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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ug 04. 2020

지도 교수님을 정하다(1)

박사 과정 3년 차가 시작되며,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지난번 글에서 말한 것처럼) 강사가 되어 학부생들에게 전공과목을 가르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 학점을 다 채워 더 이상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됐다. 즉, 이제 내 삶에서 '중간/기말 시험'은 더 이상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시험'과의 질긴 인연은 여기서 그만 안녕.


세 번째로는, '시험'이 있던 자리에 '논문'이라는 녀석이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 학교의 경우, 3년 차가 끝날 때 첫 번째 논문의 초안(draft)을 세 분의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다. 그리고 4년 차가 끝날 때는 네 분의 교수님 앞에서 첫 번째 논문의 완성본과 두 번째 논문의 초안을 발표해야 하고, 5년 차 이후에는 최종 디펜스(defense)를 통해 다섯 분의 교수님 앞에서 세 편의 완성된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박사논문에 대한 최종 심사가 이루어진다.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도 교수를 정하는 것이었다. 입학 전에 지도 교수부터 정하고 함께 랩(lab) 생활을 하게 되는 이공계 박사과정과 달리, 경제학의 경우 코스웍을 마친 뒤 논문 작성을 시작하는 시점에 지도 교수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혼 생활의 모습이 달라지 듯, 어떤 지도 교수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박사 과정의 모습도 달라진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건이 훌륭한 배우자감이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결국에는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듯, 지도 교수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선택하면 나중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수님들의 지도 스타일은 각양각색인데, 자유방임형으로 학생들을 방목하는 교수님,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는 교수님, 영어를 못하는 학생은 절대 지도 학생으로 받지 않는 교수님, 학생들에게 너무 인기가 좋아서 더 이상 학생을 지도할 여유가 없는 교수님 등등.


일례로, 우리 과의 모 교수님은 연구 능력이 아주 훌륭해서 매번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분이셨다. 그런데 성격이 굉장히 차갑고 괴팍하기도 해서, 지도하는 학생이 자신의 기준을 조금이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5년 차나 6년 차에도 가차 없이 쫓아내 버린다는 소문이 있었다. 대신 그분의 그런 까다로운 성격과 높은 기대치를 끝까지 참고 견디다 보면, 반대급부로 훌륭한 퀄리티의 논문을 들고 졸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교수님의 스타일만큼 중요한 것이 연구 분야이다. 박사 과정에서 어떤 분야를 세부 전공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이후 잡마켓의 아웃풋과 연구자로서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인기가 없지만 트렌드가 변화해서 박사를 받은 이후 수요가 많아지는 분야가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핫하지만 나중에는 인기가 시들해지는 분야도 있을 수 있다.


학생들은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도 교수님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학생이 특정 교수님께 지도를 받고 싶다고 결정해도, 그 교수님이 학생을 거부하면 다른 교수님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마치 '사랑의 작대기'처럼 미묘하게 흘러가는 교수와 학생의 매칭(matching) 과정은 박사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른바 통과 의례였다.


나는 연구 분야부터 먼저 정하기로 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올 때 생각했던 분야는 원래 따로 있었지만, 2년 동안 공부를 하다 보니 이전과는 관심 분야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도 교수를 정해야 할 시점이 되자, 거시경제학에 대해 좀 더 깊게 공부하며 논문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다음 단계는, 우리 학과에서 거시경제를 연구하시는 교수님들 중에서 어떤 분께 논문 지도를 받을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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