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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래 May 30. 2022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선택에 관하여 말하자면,

언제부터였을까. 유기되었거나 실종된 동물이 올라오는 포인핸드 앱을 들여다보는 게 습관이 됐다. 인스타그램 앱을 열어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당겨서 새로 올라온 뉴스피드를 수시로 구경하는 것처럼 나는 전국 보호소에서 올라온 리스트를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그곳엔 온갖 고양이가 다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편의점 앞에서 발견된 생후 일주일 된 새끼고양이부터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고양이, 주인의 사망으로 오갈 데 없어 보호소에 입소한 고양이까지 사연도 가지각색이었다. 게시된 사진 왼편 하단에는 상태를 표시하는 라벨이 붙었다. 처음 게시글이 올라올 땐 공고 중으로 시작했고, 공고 기간이 종료되면 귀가, 입양, 자연사, 안락사 중 하나로 라벨이 바뀌었다. 귀가 혹은 입양으로 바뀌면 기뻤지만, 자연사나 안락사로 바뀌면 한 번도 보지 못한 사진 속 고양이들에게 어쩐지 미안해지기도 했다.


보호소에 입소한 고양이는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만 보호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선 약육강식보다 더 가혹한 세계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구는 것 같았다. 성묘(성인 고양이)는 이름 모를 누군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버려져서 아픔의 상처가 있을 것 같다며 자묘(어린 고양이)를 선호했고, 길고양이는 비위생적이고 야생성이 살아있을 것 같아 컨트롤이 어렵다며, 품종 고양이를 더 선호했다.


보호소에서 품종 고양이와 길고양이가 동시에 유기 동물로 공고되더라도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새하얗고 긴 털을 가진 터키시 앙고라, 짧은 다리의 먼치킨, 귀가 접힌 스코티시 폴드, 털이 없어 외계 고양이로 불리는 스핑크스 등 누가 봐도 품종으로 보이는 고양이의 게시글에는 업로드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양문의 글이 줄줄이 달렸고, 가끔은 누가 먼저 문의 했는지를 놓고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길고양이 게시글, 검정 바탕에 고동색 페인트 얼룩이 군데군데 묻은 것 같은, 흔히 카오스로 분류하는 무늬나 일정한 패턴이 없는 얼룩무늬 길고양이의 게시글에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댓글 하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품종 고양이 사진에는 공고 기간이 지나면 많은 경우 입양 완료 라벨이 붙었지만, 길고양이 사진에는 많은 경우 자연사, 혹은 안락사 라벨이 붙었다.


보호자로서 입양한 아이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품종을 선호하든 말든 그건 오롯이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왜였을까, 다다익선인데. 수치로 따지자면 한 마리라도 더 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인데도 그랬다. 게다가 나조차 품종 고양이 넷을 키우면서, 품종 고양이에게만 관심 보이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이율배반적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씩 양면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면,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스코티시 폴드. 코 분홍, 꼬리 중간 살짝 꺾임, 오른 뒷다리 발톱 하나 더 있음, 사람 따름’


그날도 포인핸드 앱을 무심히 열었다. 무척이나 귀엽게 생긴 스코티시 폴드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짤따랗게 접힌 귀, 빵떡같이 동그란 얼굴, 커다란 눈망울, 정 대칭의 이마 무늬, 둥글고 통통한 체형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인형 같았다. 스코티시 폴드는 한때는 슈렉 고양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품종이기도 했다. 사진 속 고양이는 지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것 같은 맹한 표정으로 엎어져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물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뭔가가 온 바닥에 엉겨 붙은 철장과 그 위에 놓인 고양이의 동그란 형체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모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보호소 공고 기간은 열흘. 열흘 내 주인이 찾아가지 않으면, 소유권은 보호소로 넘어가고, 담당자는 입양신청서를 검토한 뒤 적합한 보호자를 찾아 고양이를 보낼 것이다. 반나절 만에 열여섯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고양이도 금방 입양 라벨로 바뀔 것이었다.


유난히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열흘이었다. 포인핸드 앱에 들어가 게시물을 찾았다. 귀가로 바뀌어있으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고, 입양으로 바뀌어있다면 또 한 번 역시나, 하겠지. 기대와는 다르게 여전히 고양이는 공고 중이었다. 댓글은 총 스물일곱 개.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어.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아시죠 범백? 며칠 전에 보호소 안에 범백이 돌았어요. 어제부터 얘도 살짝 설사하거든요. 진단 키트도 음성이었지만 혹시나 싶어 말씀드렸더니, 아휴. 담당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열 명이 넘는 입양 신청자에게 하나하나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죄다 입양 포기 의사뿐이었다. 죄송하지만 입양 신청은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말.


