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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Nov 17. 2023

나의 베스트 프렌드를 소개합니다

흑백뿐인 과거를 다시 빛나게 해주었던 A에게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친구가 몇 있지만 A가 단연 독보적이다. 나는 연애를 하는데도 A와 2주에 한 번은 만난다. 만나면 카페 마감 시간까지 버티기는 기본이고 전화도 했다 하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A와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났다. 방과 후 플룻을 함께해서 몇 번 말은 섞어 보았지만, 그게 전부인 사이. A에 대한 나의 인상은 ‘특이하다’ 였다. 불편한 말도 쉽게 하는 이상한 애. 그런 A를 다시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우리는 가장 친한 범주에 속하는 ‘점심 같이 먹는 친구’ 가 되었다. 당시 우리 중학교의 급식실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다. 우리 세대에 흔하지 않은 도시락 점심은 우리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비빔밥이나, 수저가 없어서 생긴 에피소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곤 한다.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A는 ‘연락 잘 안 하는 쿨한 애’ 였고 실제로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A의 존재를 거의 잊었을 무렵 새로 등록한 죽전동의 독서실에서 우리는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고, A는 자기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꾸준히 연락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 후 약 3년 정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작은 엄마의 병과 수술이었지만, 엄마가 괜찮아진 후에도 불면증과 불안은 오래 나를 따라다녔다. 이런 내 상태를 친구들에게 말하는 대신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를 하는 중에 종종 A를 만나 힘듦을 토로했다. 우리는 제일 자주 만나는 친구였지만 나는 한시도 혼자 있고 싶지 않았기에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A는 자기 주장이 확실한 친구였다. 가끔은 시간이 있어도 미리 말하지 않았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만나자는 말을 거절하곤 했다. 


 오래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며 내 상태는 더 진창에 처박혔다. 나는 구 연인에게 매우 집착했고 구질구질하게 헤어졌다. 힘든 것과 별개로 이별하고 죽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처음 죽고 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러다 죽게 될까봐 무서웠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지만 모두가 잠든 밤을 홀로 보내는 것이 제일 끔찍했다. 홀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날 나는 견딜 수 없어졌다. 나는 A에게 전화했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A는 의외로 “안 자려고 해 볼게. 근데 이대로 잠들 수도 있어.” 라고 말했다. 그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그 말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A는 횡설수설 떠들다가 통화를 연결한 채로 잠들었다. 잠든 A의 숨소리를 들으며 모호한 안정감을 느꼈다.


 당시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있던 A는 집 앞의 도서관을 두고 굳이 내가 갈 수 있는 도서관으로 공부를 하러 왔다. 나는 취업 준비를 할 의욕이 전혀 없었지만, A의 호출에 매일 꾸역꾸역 도서관에 갔다. 온통 흑백 뿐인 시절에 날 버티게 해 준 건 한 줌의 빛과 같은 이 만남이었다.


 혼란스럽던 시기를 지나 맥주 맛을 아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결국 선생님이 된 A와 나는 툭하면 만나 사소한 불만거리들을 토해낸다. 가벼운 듯 주고받는 ‘그래도 친구 하나는 잘 사귄 것 같다’ 라는 말에는 우리의 지난 시간이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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