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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전파 Mar 23. 2020

간절함에 대한 응답

레이디스 코드, <My Flower>

레이디스 코드, 싱글 3집 「MYST3RY」 수록곡 <My Flower>

작곡 : 이주형, NOPARI (모노 트리)

작사 : 이주형

편곡 : NOPARI 



https://youtu.be/bjEQRgFdC_k




<가사>



하나 둘 떨어져 얼마 남지 않은

잡을 힘 하나도 없는 난

보고만 있죠

나 어떡하죠


(후렴)

My flower 전부였던

그가 말을 듣지 않아요

혹시 Flower 보이나요

그댈 지켜보는 나

My flower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죠

다시 피어나


서둘러 떠나면 안 돼요

조금 더 머물러도 돼요

한 잎 또 한 잎 멀어져 가


혼자뿐이면

완전할 수 없잖아요


(후렴 반복)


귀 기울여봐요

내 맘 알잖아요

그날 그 빛처럼

전부 사라지면 안 돼요


My flower 여기 있죠

혹시 그대가 날 찾을까

모르나요 늘 이렇게

그댈 기다리는 날

My flower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죠


다시 피어나 줘요 









*


 사랑이라는 감정은 동일할 텐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연인마다 다르거니와, 그 연인을 이루는 두 남녀도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마저도 사람의 수만큼 다르다. <My flower>에 드러나는 화자의 목소리 역시 그 수많은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중 하나다.


  먼저 살피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My flower’, 즉 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정도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하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일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연인’ 일 것이다. 이 두 대상이 굳이 분류해야 할 만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노래 속에서 화자가 말을 거는 청자가 (노래를 듣는 이를 청자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가사 속 화자가 하는 말을 듣는 대상을 청자라고 칭하고자 한다.) ‘사랑’ 그 자체냐, ‘사랑하는 연인’이냐에 따라 다른 각도로 해석될 여지들이 종종 보이기 때문에 그 해석의 대상을 한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랑하는 연인’에 그 청자를 한정하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지금 닥친 이 이별의 순간이 왜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별의 원인이 밝혀져야만 화자가 지금 이별을 겪으며 취하는 행동들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사 전체를 둘러보아도 이 순간이 왜 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없다. 그저 청자는 화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잡아도 잡히질 않는다. 그렇다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화자가 청자를 칭한 말인 “Flower”라는 단어다.


  Flower는 모두가 알다시피, 꽃이라는 뜻이다. 꽃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은 만큼, 그 특징도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꽃의 속성에 대해서만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꽃은 아름답다. 주로 봄과 함께 찾아오는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특징은 청자에 대한 묘사일 것이다. 청자는 외관상 아름다웠을 수도 있으며,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객관적인 외양과는 상관없이 화자에게만큼은 아름다워 보였을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아름답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어떻든 아름답게 보이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특징으로 인하여 화자는 청자를 꽃이라 표현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별이 왜 왔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이 특징에서 답에 조금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지속적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꽃은 적절한 물과 햇빛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을 연인에게 유추시켜 본다면, 물과 햇빛은 관심과 애정에 해당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인장과 같은 다육식물이 아닌 한에야, 한 번 많은 물을 주었다고 한동안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꽃은 없다. 이것은 사랑에 비춰본다면 더욱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다. 불같은 혹은 설레는 감정으로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한쪽에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지친다. 나만 그(녀)를 사랑하는가? 이러한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한다면, 그 사랑의 유효기간은 끝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가사 속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면, 화자는 한 때, 청자에게 소홀했던 적이 있는 것 아닐까. 화자가 모종의 이유로 청자에게 (꽃에게는 물에 해당하는)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했고, 그래서 청자는 ‘나만 (화자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물음 끝에 청자는 마침내 이 사랑이 끝이 났음을 인정하고 화자에게 이별을 고한 것이다. “하나 둘 떨어져 얼마 남지 않은 (꽃잎)”은 화자를 향한 ‘그’의 사랑이 조금씩 식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후는 가사 속 상황이 진행된다. 이별을 통보받은 후, 화자는 청자에게 돌아와 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화자는 이별의 상황이 오게 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것이 아닐까. 뒤늦은 후회는 늘 뼈아픈 것이다. 한 때는 소홀했지만 그래도 자신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이제라도 고백하는 것이다. “귀 기울여봐요, 내 맘 알잖아요.”라는 대목은 그런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전부였던 그가 말을 듣지 않아요.”라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더 이상 화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않는 것이다. 능력이 아닌 의지다. 한 번 식어버린 사랑의 마음은 때로는 한 없이 차갑다. 자신을 지치고 아프게 만들었던 화자에게 ‘그’는 다시 마음을 내줄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청자를 “지켜보”며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청자가 돌아오기를, “혹시 그대가 날 찾을까”, 그 자리에서 “두 손 모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저 기다리는 것, 그것 밖에는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별의 순간이 자신 때문에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청자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를 않는데, 어떡해야만 하는가. 결국은 기다림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화자는 간절한 소망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이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뉘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꽃이 완전히 죽어버렸을 때이다. 이 경우, 화자는 소망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없다. 이미 죽어버린 것을 되살리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에야 불가능하다. 하지만, 화자는 “다시 피어나”달라고 기도한다. 그렇다면, 꽃은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꽃은 특정 기간에만 개화한다. 주로 봄에 피고는 졌다가 다음 해 봄에 다시 얼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고 나면, 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다시 한번, 기다림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봄의 끝 무렵, 꽃이 지고 난 뒤, 무더운 여름이 오고,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이 올 때에야 꽃이 돌아오듯, “그”의 사랑도 다시 화자에게 돌아올 순간이 있지 않을까. 화자에게 남은 것은 기다림이다. 다시 소홀해지는 일 없이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그”가 돌아올 때까지, 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슬프지만 그것 외에는 그 간절한 소망에 대한 응답은 없을 것이다.









*



 레이디스 코드를 떠올릴 때면, 큰 손바닥 모양의 장갑을 끼고 '예뻐, 예뻐.'를 반복하던 활기찬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레이디스 코드의 음악을 떠올릴 때면, 불의의 사고 후에 낸 싱글 3집 「MYST3RY」이후의 음악들이 떠오른다. <Galaxy>, <The Rain>, <My flower> 등의 음악들은 분명히 그 이전에 이들이 하던 음악들과는 궤가 다르다. 이 음악들이 발매되었을 때, 한동안 오래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시기에 나는 개인적인 일들로 많이 우울했던 시기였다. 


 주제 넘게 말해본다면, 슬픔을 가슴 속에 묻어두기로 하고 그것을 숨겼지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어쩔 수 없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마음껏 우울할 수 있었고, 역설적으로 그래서 위안받을 수 있었다. 


 2020년 2월 17일에 소속사였던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만료되었다는 소식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하든지, 어떤 행보를 보이든지, 그를 통해 내가 받은 위안을 다른 사람들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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