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 시험 결과가 발표된 이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동기들 앞에서 퀄 시험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금기어가 되어 버렸다. 우리 동기들 가운데 대략 50% 정도가 전과목을 패스했고, 나머지 50%는 적어도 한 과목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동기들 가운데 1년 차 평균 학점이 가장 좋았던 두 명이 퀄 시험에서 한 과목씩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퀄 시험이 이름을 철저히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이다 보니, 평소에 아무리 학점이 좋았어도 시험 당일날 실수를 하면 가차 없이 불합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동기들 가운데 나랑 가장 친하게 지내는 제프(Jeff)를 비롯해서 몇 명이 모든 과목에서 불합격을 했다. 여름 내내 다 같이 열심히 스터디를 했던 친구들인지라, 겨울에 치르는 재시험에서 모두들 꼭 합격하길 빌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서글픈 현실이지만,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은 이제 박사 과정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사실 나는 1년 차 내내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별로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퀄 시험에서 떨어지면 당장 짐을 싸서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퀄 시험을 통과하면서 이곳이 비로소 '우리 학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앞으로도 최종적으로 학위를 받기까지는 거쳐야 할 단계들이 많이 남았지만, 적어도 시험 성적 때문에 앞으로 학교에서 강제로 나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들어가면 퀄 시험에 합격한 아이들과 불합격한 아이들의 표정이 확연하게 대비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공부가 아닌 무언가를 마음 편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미국에 온 뒤 우리는 텔레비전을 구입하지 않았다. 한가롭게 앉아서 TV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퀄 시험에 합격하면서 드디어 우리도 TV를 갖게 되었다. 코스트코에서 TV를 한 대 사서 차에 싣고 집에 돌아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이제 나도 거실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TV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늘 "퀄 시험에 합격한 이후"로 유예시켜왔던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된, 돌이켜보면 박사 과정 기간 중 가장 즐거웠던 2년 차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