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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07. 2020

2주간의 기러기 생활(1)

박사 과정의 2년 차가 끝나가던 4월, 아내가 갑자기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러 한국에 가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내가 한창 학기 중일 때라 같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내가 한국으로 바로 따라가더라도, 미국에 바로 돌아와야 해서 내가 실질적으로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1주일에 불과했다.


오빠, 겨우 한국에 1주일 있자고 오며 가며 버리는 시간이랑 비행기 티켓 비용이 아까운 것 같아.
오빠는 그냥 미국에 있고, 내가 토쥬 데리고 둘이서 한국 들어갔다가 일 끝나면 바로 돌아올게.


누가 듣더라도, 아내의 말이 이성적으로 맞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국에 못 들어가면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우울해졌다.


고작 1주일밖에 못 있지만, 그리고 그 1주일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이번에 꼭 한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뵙고 싶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들도 실컷 먹고 싶고.

그리고 갈 때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올 때도 혼자서 토쥬군을 케어하며 오랜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탈 아내를 생각하니 그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를 강하게 설득한 결과, 결국 나도 따라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2년 만에 한국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게도 바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그때부터 한국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토쥬군이 타야 하는 비행편의 시간이 아침 일찍이라서, 둘이서 조금이라도 더 잠을 자고 편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큰 맘 먹고 공항 내에 딱 하나 있는 비싼 호텔에 1박 예약도 해두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법이다. 아내와 토쥬군의 출발일 이틀 전인 금요일 아침에, 무심코 스마트폰으로 출발일 당일(일요일)의 일기 예보를 검색해 보니 뭔가 심상치가 않다. 4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눈폭풍이 온다는 예보가 떠있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유나이티드 항공에 전화를 걸어 비행 스케줄을 급히 하루 앞으로 당겼다. 그리고 동시에 호텔 예약도 하루 앞으로 변경했다.


그 결과, 원래 모레(일요일) 출발하기로 되어있던 비행 편이 내일(토요일) 출발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원래 내일(토요일) 체크인하기로 되어있던 호텔 예약이 오늘(금요일) 당장 체크인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급하게 짐을 싼 다음, 오후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했다.


미국에 온 이후 세 식구가 계속 붙어 있다가 처음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보니, 게다가 원래 생각했던 날보다 하루 일찍 출발하는 거라 아내나 나나 둘 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앞으로 2주 동안 아내와 아들을 못 볼 생각을 하니 공항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울적해졌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미리 예약한 호텔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했다. 역시 큰 마음먹고 예약한 비싼 호텔이라 시설이 정말 고급스럽다. 배정받은 룸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서 아이와 함께 점프를 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한통 온다.


호텔 룸의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놀고 있는 아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몰랐다. 뭔가 꼬이고 있다는 것을...



뭐지, 하고 문자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내일 출발 예정인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캔슬되었습니다.




그 순간, 대략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1. 최대한 빨리 대체 항공편으로 예약 변경을 해야 한다.

2. 이미 호텔 체크인을 끝낸 상태라, 빼도 박도 못하고 오늘 하루는 이 호텔에서 자야 한다.

   (문자 메시지가 10분만 일찍 왔더라도, 호텔 체크인 자체를 안 했을 텐데...)


이렇게 우리의 일정은 점점 꼬여가기 시작하는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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