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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Roro Apr 22. 2024

71/100 나의 멜랑꼴리아

행복의 대가

그럼 그렇지, 어쩐지 행복하다 했어. 한 때 내가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디폴트로 세팅된 불운과 불행이 연속된 삶에 잠시 기분 좋은 순간들은 이벤트성으로 스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오면 내심 불안했지. 또 좋다 마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그리고, 그 뒤에 또 무엇을 가져가려고 그러는 것일까?라는 공포도 있었다. 사실 아무도 무엇인가를 뺏어가진 않았다. 되려 나는 늘 불행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세팅했던 것 때문에 기분 좋을 때 겪는 인지부조화일까? 내 행불운에 대한 수치화된 엑셀 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내 막연한 짐작을 객관화하고 싶기도 해. 많은 사색가들이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럼 그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일희 일비 하는 마음 약한 사람인 것일까? 나 좀 도와줘. 어느 날 밤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마음속 폭풍이 치던 때, 나는 처음으로 어릴 때 믿었던 하느님에게 반말을 했다. 거기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 있다고도 하지만, 제발 이 불안과 초조함에서 나를 지켜 줘. 그리고 제발 아무것도 뺏어가지 말아 줘. 내 얼굴에 미소가 머물게 해 줘. 그렇게 반말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나는 무엇을 빼앗겼다? 무엇을 행복의 대가로 무엇을 차압당했나? 그것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채 서성이다가 문득 떠올랐지. 원흉은 기대감이었어. 내가 시뮬레이션하고 멋대로 끌어왔던 어떤 결과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었다고. 그 기대감이 깨어졌을 때, 나는 그 실망을 불행과 불운으로 포장했지. 마음에 드는 옷을 입기 전에 몸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탈의실에 들어가 지퍼를 올렸을 때, 전략적인 노력을 다 하지 않고 시험을 쳤을 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섣불리 홈베이킹으로 케이크를 구웠을 때조차도 나는 불행이 내 몫이라고 착각했다. 목표 달성이 행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성취감은 분명히 주어진다. 그 과정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채 실망을 거듭하며 나는 무기력을 학습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것을 불행과 불운이라는 감정으로 후려치고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안개가 또 하나 걷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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