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격호 롯데 회장의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를 읽고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
저자 롯데지주 출판 나남 발매 2021.11.03.
여느 성공한 기업인들의 자서전은 대개 대필로 쓰여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서전의 문체가 매끄럽고 잘 읽힐수록 때로는 의심을 하게 되곤 한다. 과연 이 중의 얼마만큼을 기업인 본인이 썼을까.
이 책은 내가 근래에 읽어본 자서전들 중 문체가 이해하기 쉽고 정연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고 신격호 회장이 노년에 긴 와병 생활을 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새삼스럽게 그 책 역시 누군가가 그의 이야기를 구술로 듣고 대신 써준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 심증을 확증으로 굳힐 수 없는 이유는 고 신격호 회장이 열렬한 문학 청년이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낯선 단어였던 '롯데'라는 상호가 괴테의 걸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착안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가 젊은 시절 도일했던 이유가 문학을 공부하고 문인이 되기 위해서였다는 점들이 그의 문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믿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개인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자서전, 위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서전 읽는 것을 그만두었는데,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출판업계의 상술로 인하여 자서전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2000년 대 주로 출간된 자서전들은 주로 개인의 성공담, 인생 등을 담백하게 기록하고 그 중에서 배울 점들은 독자들이 알아서 찾아가게끔 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하게 불어온 자기계발의 시대는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를 하나로 합쳐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자서전이 과장, 미화의 측면이 있다지만, 억지로 끌어내는 듯한 교훈과 감동이 너무 작위적이었던 탓에 나는 자서전 읽기를 포기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근 10여년 만에 읽은 자서전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는 그런 미화의 향을 어느 정도는 견뎌낼 수 있다고 자부했기에 시작했다. 이 책 역시 미화가 된 부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신격호 회장의 유명한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윤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들 정도였다. 그가 도일을 하게 된 과정과 롯데그룹이 한국과 일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롯데그룹의 모습을 갖추었는지를 상세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래에 읽은 <시작의 기술>이라는 책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부단함은 당신에게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모든 부단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부단함'이라는 덕목을 갖추고 있다. 신격호 회장 역시 여러 가지 난관과 실패 앞에서도 부단함을 잃지 않았고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말년에 여러 잡음이 있었지만, 그것은 거인의 일생에 숙명적으로 따라붙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롯데를 잘 모른다. 롯데캐슬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껌을 좋아하지도 않고, 롯데시네마를 즐겨 가지도 않으며, 롯데월드를 살면서 가본 적이 손에 꼽는다.
그렇기에 롯데는 나에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 기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롯데에 대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신격호 회장이 국민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시작한 기업이 바로 롯데이며, 알게 모르게 우리 삶 곳곳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이제는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