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지향의 조건들
커뮤니티 지향의 첫 관문은 개방성이다. 커뮤니티에 그다지 관심이 없더라도 21세기 사회는 우리에게 개방적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개방적 인간을 위한 새로운 소통 체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22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이 소위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다. 대한민국도 국민 전체 중 절반이 넘는 인구가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고 있어 5위 안에 든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개방적 인간에 대한 요구가 상당한 것 같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글들은 대체로 중구난방이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온다. 정치, 경제 등 거대담론부터 오늘 점심으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까지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읽는 것에 시간을 소비한다. 글 좀 쓴다는 어떤 지식인은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페이스북 하는 사람들 중에 '노출증'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는 식의 비아냥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기장에나 쓸 이야기를 왜 사람들에게 공개할까? 내가 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다.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민망한 싸움판이 열리기도 한다. 헛소문이 돌기도 하고 스스로 헛소문을 걸러낸다. 이 종잡을 수 없는 소통의 채널이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이슈에 대한 여론의 창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초창기부터 주의 깊게 관찰했고 직접 사용해오면서 상당한 존재감을 유지해온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소셜미디어가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을 상당히 바꾸어놓았다고 평가한다. 소셜미디어 이전에는 주로 언론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었고 온라인상에서도 소위 파워블로거라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주도되었다. 특정 그룹에 의해 어젠다가 설정되면 일반 시민들이 편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였다. 그런데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이후에는 오히려 여론의 이니셔티브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물들이 거의 대부분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는 것이고 어떤 여론의 이니셔티브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대중의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서 제2, 3의 이슈 확대 재생산이 무지하게 빠르다는 것이다.
고재열 기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기사화되는 경우가 흔해지는 현상을 두고 여론 형성 과정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주요 언론 매체의 기사가 소셜미디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주요 인물들의 발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고로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셜미디어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기업들도 이러한 추세를 쫓아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관심이 많다. 경영학계에서도 마케팅을 중심으로 소셜미디어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 소셜미디어의 활용도는 상당히 중요해졌다. 최근 경영계를 주름잡는 회사들을 보면 개방성이 경영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2, 30대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인 Google은 개방성(Openness)의 대명사로 통한다. 일반적으로 그 반대편에 서 있다고 평가받는 애플의 경우에도 앱(Application) 환경을 디자인하면서 개방성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애플의 전체 틀은 개방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이나 업무 환경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애플과 삼성 간의 소송전이 벌어지면서 재미있는 사실들이 여럿 드러났었다. 그중 하나가 디자인 프로세스에 관한 것이었다. 삼성은 1,000명의 디자이너가 랩에서 디자인하는 반면 애플은 15명 정도의 디자이너가 부엌에서 아이폰을 디자인했다고 밝혀져 화재가 됐었다. 물론 기사를 위한 과장이 어느 정도 있었겠지만 상징적인 차이로 보였다. 그런 개방적 환경이 애플이 강조하는 인문학적 창의성의 토대일 것이다. 최근에는 각종 언론과 전문가들이 애플의 장기 전략을 위해서 대외적으로 더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애플뿐만이 아니다. 21세기 기업에게 개방성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 되고 있다.
기업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혁신'일 것이다.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는 경영학계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자 기업의 존재 목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개방성이 혁신 어젠다를 이끌고 있다. 혁신은 기업의 핵심 역량이 집중되는 분야다. 혁신을 통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어떤 상품을 만들거나 프로세스를 개발해서 타 기업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당연히 혁신의 내용은 기밀에 붙여졌다. 그런데 최근의 혁신은 그 양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기업 조직 연구의 대가인 체스보로 교수에 따르면 이미 많은 기업들이 혁신의 원천을 내부 역량이 아닌 외부에서 찾고 있다. (Chesbrough <Open Innovation>) 개방적 혁신 사례를 찾을 때 대부분 인터넷 기반 IT기업을 주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 연구를 보면 제조업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글로벌 제조 기업인 프록터 앤 갬블(Proctor & Gamble)은 신규 사업을 위한 R&D 개념을 '연결 그리고 계발(Connect and Develop)로 전환시켜 상당한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신규 사업의 아이디어를 고객이나 협력사 등 외부에서 얻고 그 아이디어를 내부 혁신 팀이 발전시키는 개념이다. (Sakkab NY. 2002. Connect and develop complements research and develop at P&G. Research-Technology Management 45(2): 38–45) 코펜하겐 경영대학원의 라우센과 셀터는 영국 제조사의 경우를 조사했는데 외부 자원을 깊고 넓게 사용한 기업일수록 혁신 능력이 더 뛰어났음을 밝혀냈다. (OPEN FOR INNOVATION: THE ROLE OF OPENNESS IN EXPLAINING INNOVATION PERFORMANCE AMONG U.K. MANUFACTURING FIRMS) 기업뿐만이 아니다. 정부나 NGO 등 필연적으로 외부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맺게 되는 모든 조직은 개방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개방성은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