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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전파 Mar 04. 2022

윤석열과 안철수 단일화에 대한 단상

2011년의 안철수를 추억하며

 정치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2011년의 안철수는 신드롬을 만들어냈었다. 국민의당으로 호남을 호령하기도 했었고, 정치 신인의 신분으로 제1야당과 합당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된 순간들도 있었지만, 아마도 그의 전성기는 이 2011~2012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나면서, 치뤄진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는 기존의 구태 정치 세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 대안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은 그 때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던 '힐링 열풍'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안철수는 토크콘서트 등을 흥행시키며 '새정치'에 대한 열망과 청춘들의 힐링, 희망의 열기를 모두 껴안은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꺾일줄 모르는 지지율을 거머쥔 안철수는 2011년 당시 아직까지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2012년으로 다가온 대통령 출마를 노렸던 것인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무명 군소후보였던 '박원순'을 지지 선언했고, 그가 3연임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던 초석을 만들어주었다. 


 2012년 대선에서 출마했으나, 김준일 기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막판 문재인 지지자들의 압력에 의해 던지듯이 단일화를 했으며, 202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오세훈과의 줄다리기 끝에 오세훈으로 단일화를 했으며, 2022년 대선에서도 결국 윤석열을 지지하면서 단일화를 이뤘다. 


 이러한 행보들은 그에게 '철수(撤收) 정치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안겨주었다.


 새삼스럽게 안철수의 행보를 되짚어 보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2011년의 나는 안철수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여타 다른 청년층들과 마찬가지로 구태의연하고 낡은 이념과 사상을 맹신하고 수호하는 기성 정치인들에게 환멸에 가까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을 사서 읽고 나서 기꺼이 안철수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안철수의 철수로 인하여 나는 그 권리를 잃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이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과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다시 국민의당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정치 행보들은 그가 꾸준히 주장해온 '다당제'와 '새정치'에 관해 의문만을 남겼다. 


 이번 단일화는 나의 지지 성향과 별개로 반갑지가 않다. 안철수를 향했던 표들이 어디로 얼만큼 분산될 것인지와 같은 정치 공학적 논제들은 나에게 별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지난 10여 년 간의 행보로 인하여 실망했을지라도, 한 때나마 안철수로 대변되는 '새정치'의 물결을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만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정의당의 심상정, 새로운물결의 김동연 등, 새정치, 대안세력을 표방하지만 양당제의 기조가 너무나도 뿌리 깊은 대한민국 내에서는 민주당, 국민의힘 계열이 아닌 한 크게 주목받지도 못하고, 세력을 형성하기도 어렵다. 2011년의 안철수의 행보를 모방해보려고 시도했던 2017년의 반기문이 대선 행보를 제대로 시작조차 못했었다는 걸 떠올려본다면, 그렇기에 2011년~2012년의 안철수에 대한 실망감이 더 진하게 다가온다. 


 이제 대한민국에선 어쩌면 다당제를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고 김종필 총리의 유명한 격언처럼 '정치는 생물'이기에 향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마치 이번 안철수와 윤석열의 단일화가 며칠 전만 하더라도 결코 성사될 수 없는 일처럼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여전히 너무도 희미해서 보이지도 않는다. 

 

 정치는 희소한 자원 가치를 사회 곳곳에 필요한 영역에 분배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서 정치는 이미 권력 게임이 되어버린지 오래인 듯 하다.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질문을 껴안고 있다. 누가 우리를 대표할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가? 통합보다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권력욕보다는 그러한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질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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