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온군 May 18. 2020

생각의 병

'생각의 병'에 걸리는 구체적 과정

'생각의 병'이란?


생각은 때로 아군이지만 때로 우릴 방해하는 적군이다. 생각이 너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과해도 문제다. 나는 후자 쪽에서 생기는 문제를 ‘생각의 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무생각 즉 ‘사유의 불능성’으로 인해 타인에게 끼칠 수 있는 실제적인 해악에 대해 조명했다. 이렇듯 사유의 불능성은 외부로 해를 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유의 폭주(?)’는 스스로에게 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정의내린 생각의 병(?)은 이렇다. ‘에너지의 흐름이 머리에만 집중되어 행동까지 흐름이 닿지 못하고 결국에는 멈추어버리는 병’. 심각하게 ‘병’이라는 용어를 붙인 이유는 그 결과가 자기 자신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아픈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유일한 자원인 ‘나의 시간’을 그저 조용히 갉아먹을 뿐이다.



'이 병'에 걸리게되는 구체적 과정


이 병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 병에 걸려도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아프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 내가 하고있는 생각활동 자체가 나에게 플러스요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를 업그레이드 시켜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이미 행동으로 옮겨가야할 타이밍과 임계점을 지난 후가 된다.


행동에 닿는 임계점의 생각은 사실, 하나면 된다. 그러나 ‘생각의 병’에 걸린 이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의심과 두려움으로 무장한 채, 실패를 회피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생각들을 계속 과잉생산 해낸다. ‘좀 더 괜찮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거야.’, ‘좀 더 생각해보자.’ ‘좀 더.. 좀 더....’


이렇게 쏟아진 잉여생각물(?)들은 결국 미꾸라지처럼 머릿속을 흐린다. 애초에 바랐던 욕구나 목표들 모두 희미해진다. 그 시점에 필요한 행동과는 이미 멀어진 후. 타이밍을 놓쳤기에 그 타이밍을 되돌릴 방법을 연구한다. 또 생각한다. 그렇게 완벽한 타이밍을 찾으려 또 다시 생각에 시간을 투자한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결국엔 생각에 중독된다. 



‘생각의 병’의 증세


생각의 병에 걸리게 되면 가장 심각한 증상은 행동력의 약화다. 생각과 행동은 반비례한다. 그러니 생각이 많아질수록 행동은 줄어든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행동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린 염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리고 아직까진, 우리가 가진 기술로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색가인 동시에 행동가가 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다.


행동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린 생각을 많이 할수록 점점 완벽에 다가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생각은 더 정교해지며 완벽에 가까운 이론이 완성 되어가는 것만 같다. 이제 곧 실행만 하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완벽에 가까운 이론은 그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면서 보는 믿을 만한 이론들은 하나같이 모두 ‘현실’에 한 번씩은 무너졌던 생각들이다. 애플의 대표적 철학이자 슬로건인 ‘Think different.’가 한 번에 나온 이야기일까? 애플사의 창립자이자 CEO였던 스티븐잡스가 이전에 수많은 실패와 경험을 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생각이 슬로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많은 실패와 경험들이 슬로건을 만들었다.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1온스의 경험이 1톤의 이론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현실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은,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아기새의 공상일뿐이다. 



‘생각의 병’에 걸리지 않는 3단계 방법


이 ‘생각의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병’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과정은 3단계다.


첫 번째 단계는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다음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다. 생각은 할수록 정교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잡해진다. 생각이 진짜 정교해지려면, 어찌됐든 <경험>이란 것을 해야한다. 이 경험의 형태라는 것도 100% 예견될 수 없다. 경험은 언제나 반드시 불확실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불확실성은 점점 확실성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지금 ‘이 병’에 걸려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것을 조금이라도 망설이고 있는가?’ 대답이 ‘Yes’ 면 지금 그 병에 걸린 것이다. 망설임에 있어서 '조금'과 '많이'에는 큰 의미가 없다. 조금 망설이든 많이 망설이든 생각과 행동 사이에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벽이 세워져 있는 것일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행동으로 넘어가는 것 자체다.


세 번째 단계는 행동화 시키는 과정이다. 조금은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당장 행동에 뛰어들 용기 또는 확신이 부족하다면, 지금 낼 수 있는 '용기 만큼'의 혹은 '생각 만큼'의 행동목표로 재조정하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행동목표를 잘게 쪼개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큰 용기가 필요한가? 더 잘게 쪼개서 집앞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다음 행동은 정류장까지 가고나서 생각해도 충분하다. 부산을 가야될지 말지 확신이 없는가? 그렇다면 일단 부산에 무엇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기 위해 움직이자. 그게 싫다면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자. 



마무리 하면서


생각을 너무 하지 않는 것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문제다. 어렵다. 인간은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다가 우린 너무 많은 외부의 영향도 받는다. 생각을 어쩔 수 없이 지워야만 하는 환경에 놓이기도 하고, 오히려 과도한 생각에 빠지게 되는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사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여기에서 결국 기인하지 않을까.


우린 결국 '잘' 살아나가야 한다. 쉽지 않다. 때로 좌절도 몇 번 할 것이다.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일어날 시도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힘과 의지는 중요하다. 머무름에서 움직임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다만 내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개인의 힘과 의지에 버팀목이 있으면 한다. 시도하다 뒤로 다시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만큼. 그러니 조금은 이 사회가 실패자들에게 더 관대해졌으면 한다. 그러면 사람들도 '생각의 병'에 오래 머물 이유가 줄어들테니까. 뒤로 넘어져도 된다면, 앞으로 한 번 움직여 볼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소통을 못하게 만드는 7가지 마인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