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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Nov 19. 2024

손톱을 먹어버린 쥐

나의 빈자리

나의 꼬꼬마시절, 친정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괴담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타난다는 것과 또 하나깎은 손톱을 아무 데나 두면 쥐가 먹어치운 후 나와 똑 닮은 아이로 변신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편리한 육아생활을 위해 고안해 낸 나름의 비장의 무기였을 터, 세 명의 아이들을 키워내야 했던 젊은 부부는 이런저런 묘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일찍 재운 후 찾아오는 꿀 같은 여유와 스스로의 일은 스스로 하는 새나라의 어린이로 길러보고자 했던 그 갈망을 지금의 나는 이해해 마지않는다.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의 깡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애꿎은 경찰아저씨를 들먹이며 진압하려 하지 않았는가.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우리 집으로 오다 발길을 돌리셨을 무수한 경찰아저씨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말씀 드립니다.


옳다 그르다의 교육적 논쟁은 살짝 비켜두고 부모님의 이 협박이 효과가 있었던 것만틀림없었다. 하루아침에 나와 똑같이 생긴 녀석이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나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 내가 나임을 증명해 내야 하는 기막히고 코 막히는 상황은 어린 마음에도 일어나선 안될 일이었다. 천리안이 되어 혹여 멀리 튀어버렸을지도 모를 손톱을 찾느라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그러나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상황은 급변했으니 학창 시절엔 내가 한 명 정도는 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흠뻑 들었다. 놀 수 없는 나와 놀기만 하는 나. 물론 진짜 나는 후자다. 한번 읽은 것은 사진 찍듯 뇌에 아로새기고 엉덩이 무겁기로는 천하장사 저리 가라며 책상에 진득이 앉아있는 나의 아바타. 나는 한발 떨어져 적시적소에 그녀를 배치해 본다. 열공에 청소, 소소한 잡무 모두 그녀의 몫. 불쌍해도 어쩌겠어, 너가 나인걸. 미래의 나를 위해 우리는 전격 합의를 이루어낸다. 공부는 니가 전교 1등은 내가, 학력고사는 니가 대학생활은 내가. 생각만으로도 함박웃음이 절로 났더랬다.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고 키우는 동안 이런 열망은 최고조에 달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손톱을 동네방네 흩뿌려 나의 복제인간을 대량생산하고 싶기까지 했다. 니일이 내일이요 내일도 내일이니 하루라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날이 없었지.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니었는데 멀티플레이어가 아닌 나는 늘 시간에 쫓기고 아등바등이었다. 게다가 나의 빈자리는 참으로 크게 티가 났다. 귀차니스트계의 국대급인 나를 대신해 아이의 빈틈, 생활의 빈구석을 메우기 위해선 수십 명의 아바타들이 철두철미하게 움직여야 했으리라.

픽사베이




점점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의 빈자리는 줄어들었고 수험생활이 끝난 요즘엔 나에게 빈자리만이 남았다. 고요하고 홀가분한 나의 빈자리. 한동안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직 나의 숨소리만을 느끼며 쉬고 또 쉬었다. 평온했고 잔잔했다. 슬그머니 깨어나 분명 나의 자리였건만 내것은 남지 않은 나의 자리를 둘러본다. 이제 내가 그 빈자리를 아껴줄 때. 언젠가 나의 곁을 떠날 아이들을 위해 빈자리가 아닌 풍성한 나의 자리를 준비해야지. 예쁘게 가꾸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줘야지. 아이들이 힘들고 쉬고 싶을 때 같이 웃고 같이 즐겁고 같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핀터레스트




나의 빈자리의 또 다른 이름이 뭔지 아세요?

그것은 바로 자.유.부.인 이랍니다



부러우면 지는 에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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