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잔 Aug 27. 2020

스타트업에 급성장이 꼭 이상적인 것은 아니야, 버치박스

Birchbox, Katia Beauchamp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 Katia Beauchamp
2020년 3월 26일 에피소드

2015-16년 우리나라 뷰티업계를 구독모델의 스타트업들이 강타했다. 한 달에 한 번, 랜덤으로 박스에 담긴 화장품 샘플들을 배송받아 사용하고 나중에 본품을 구매하면 할인해주는 것이 서비스의 골조였다. 한때 쏟아졌던 화장품 샘플 구독 서비스들은 2020년인 현재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제일 유명했던 미미박스(Memebox)도 자체 화장품 제작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화장품 샘플 구독 서비스는 매출이 본품 판매로 이어져야 지속가능한 모델인데 유저의 행동을 트랙킹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브랜드의 샘플 제공은 공급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다. 현재는 톤28(최초로 아모레퍼시픽에서 투자를 받은 뷰티 스타트업), 아모레퍼시픽의 맞춤형 마스크 플랫폼 스테디 등에서 샘플이 아닌 자사 제품으로 화장품 구독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화장품 샘플을 기반으로 랜덤 박스를 배송하는 이 어려운 사업을 2020년인 아직도 전개하는 곳이 있다. 바로 랜덤 뷰티 샘플 박스의 원조!! 버치박스Birchbox! 


1. 버치박스의 사업모델은?

https://www.birchbox.com/ 

프로필을 작성하면, 버치박스에서 5~6개의 큐레이션된 샘플을 박스에 담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샘플을 사용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으면, 본품을 살 때 할인이 들어간다. 두 번째 박스부터는 원하는 제품들을 선택해서 샘플을 받을 수 있다. 샘플 구독 -> 사용 -> 본품 구매 -> 구독의 사이클이 이상적이라면, 화장품 회사에서 버치박스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샘플을 재구성해서 배송한다는 아이디어는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만큼, 빠른 실행력과 남다른 큐레이션이 필요한데 초기의 버치박스는 이를 아주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2. 어떻게 창업했을까?

우측이 Katia Beauchamp, 좌측은 공동 창업자 Hayley Barna(2015년에 그만두고, VC 업계로 감)

멕시코인들의 비율이 높은 엘 파소에서 자란 Katia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무척 잘했고, 창업에 대한 욕심이 컸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창업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공동 창업자 Hayley Barna를 만났다. 2009년, 둘은 사업 아이템을 물색하다 '왜 아무도 뷰티 업계에 관심이 없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여성들의 뷰티제품 사용 패턴을 분석했다. 시장은 충분히 큰데 비해 아직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제품을 살펴보고 선택하는 데 쏟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았다. 뷰티 업계를 전에 없던 혁신으로 바꿔놓겠다는 당찬 포부로 미팅을 시작했고, 브랜드와 컨택할 때도 CEO의 이메일 주소를 모르면 추측으로 여러 개를 찍어서 연락을 성사시켰다.

이때 대부분의 브랜드가 갖가지 이유로 거절을 했는데, 베네피트, 키엘 등 일부 브랜드들을 설득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마침내 샘플을 받아 박스를 준비한 후 서비스를 오픈했을 때, Katia의 생각보다 구독샘플이 제품구매로 연결되는 비율이 높았다. 4명 중 1명은 구매로 이어지는 테스트 베드 현장을 보며 사업의 청신호를 목격했고, 빠르게 투자자를 찾았다. 


3.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

J커브도 힘든데, 가파른 기울기로 증명한 버치박스는 초기 3년간 스타트업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수직 성장을 했다. 1,000개의 회사 중 1~2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엄청난 유저 유입이 지속됐다. 이렇게 고속 성장을 하고 있을 때, 의외로 Katia는 지나치게 압도된 감정을 경험하며 감정적으로 힘들었다고. 원하는 만큼 샘플 공급이 안 되자 고객들이 실망하고, 직원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었고, 현금흐름이 나빠지면 파트너들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모든 구성파트에서 좌절을 경험했다.

우리가 많은 케이스에 봤던 말도 안 되는 빠른 성장이 왔을 때, 감당이 가능했던 건 대부분 SAAS(Software as a service)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다. 버치박스는 공급자가 확실히 있는 실물 기반의 서비스이기 때문에, 너무 빠른 성장속도가 독이 됐다. 유저는 늘어나는데, 공급망은 협조적이지 않았고 샘플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도 시스템적으로 버치박스가 요구하는 만큼 바로 소화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유저의 수가 너무 적다, 유저수가 1만이 되면 다시 와라'고 했던 업체들이 막상 1만 유저를 금방 찍자 '그만큼의 샘플 공급은 1년 전에 말해야 한다. 혹은 수년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어야 공급이 된다'고 말을 바꿨다고. 당시 백화점을 털어서 샘플 공급을 하고 싶은 상상을 할 정도로 절박했다는 Katia의 말이 당시의 상황을 잘 표현해준다.

