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다시 넣고 있다. 계약직으로 살아온 인생이니 다시 계약직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이왕 늦은거 꼼꼼하게 살겠노라 핑계를 대며 인턴, 계약직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나를 내보인다. 보고 괜찮으면 좀 써달라고.
채용시장은 나에게만큼은 작년보다 더 매정한 것 같다. 입사지원서를 내밀어도 연락오는 곳이 드물고, 연락오는 곳에서는 대부분 최종 면접에서만 탈락하기 일쑤다. 내가 결정적인 뭔가가 부족하다는 말, 한 방이 없다는 말, 굳이 너를 우리 회사에서 써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수십 번씩 들으며 멘탈이 갈려나갔다.
남들은 척척 한다는 취업이 나에게는 이렇게 고된 일이었나. 적당히 공부하고도 공기업에 붙었다는 친구의 말에 약이 올랐다. 그리고 '적당히'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나처럼 1년에 3백 곳 이상 지원하는 건 어림도 없단 말인가.
어릴 적 나는 뭐든 적당히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시험을 보다가 몇 문제 찍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거의 다 맞아서 전교 상위권이라는 성적을 부모님께 말씀드릴 땐, 다음 시험 때에도 부모님이 가지고 있을 기대가 두려웠고,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도 대판 싸우고 또 화해하고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적당히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건성인건지, 아니면 열심히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평균치에 근접한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취업 준비 계속 하고 있는 거 맞지?'나,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적당히 해서는 안된다. 죽을만큼 해야 될똥 말똥한게 요즘 취업이다' 같은 말을 더 자주 듣는 취준생이 되었다. 나는 구직자 정규분포곡선에서 최빈값인지 평균값인지 아니면 거기에 끼지도 못하는 양극단에 있는 값인지 잘 모르겠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어떤 값의 지원자를 원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그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요 근래 몇 년동안 나를 기운 빠지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게 또 나의 입장이기 때문에 나는 될 때까지 뭐든 해보려고 한다. 적당히 해서 안된다면 좀 더 열심히 하고, 이젠 좀 적당히 해도 된다면 좀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해하는 방향으로 살아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