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닐 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볼 적이면 늘 교양과목이 골칫거리였다. 전공이야 밥벌이라 생각하고 공부를 한다쳐도 교양과목시험이란 인생이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을 외워서 시험보는 것이라 치부했으니 공부를 제대로 했을 턱이 없었다. 그래서 늘 교양과목 시험 준비를 전날까지도 하지 않고 미적미적 미루곤 했다. 원래 관심이 없는 것은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별스런 머리를 가진 것도 큰 몫을 했다.
백지를 낼 수는 없으니 시험 당일 아침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그날 볼 시험과목을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줄을 긋고 외워서 시험을 보곤 했다. 외운다기보다는 머리에 그냥 욱여넣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하루에 두 교양과목 시험이 두 개 이상 있는 날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미친 듯이 외워 시험시간이 되면 백지에 토해내고, 시험장을 나와 머리를 휘리릭 흔들면 신기하게도 머리가 리셋되곤 하는 신기한 경험을 늘 했다. 다시 다음 과목의 내용을 미친 듯이 외워 다음 시험시간에 시험지에 토해내는 무모함을 실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인 것이 원래 없어 퍼내려 해도 삐걱삐걱 소리만 나는 우물가의 작두 펌프마냥 생겨먹은 머리이니, 벼락치기란 펌프에 퍼붓는 마중물 한 바가지인 셈이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교양과목 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한 바가지의 마중물에 늘 물이 와르르 쏟아진 꼴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안 좋은 공부습관은 점차 모든 생활 습관에 전염이 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미리 미리 해야 준비하면 수월할 일들을 마감이 임박해서야만 시작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시성(詩聖) ‘두보(杜甫)’보다는 술을 거나히 먹고 일필휘지로 시를 써내려가는 시선(詩仙) ‘이백(李白)’을 더 좋아해서라고 변명하고 넘기기에는 좀 심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학회지에 낼 논문을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 시간을 세 시간 남겨 놓고 용감하게 쓰기 시작한 무용담은 이젠 나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일화가 되어 버린 정도이다.
하지만 또 벼락치기 습관을 고칠 필요를 그리 심각하게 못 느끼니 아직도 철이 들려면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