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스 Jul 01. 2020

어린이집 첫째 날 (중)

- 토쥬맘의 이야기

(이번 편은 게스트로 토쥬맘을 모셨습니다)


미국 학제는 주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6-3-4 학제를 따르고 있었다.  5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Kindergarten(유치원) 입학해서 5학년까지  6년을 다니게 된다. 그다음,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4년을 거치는데,  13 동안의  과정을 K-12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교육의 시작이 초등학교 1학년인 반면, 미국의 학교 교육은 초등학교에 소속된 유치원에서 시작된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등학교 입학 전, 5-7세 정도에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것처럼 미국에서도 부모들은 만 3세부터 아이들을 프리스쿨(preschool)에 보낸다. 우리가 사는 주는 주 정부에서 프리스쿨을 운영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만 3세가 되면 하루에 세 시간부터 길면 일곱 시간까지 첫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토쥬군이 곧 만 3세를 앞두고 있었으므로, 나도 조금만 참으면 동네 아이들과 같이 공립 프리스쿨에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토쥬군이 태어난 뒤,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정말 지쳐가고 있었다. 보통 태어나서 돌까지 엄마가 가장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돌부터 두 돌까지가 더 힘들었다. 돌 이전에는 배 고프다고 울고, 기저귀 젖어서 울고, 졸려서 울고, 이런 본능에 답하는 게 전부지만 돌 이후부터는 아기들이 생각이라는 걸 한다. 정말 놀랍게도 부모의 말을 다 알아듣고 부모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의사소통이라는 걸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름’이라는 걸 인식하는데, 기질에 따라 그 다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도 있고, 잘 모르고 넘기는 아이도 있다.


토쥬군은 정말 그 ‘다름’을 아주아주 예민하고 까다롭게 느꼈다. 다른 집에 놀러 가기라도 하면 토쥬군은 문 앞에서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한참 지나 집에 들어가서도 아이가 공간에 적응할 때까지 오래 동안 아이를 안고 서 있어야 했다. 밖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인사라도 하면 울음을 터뜨려, 사람들이 나에게 가까이 오지도 못했다. 미국에 온 이후 남편은 매일 쉴 틈을 주지 않는 박사 과정 수업을 듣고 과제를 제출하고 또 그 와중에 조교(TA)까지 해야 했다. 나는 점점 고립된 섬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나 역시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온 '학생'이었기에 수많은 대학원생들이 사는 학교 아파트에서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는 나의 현실이 너무도 비참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가족도 없었다. 다행히 주변에 좋은 한인 가족들이 많았지만, 토쥬군의 낯가림이 너무 심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아이를 프리스쿨에 보내기로 결정한 , 나는 주변의 프리스쿨들을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립은 공립과 달리  2세부터 받아주는 경우도 많았다. 인터넷에서  프리스쿨  리뷰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며 학비도 비교했다. 당시에는 내가 운전을 못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걸어서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조사를 하다보니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  거리에 '드림 메이커'라는 프리스쿨이 눈에 띄었다. 산책  아이를 데리고  근처까지 걸어갔는데,  마침 밖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나에게 먼저 인사를 했고, 나는 ‘지나가다가 아이들 소리가 들리길래 한번 와봤어요라고 의도치 않은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은 마침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이라며 들어오라고 해 주셨다. 나는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린 뒤, 안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진짜 놀랍게도 아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프리스쿨 안으로 들어가서 장난감을 들고 자기 집인 것처럼 놀기 시작했다. 자주 보는 친구 집도 앞에서 기본 30분은 울고 들어가는 애가 처음 보는 공간에 쓱 들어가 철퍽 앉아서 노는 모습이 신기했다. 선생님은 간단하게 아이들이 오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설명을 해 주셨다. 공간은 아주 작았지만 입학 정원이 15명이었고, 선생님은 세 분이나 계셨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실내 공간만큼의 실외 공간이었는데 아이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모래놀이를 하고 자동차를 끌면서 놀 수도 있었다. 첫 만남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 날 이후, 나는 선생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첫 등교날을 정했다.


유모차를 몰고 아이를 프리스쿨에 처음으로 데려다주러 가는 길은 누가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달아놓은 마냥 무겁고 힘들었다. 내가 미쳤지, 이렇게 예쁘고 어린아이를 왜 놓고 올 생각을 했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부터 보낸다고 할까,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나중에 학교가 가까워져 아이들 소리가 들릴 때는, 가슴이 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싶었다. 물론 그러면 소리가 더 커질테지만...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집 첫째 날 (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