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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06. 2020

내 박사과정의 동반자, 맥북

내가 애플의 팬이 된 이유

내 전공인 경제학의 경우, 1년 차 필수 과목들은 수업 내용의 대부분이 손으로 직접 수식의 해를 도출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것으로 구성된다. 조금 과장하면, 박사과정 1년 차에는 오로지 종이와 연필, 지우개만 있으면 된다. 실제로 나는 첫 학기가 시작했을 때 노트북(laptop)을 살까 고민하다가 너무 바빠서 시기를 놓쳤는데, 1년 내내 노트북 없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2년 차로 올라가니, 각 수업마다 텀 페이퍼(term paper)를 적어도 하나씩은 요구했다. 텀 페이퍼는 한국에서 '리포트'라고 부르는 보고서를 말하는데, 박사과정 수업에서 제출하는 텀 페이퍼는 수업 내용과 관련된 소논문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론 수업의 텀 페이퍼는 수식을 이용해서 모형을 만들어야 하고, 응용 수업의 텀 페이퍼는 실제 데이터를 이용한 통계 분석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은 곧, '종이와 연필, 지우개만 있어도 됐던 시기'는 이제 끝났음을 의미했다. 바야흐로, 노트북이 내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노트북은 진작부터 맥북으로 결정했다. 나보다 먼저 박사과정에 진학한 친구들이 가장 많이 추천했던 모델이 맥북이기도 했고, 윈도 컴퓨터 기반인 한국에서는 좀처럼 사용하기 힘든 맥북이기에 미국에 있는 동안 한번 써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맥북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예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신학기가 시작하는 8월이면 각 가전업체들이 학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할인 쿠폰을 발행한다. 2년 차가 시작되던 첫 주에 나도 할인 쿠폰을 이용해 베스트 바이(Best Buy)에서 맥북 프로를 구입했다. 애플 감성의 깔끔한 맥북 박스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 뿌듯한 기분, 아마 경험해 본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맥북에게 '맥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날 이후, 맥돌이는 나의 박사과정 동반자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집이든, 도서관이든, 카페든, 언제 어디서나 맥돌이는 나와 함께 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데이터 정리 작업,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통계 분석의 결과를 확인하던 순간, 하루 종일 앉아서 한 장도 못써서 좌절했던 논문 작성의 순간, 긴장되던 논문 발표의 순간, 낯선 도시의 호텔 방에서의 인터뷰 연습 순간, 탑승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아 비행기 보딩을 기다리던 순간, 그때마다 맥돌이는 항상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낯선 도시의 호텔방에서 다음날 있을 인터뷰를 준비했을 때의 맥돌이


신기하게도 맥돌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부하가 많이 걸리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이용해 통계 프로그램을 수없이 많이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부팅 속도가 느려진다거나 시스템이 갑자기 다운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정기적으로 포맷을 해줘야 하는 스트레스도 맥돌이를 만난 이후로는 느낄 필요가 없어졌다. 맥돌이는 지금도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이, 내가 부탁하는 일들을 척척 처리해주고 있다.


맥돌이에 대한 신뢰감은 자연스럽게 나를 애플의 팬으로 만들었고, 나의 일상을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애플 워치, 에어팟, 애플뮤직, 애플펜슬, 아이클라우드로 연결된 애플의 생태계 속으로 안착시켰다. 하지만 경험이란 것이 워낙 주관적이고 저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노트북 구입을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맥북을 추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대학생이 되면 입학 선물만큼은 반드시 맥북으로 사주고 싶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왠지 맥북은 내 아이에게도 대학 생활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눈이 오던 일요일 아침, 집 앞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맥돌이로 논문 작업 중


지금 이 글도 맥돌이로 쓰고 있는데, 아무쪼록 맥돌이가 앞으로도 오래 동안 나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설령 나중에 맥돌이가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더라도, 내 유학 생활의 추억을 떠올릴 게 해주는 소중한 보물로서 맥돌이를 계속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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