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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ul 14. 2020

2년 만의 한국 방문(3)

다음에 묵을 호텔로 이동하기 위해 우리가 탄 택시는 남산터널을 통과하고, 한남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아직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도로에는 차들이 가득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었던 한강 양쪽에 늘어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의 모습을 택시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한국에 온 뒤로 매일 오후 5시만 되면 시차 때문에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이날도 저녁은 간단히 호텔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마침 호텔 바로 앞에 김밥천국이 있어서, 라면, 김밥, 돈가스 등을 저녁으로 먹은 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약에 취한 듯 잠들어 버렸다.





Day 4.


다음날 눈을 떠보니, 오전 6시가 좀 넘었다.

아내와 아들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고, 나는 혼자서 또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메뉴는 미국에 있는 동안 그토록 먹고 싶었던 순댓국! 호텔 바로 맞은편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신의주 찹쌀순대에 들어가 순댓국 정식을 주문했다.


먼저 밑반찬이 쫙 깔린다. 두 종류의 새우젓에 깍두기, 고추, 양파, 오이, 무생채까지, 오랜만에 보는 맛깔스러운 반찬들 때문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다. 이윽고 순댓국 정식이 등장했다. 지난 2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순댓국을 드디어 먹게 되는 순간이다.


유학 생활을 통해, 순댓국은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먹는 내내 그저 감탄사만 연발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이런 식당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오전에는 우리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이번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모님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무사히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늘 한국에서 기도해주시는 부모님께, 미리 준비해온 선물들과 이번에 받게 된 상장을 드리니 무척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훌쩍 커버린 손자와 며느리, 아들을 보고 좋아하시는 부모님 모습을 보니,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그래도 한국에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어린이 전문치과에 들러서 토쥬군 치아 검사를 받았다. 토쥬맘이 양치 하나는 철저하게 시키는 덕분에, 다행히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린이 치과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중의 토쥬군 모습


이날도 오후 6시쯤 되니 토마스씨는 조금씩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한다. 저녁 식사로는 호텔 근처에 있는 깐부치킨의 후라이드 치킨을 먹었다. 그런데, 이날 밤에 토쥬군 이마에서 미열이 감지되었다. 아마도 최근 며칠 동안 좀 무리를 한 탓에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았다.



Day 5.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토쥬군의 열이 떨어졌고, 컨디션도 정상인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원래 이날 오전에는 고속터미널에서 쇼핑을 할 예정이었는데, 마침 토쥬군이 한국에 있을 때 쭉 다녔던 소아과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아내와 토쥬군은 일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그동안 나는 필요한 옷들을 구입하기로 했다.


아내 말로는, 토쥬군이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진료를 잘 받았다고 한다. (소아과 원장님이 그새 훌쩍 커버린 토쥬군을 보고는 많이 놀라셨다고...) 진료 결과,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열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해열제를 좀 처방받아 왔다.


한편, 아내와 아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뉴코아에서 청바지 쇼핑을 했다. 청바지 가격은 미국이 확실히 더 저렴하긴 하나, 내 몸에 딱 맞는 청바지가 잘 없고 수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싼 편이다. 반면, 한국 청바지는 가격은 미국보다 비싸지만, 디자인 예쁘고, 핏도 잘 맞고, 저렴한 가격에 수선도 해주고, 무엇보다 스판 재질이라 앉을 때 아주 편하다. 결국 이날 나는 같은 디자인의 청바지를 색상별로 여러 벌 구입했다.  


청바지를 수선하는 동안, 우리 세 식구는 뉴코아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국에 오기 전 아내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가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기를 다녀오면 진짜로 아내의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가 오랜만에 한국에 온 김에 고터 지하상가에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좀 풀 수 있길 바라며, 토쥬군과 나는 택시를 타고 먼저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토쥬군과 호텔 룸에서 놀고 있는데 아내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토쥬군이 자꾸 눈에 밟혀서 쇼핑을 마음 놓고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이날은 세 식구 모두 평소보다 낮잠을 좀 많이 잔 덕분에, 저녁에 다 같이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코엑스몰에 가서 책도 사고, 상점들 구경도 했다. 맥도널드에서 야식을 먹고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코엑스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와 아들



Day 6.


서울에서의 여섯째 날.


이날 오전에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치과 진료를 받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가입한 의료 보험이 치과는 커버가 되지 않아서 한국에 온 김에 진료를 받기로 한 것이다. 원래 목적은 스케일링이었지만, 검사 결과 작은 충치들이 발견되어서 충치치료도 함께 받았다.


치과 진료 후 점심으로는 아내와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그 대망의 1위인 간장게장을 먹었다. KFC에 들러 토쥬군이 식당에서 먹을 치킨을 포장 주문한 뒤,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프로간장게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날 아내와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게장을 흡입했다.


미국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간장게장을 드디어 먹게 되었다


오후에는 아내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나는 토쥬군과 둘이서 호텔룸에서 놀았다. 저녁식사는 아내의 친구가 싸준 음식들로 해결하고, 부지런히 짐을 싸서 다음날 공항에 가져갈 캐리어 정리도 완료했다.


그렇게 이번 서울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Day 7.


미국으로 다시 떠나는 날.

아침 8시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코엑스 옆에 있는 도심공항터미널로 이동했다. 도심공항터미널은 이번에 처음으로 이용해봤는데, 정말 편했다. 특히 이때가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창 몰렸을 무렵이라, 출국 심사받는데만 몇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들이 들렸는데, 공항터미널을 이용한 덕분에 공항에서 전용 라인을 통해 정말 빨리 출국심사를 끝낼 수 있었다.


여유롭게 출국심사를 끝낸 뒤, 라운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탑승동으로 이동했다. 한국에 올 때는 따로였지만, 미국에 갈 때는 셋이 함께여서 확실히 안정감이 있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여를 날아,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고 거기서 우리는 다시 미국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환승 공항인 나리타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다행히 나리타 공항에는 내가 사는 곳까지 한 번에 가는 직항 노선이 있어서, 일단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더 이상 환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국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창밖을 구경 중인 토쥬군


우리가 탔던 보잉 787 드림라이너는 태평양을 건너고 광활한 미국 대륙 위를 날아 내가 사는 도시의 공항에 도착했다. 2년 전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했었는데, 어느덧 세 식구 모두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해서인지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 - 이를테면 사람들의 생김새, 안내 방송, 광고판, 그리고 공기와 냄새까지 - 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지난 일주일간의 서울여행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탄 버스가 그 이국적인 풍경들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 속도에 맞춰, 나의 유학 생활의 제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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