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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현 Sep 22. 2018

이제는 '코뮌헬프'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는 개인

공동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종교인들이다. 특히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체를 강조한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강력하게 추진해온 마을공동체 복원사업이나 협동조합 열풍 영향이 컸다. 자연스럽게 공동체 하면 종교적 공동체 혹은 마을 공동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 않거나 운동가가 아니라면 공동체라는 단어가 딱히 나와는 관계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공동체의 영어 표현인 커뮤니티는 그보다 더 넓은 느낌을 준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커뮤니티는 공통의 것을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공유의 범위가 믿음(belief)이나 가치(value)뿐 아니라 경향성(intent), 자원(resources), 선호(preferences), 필요(needs), 리스크(risks) 등을 포함하고 있다. 커뮤니티 개념의 범위가 공동체라는 단어보다는 더 넓게 느껴진다. 


공동체라는 단어는 마지막 글자 '체' 때문에 구속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체'는 몸이니까,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들어가는 것은 자유지만 나오는 것은 어려운, 말하자면 어떤 종교 집단이나 마을의 구성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종의 구속을 포함하는 단어로 인식된다. 그러나 커뮤니티라고 하면 느낌이 조금 더 가볍다. 등장과 퇴장이 자유롭고 각 개개인의 자유가 인정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고찰하고자 하는 것도 공동체보다는 커뮤니티에 가깝다. 커뮤니티 안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생각해보자.


이는 어쩌면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골목사장 분투기>라는 책을 쓰면서 작가라는 정체성을 얻게 되었다. 그 과정이 매우 우발적이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책을 써야겠다고 작정한 적도 없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친한 선배님들과 함께 소셜 카페를 창업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나름 정리한 것들을 책으로 엮어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실 나의 경험은 매우 피상적이고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내가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카페 운영자로, 지금은 몇 비영리 단체들의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게 된 것도 순전히 커뮤니티 덕분이었다.

 

몇몇 시민단체 운영위원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첫 책인 <골목사장 분투기>를 쓰면서 그다지 큰 부담이 없었던 것도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이미 사회적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의 자기계발적 목표 설정이야말로 우리가 지양하는 바다. 단지 커뮤니티가 지닌 속성으로 인해 내가 전에는 몰랐던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고,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커뮤니티에 속한 개인은 그 안에서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내게는 그것이 글쓰기로 표출되었다. 어떤 이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것이다. 생각해보건 데 비단 나뿐 아니라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동료들이 꽤 있다. 그분들을 보면 기존의 자기계발 프레임을 벗어나도 충분히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구성원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하는 이들을 관찰해보면 시선이 주로 '타자'를 향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주장하는 '자기계발'의 프레임과는 현저히 다른 시각이다. 수많은 자기계발 도서가 대형 서점들을 메우고 있지만 정작 그를 통해 성장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은 그 책들이 너무 '나'만 향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자기계발 홍수 시대에 더 이상 그 물에서 헤엄치기를 멈추고 물 밖으로 나와야 함께 걸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자기계발이 아닌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성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자기계발을 영어로는 Self-help라고 하니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성장을 '코뮌헬프'라 하면 어떨까*. 코뮌이 헬프 앞에 위치한 이유는 현대 사회가 제시하는 자기계발 프레임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으로 노동이 상품화되고 자본의 하위 개념으로 재편된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계발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 상황이 코뮌헬프를 필요로 한다. 우리 잘못이 아닌 시대의 부조리로 마음에 패인 상처는 홀로 덮어가며 살아갈 수 없다. 상처를 돌아보기엔 우리 삶이 너무 고되다. 


시대가 주는 상처는 사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발견하고 싸매어 줌으로 극복해야 한다. '우리'라고 하는 맥락 안에서만 비로소 상처는 치유되고 삶은 가능해진다. 코뮌헬프는 단순히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뭉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불합리와 개인의 자유를 얽매는 모든 구조의 폭력에 능동적으로 맞서는 것이다. 언어가 다소 거창하지만 그렇다고 독재정권과 싸우던 운동권 공동체 같은 정치 결사체를 뜻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 결사체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 또한 시대적 산물일 것이다. 지금 찾는 '우리' 지향적 삶의 방식은 더 자유로운 개인, 더 행복한 개인을 추구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벗어난 인간, 시대가 주는 상처에 매몰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이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타인들과 함께 서있는 커뮤니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운 개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에 커뮤니티적 삶을 지향한다. 이미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생각을 덫 붙임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코뮌헬프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이 글을 처음 기획했던 유승재 편집자다. 몇 명의 필자와 함께 '코뮌헬프'라는 주제로 책을 만들기로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묻히고 말았다. 제목의 소유권은 유승재 편집장에게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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