알고 있었다. 범백. 범 백혈구 감소증이라는 면역력이 약한 새끼 고양이에게 잘 생기는 전염성 장염을 말하는 거였다. 설사로 시작해 혈변, 탈수, 영양실조, 빈혈을 차례로 겪으며 생명을 앗아가 버리는 치명적인 질병이기도 했다. 새끼고양이의 경우 치사율이 90%가 넘을 정도였다. 성묘는 이에 비해 범백에 걸리는 경우가 드물었고, 걸렸어도 10% 내외의 치사율이었다. 치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입양신청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나요? 모르는 척 물었다. 원칙적으로는 안락사라고 그가 말했다. 보호소 공간이 한정적이니 개체 수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그중에서도 일 순위가 공고 기간이 종료된 동물 중 아프거나 기형인 경우였다. 아찔했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사랑받았을 텐데. 찾는 사람이 없어서, 머물 공간이 없어서 이렇게 인위적으로 생을 끊는 게 맞는 건가, 숨이 멀쩡하게 붙어있는데.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다. 제가 내일 갈게요. 그냥 두세요. 나는 충동적으로 그렇게 말했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품종 고양이니까, 어떻게든 입양될 거야. 사진 봐.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귀엽기만 하고만. 발가락 한 개 더 많은 게 뭐 대수라고. 데리러 가겠다는 건 앞뒤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불안했지만, 불안해서는 안 됐다. 나는 이미 데려오기로 선택했으니까 의연해야 했다.


직접 마주한 고양이에게선 형언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났다. 분뇨와 오물 냄새, 싸구려 사료 냄새, 케케묵은 비린내가 한데 뒤섞였다. 고양이는 사진만 보고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였다. 7kg은 되어야 할 체구가 겨우 3.1kg. 아기공룡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에 나오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울부짖었던 가시고기가 떠올랐다. 보호소 공고의 설명처럼 발가락이 여섯 개였고, 매끈하게 쭉 뻗어야 할 앞발 허리와 뒷발 허리 각각에 둥근 뼈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고양이의 발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둥글게 나온 뼈도 동시에 지면에 닿는 것처럼 보였다.


연골이형성증, 스코티시 폴드 특유의 유전병이었다. 고양이의 상태를 본 의사는 변형된 연골이 지면에 닿을 때의 고통이 사람으로 치면 무릎으로 걷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예 다리 전체를 절단하지 않는 이상 평생 진통제를 먹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고양이는 절대 달리지 않았다. 그저 어기적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상태의 아이를 버릴 수 있는 걸까. 나는 화를 눌러 삭히고 보호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물었다.

동물병원에 유기된 거라고 했다. 병원에 며칠만 맡아달라고 하고선 두 달이 지나도록 찾지 않았다고. 병원에서 몇 번이나 보호자에게 전화했는데, 그때마다 돈이 없어 데리러 갈 수 없으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단다. 안락사가 시행되는 보호소로 인계한다고까지 말했는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두 달 동안 좁은 유리장 안에서 지내던 스코티시 폴드는 그렇게 보호소 철장으로 옮겨졌다.


구조 사연을 SNS에 정리해 올렸다. 안타깝고 딱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며, 구조해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소액이지만 아이 치료비로 사용할 후원금을 보내주고 싶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인상적인 건 스물세 살의 프리랜서 여자가 남긴 장문의 댓글이었다. 보호소 공고를 본인도 일찌감치 보았으며, 계속 망설이기만 하다 입양으로 바뀐 걸 보고 아주 아쉬웠다고. 아이 얼굴이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입양을 전제로 한 임시 보호를 원했다. 프리랜서 특성상 종일 집에 머무는 데다 이미 고양이를 반려한 경험도 여러 번 있었다. 여러모로 조건에 잘 맞았다.


그녀의 집으로 고양이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양이와 나를 반겼다. 그녀는 고양이가 지낼 곳을 마련해두었다며 내가 방안 곳곳을 둘러보길 권했다. 조심스럽게 고양이가 든 이동장을 그녀의 안방 한편에 내려두었다. 이동장 문을 열자마자 고양이는 머리를 밖으로 쑥 내밀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좌우를 살피더니 이동장에서 완전히 나와, 조심스럽게 여기저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잠깐 누구를 찾는 듯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벌러덩 바닥에 누워 배를 뒤집어 까고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녀에게 아이 상태를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사진으로 짐작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고. 그간 잘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상태이니 일단은 뭐든 잘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의사에게 들었던 진단 결과를 설명해주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서 차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런 그녀의 변화가 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모른 척했다. 꼭 입양 전제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이 컨디션이 회복될 때까지만, 부담 갖지 말고 돌봐주세요. 급한 일 있음 언제든 연락해 주시고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가 부엌으로 나왔다. 귀퉁이에 있는 고양이 화장실 앞에서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냉큼 모래 위에 나뒹굴며 그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이틀 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콜록콜록, 정말 죄송한데 제가 갑자기 알레르기성 천식이 생겨서요. 좀 전에 응급실에 다녀왔거든요. 빨리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두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시 보호 기간이 길어질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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