시작했고, 몇몇 기업은 피해자 보상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입장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라나 플라자 붕괴 사건은 일부 패션 브랜드의 부도덕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제3세계 국가의 비윤리적인 노동 환경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자 인증기관이 생기고, 참여하는 기업들도 늘어났습니다.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로는 파타고니아, 피플트리, 그리고 나우가 있습니다.
공정무역 패션 브랜드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영상과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Peopletree 홈페이지 http://www.peopletree.co.uk/
NAU 홈페이지 http://www.nau.co.kr/
천연 섬유와 화학 섬유. 어떤 게 더 좋게 들리시나요? 왠지 모르게 천연 섬유가 훨씬 더 좋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대표적인 천연 섬유 ‘면’만 해도 말이죠.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를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병충해에 약한 특성 때문에 농약와 해충제도 대량으로 사용됩니다. 매년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해충제의 25%가, 농약의 10%가 목화밭에 뿌려집니다. 이런 생산 과정은 생물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해 지구온난화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근래 들어서는 GMO까지 개입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죠. 세계 최대 면 생산지인 인도(2014년 기준)에서 생산되는 면의 95%가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생산된 면입니다. 물론 GMO의 유해성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하죠. 뿐만 아니라 GMO 목화는 해충제와 농약에 내성이 강해, 더욱 강력한 화학물질을 더 많이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조작 목화 생산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기목화 재배는 기존의 목화 생산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유기농 목화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3년 동안 농약이 닿지 않은 땅에 목화씨를 뿌리고, 손으로 잡초를 뽑고, 무당벌레를 푸는 등 친환경적인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재배기간이 길고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은 비교적 높지만, 피부에 유해하지 않아 신생아도 걱정 없이 입을 수 있습니다.
국내의 경우, 유기농 면 생산에 대한 정부 기준이 유럽/미국과는 달라 제조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첨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국내 생산 제품 구매 시에는 한번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유기면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s) 인증을 받은 기업이나 제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브랜드 중 눈에 띄는 것은 콘삭스입니다. 아직 제품군이 많지는 않지만, 눈여겨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콘삭스 홈페이지 http://www.cornsox.co.kr
7만 2천톤. 서울에서 한해동안 버려지는 폐원단의 양입니다. 가정이나 기업에서 버려지는 폐의류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양이 버려지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버려진 옷들은 땅에 묻힙니다. 문제는 옷이 썩는 데 최대 100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뿜어내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버려지는 원단과 옷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업사이클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은 ‘리사이클링’에서 한발짝 진보한 개념입니다. 기존의 '리사이클링'이 다시 사용하는 것에만 그쳤다면, '업사이클링'은 버려지는 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새 것’으로 만들어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트럭에 사용된 폐현수막과 자동차 안전벨트 같이 버려지는 재료를 가지고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의 제품들이 좋은 예시죠.
해외에서는 일찍이 ‘업사이클링’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프라이탁’은 1993년에 탄생했고, 폐소방호스나 커피백, 낙하산 등으로 가방과 악세사리를 만드는 '엘비스 앤 크레세'는 2005년 영국에서 런칭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애정공세로 유명했던 '솔메이트 삭스'의 시작도 2000년이었습니다. 세 브랜드 모두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업사이클링’에 대한 국내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업사이클링 브랜드 수가 2012년 23개에서 2014년 68개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68개 브랜드 가운데는 코오롱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터치포굿, 리블랭크, 오르그닷 등이 포함됩니다.
SBS의 2016년 12월 21일자 보도 ("기계에 손 빨려들어갔는데..." 119 신고하려는 휴대폰 뺏은 코오롱)를 고려하여 코오롱의 브랜드 래코드(Re;code)에 대한 내용을 정정했습니다.
터치포굿 홈페이지 http://www.touch4good.com
리블랭크 홈패이지 http://www.reblank.com
오르그닷 홈페이지 http://www.orgdot.co.kr
'지속가능한 패션'은 현재진행형인 동시에 미래형입니다. 여전히 패션 산업 전반에는 비윤리적인 행태가 만연하고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변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는 강합니다. 생각보다 더 강합니다. 라나 플라자 사건 이후 기업들을 바꾼 건 정부도, NGO도, 국제기구도 아닌 바로 소비자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공감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 말이죠.
Letter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다음 번 쇼핑 때 당신이 이 글을 떠올렸으면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구매를 망설이는 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잠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 당신의 옷장에 새로운 '지속 가능한 패션' 아이템이 자리 잡는 것까지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Warmly,
L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