향후, 버치박스와 비슷한 화장품 샘플 구독 모델들이 지속해서 쏟아져 나왔고, 경쟁사에서 브랜드에 샘플비용을 지급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브랜드 입장에서는 샘플 판매가 새로운 수익창출의 기회가 되었고, 버치박스에도 무료로 공급하던 샘플에 가격을 매겼다고. 


4. 현재 버치박스가 직면한 문제들

자체 오프라인 매장도 내며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여러모로 버치박스에게 어려운 날들이 지속되었다. 창업을 하고 고생을 함께 했던 코파운더는 스트레스가 심한 회사를 떠나 VC업계로 이직했다. 꾸준히 페이스를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회사를 성장시켜야 하는 압박이 일상에서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니까, 응원은 못 해도 이해는 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VC 업계로 간 사례가 정말 많다. (돈을 받으려고 애쓰던 입장에서 돈을 주는 입장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걸까?) 

Katia는 홀로 남아 고군분투를 했고, 2018년에는 회사를 매각하려다 실패했다. 작년 기사([포춘US]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협업)에는 미국의 드럭스토어 체인 'Walgreens'와 협업해 전국의 로컬 매장으로 확장을 시도한 버치박스를 볼 수 있다. 매년 성장해야 하는 회사의 숙명과는 달리, 사업은 언제든 정체의 시기가 오게 되어있다. 새로운 접점을 만들어내거나, 큰마음을 먹고 피봇을 하거나, 쌓인 데이터들을 분석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Walgreens'와의 제휴가 멀리서 보기엔 그다지 힙하게 보이지 않지만(ㅠㅠ), 보이는 것과 다르게 Katia의 영리한 선택이었기를! 그리고 버치박스를 통해 뷰티 제품에 쏟는 많은 시간들을 효과적으로 줄여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친다. 

*참고기사 Birchbox CEO is looking beyond beauty connoisseurs for its next phase of growth


Insights

창업자가 진심으로 마음고생 한 것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던 에피소드. 역시 사업이 무슨 면에서든 쉽지 않은데, 버치박스의 경우 공급망과 유저, 내부, 경쟁사에서 쉽게 공격을 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공급사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샘플을 판매한다는 게 먹잇감의 대상이 됐다.
현재 버치박스에 들어가도 여전히 같은 사업모델로 운영한다는 것은 좀 놀라운 일이다. 한국의 미미박스는 사업모델 전환을 여러 번 하여 지금은 자체 제작 제품을 판매하는 커머스의 형태다. 랜덤 박스가 처음 한 두번은 신기해서 써 볼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구독하기에는 이래저래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 
첫 투자자와의 관계를 잘못 맺은 것 같다. 처음 버치박스의 가치를 보고 믿어준 투자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커서 정말 큰 결과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사업보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지고 그런 식으로 주객이 전도되면서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가 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모델과 유저인데 사업의 어느 중간즘에는 창업자와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더 커져 버렸다.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 팟캐스트 에피소드 중 손에 꼽히게 스트레스 많이 받은 파운더 느낌이 팍팍 난다. 이 모든 걸 하면서 결혼하고 쌍둥이까지 낳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네. 
이런 점에서 볼 때, 투자를 안 받고 자생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는 에피소드였다. 투자가 능사가 절대 아니다. 엄청난 돈을 빠르게 수혈받고 성장하는 것을 반복하는 이유는 결국, 성장하기 위해서가 아닌 투자자에게 돈을 벌어주기 위해서,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서니까. 현금이 돌고 있어서 투자를 꼭 받을 상황이 아니라면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천천히 성장하는 사업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우리는 너무 빠른 성장 스토리에 익숙해져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기타

이번 편은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의 편집팀에 의문을 보내게 된다. 'How I built this with guy Raz'는 팟캐스트의 처음 시작 부분에 본편에 나왔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문구들을 편집해서 넣는다. 이번 편에서는 뷰티업계에서 일해보지 않고 창업을 한 Katia를 무시하는 업계 사람들의 말(You, like silly little girls)을 넣었다. 다른 좋은 훅들이 아주 많았는데, 여성 창업자가 나올 때 빈번하게 창업자가 겪는 차별에 굳이 포커스를 맞추는 느낌이 든다. 여성 창업자의 특수성 말고 똑같은 창업자로 대해서 편집했으면 좋겠다. Katia가 많은 시간을 들여 얘기했던 급성장의 어려움에 대한 부분에서도 충분히 나올만한 훅들이 있었다. 아쉬운 부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