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한 Jan 18. 2023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기분

나는 나이 서른을 먹도록 나는 여기저기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모아 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집을 지키는 취준생이었다. 그나마 있는 자격증이라곤 자동차 2종보통 운전면허가 전부였는데 그것조차도 써먹지 못할 만큼 운전실력은 미숙했다. 그 실력으로 아버지 차를 몰고 나갔다간 도로의 평화와 안전을 해칠 게 뻔했고, 그래서 나는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가급적 사람이 직장인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낮에 외출하는 편이었는데 그때마다 도로 위의 그 많은 차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다들 할 일이 있어서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어디 좋은데 놀러 가느라 그렇게 좋은 차들을 굴리면서 움직이는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버스 안에서 차를 구경하는 기분이 좋았다. 어디 좋은 데 가는 거면 나 좀 태우고 가줬으면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은 불쑥 이렇게 바뀌었다.

‘남의 차 얻어 탈 생각 말고 버스 타고 새로운 곳을 가면 되지, 이 멍청아’


그렇다. 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버스정류장을 놔두고 남의 차와 남이 가는 목적지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무 버스나 타고 아무데서나 내려서 걸으면 될 것을.



반드시 합격할 거라고 믿었던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 소식을 들었던 날, 나의 전적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조용히 저녁 산책에 나섰다. 퇴근 시간에도 혹시나 나를 알아보는 직장인 친구나 동기가 있을까봐, 모자에 마스크와 목도리로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섰다. 평소에 걷던 익숙한 길을 걷자니 계속 면접 생각이 날 게 뻔했고, 이럴 때 청승 좀 떨어보자는 생각으로 아무 버스에나 몸을 실었다. 내려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내렸던 곳은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네였다.



8년만에 보는 동네는 낯설었다. 학원을 마치고 친구와 같이 들렀던 분식집들은 주점과 치킨집으로 바뀌어 있었고 슈퍼가 있던 자리엔 편의점과 카페가 들어와 있었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피자 가게를 했던 자리엔 와인바가 들어와 있었다. 여전히 학원가엔 학생들이 많았지만 예전처럼 시끌시끌하지도 않았다. 학원과 술집이 뒤섞인 곳에서 벗어나 내가 살았던 아파트와 다녔던 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파트 이름엔 죄다 영어 단어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시대에 맞게 아파트도 영어 닉네임 하나쯤 달면서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 내에 있던 어린이집이 노인정이 되고 놀이터 대신 약수터 운동기구가 하나 둘씩 설치된 걸 보니, 동네도 나도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교들도 흙바닥 운동장 대신 커다란 체육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6학년은 운동회 때 무조건 부채춤을 춰야 한다며 한 달 내내 땡볕 아래서 부채춤 연습을 시켰던 학년 부장 선생님, 유독 아무 이유 없이 단체기합으로 운동장 뺑뺑이를 많이 돌게 했던 중학교 2학년 체육 선생님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좁아진 운동장을 보며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 조금 애틋하고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두 시간을 걸으며 10년을 넘게 살았던 그 동네에서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 둘씩 꺼내다보니 마냥 센치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강산이 일 년에 열 번도 더 바뀐다는 세상에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장소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무수한 날들 중에 행복했던 기억을 하나 더 가지고 산다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시절은 영영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가끔 들를 수 있는 동네 한 곳을 찾았다는 걸로도 만족했던 하루. 이번 주말엔 버스여행을 하고 진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를 한바퀴 돌고 올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새해를 함께해줄 엄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