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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Nov 08. 2024

로또야 붙어랏!

당첨금을 수령하는 완벽한 시나리오

"준비하시고 쏘세욧!!" 어린 시절 거실에서 놀던 나는 이소리만 나면 자동으로 TV화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복권을 산 것도 아니었는데 빙글빙글 돌아가는 숫자판이 왜 그리 짜릿했을까. 그때부터였을까 내 피에 복권 DNA가 흐른 것은.


1등 당첨금이 300만원 (당시 집값이 2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었던 주택복권은 사라지고 지금의 복권 로또가 생겼다. 로또라. 이름부터 뭔가 산뜻하고 행운이 줄줄 흘러내릴 것만 같다.


로또 1등 당첨 확률 약 0.0000123%. 혹자는 바늘귀에 낙타가 들어갈 확률이라 하지만 그 낙타가 내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마침 몸집이 아담한 내가 마침 걸리버 여행기의 대인국을 여행하다 마침  발견한  바늘귀에 쑥 들어가는, 세상에 이런 일이 이 세상에는 은근히 많다.


로또가격이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리고  2004년 평균 35억이었던 1등 당첨금이 2022년 평균 20억대로 떨어졌을 때 나는 울분을 터뜨렸다. 마치 호주머니 속 내 돈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1등 당첨자들의 비극적인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게 다 무계획 때문 아니겠어. 나는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철저히 J인 나, 완벽한 시나리오에 돌입한다.




스텝 1 당첨금 분배의 대략적인 윤곽을 설정한다. 일단 나를 위한 두장. 평균 당첨금이 20억이라 해도 세금을 제외하고 나면 (3억초과일 경우 세율 33%) 약 13억원가량이 된다. 왠지 1장은 섭섭, 그렇다고 3장은 욕심인듯하다. 첫째와 둘째를 위해 2장을 추가하고 고심 끝에 친정 동생 2명을 위한 2장을 더 사기로 한다. 시댁몫이 없는 건 화목한 시댁식구들께서 혹여나 이 돈으로 불화라도 생기실까 염려되는 나의 배려라고 해두자. 이 정도면 나를 둘러싼 세상 모든 신께서 등을 돌리실 일은 없겠지.


스텝 2 로또를 살 판매점을 신중히 고른다. 이 시나라오의 핵심은 완전한 비밀작전. 그런데 한 곳에서 무려 6장 1등 당첨은 안될 말이다. 더군다나 일가족 당첨이라니 이목이 집중됨은 물론이요, 인터뷰요청까지 들어올 수 있다. 일단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로또명당점에서 자동으로 한 장을 산다. (선택장애가 있는 나에게 수동은 좀..) 그 후 동생들이 살고 있는 동네 2군데와 서로 다른 구에 위치한 3군데를 돌며 같은 번호로 한 장씩 구매하면 미션 끝, 이제 기다릴 일만 남았다.


토요일마다 돌아오는 당첨날짜, 허나 나는 바로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긁지 않은 복권이란 일주일간의 행복이라 하지 않던가. 그 설렘을 그 짜릿함을 포기할 수는 없다. 2주 후 핸드폰을 열고 번호를 확인한다.


1등 당첨! 내 그럴 줄 알았지.


총 당첨자수 12명에 1등 당첨금은 24억. 인생 2막 시작이다. 오 예 리질러!!


핀터레스트


스텝 3 당첨금 수령시기를 결정한다. 수령기한은 1년.  5팀의 수령간격을 최소 한 달로 정한다. 돌림자를 쓰고 있어 누가 봐도 자매이름을 가진 아이들을 첫 달과 마지막달에 배치하고 나머지 우리 삼 남매가 그 중간중간 적당히 치고 빠지기로 한다. 거액의 통장을 들고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위험천만, 1등 당첨금 수령장소인 농협본점에 주차장이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로서 시나리오는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 치명적 오류가 있었으니 나는 단 한 번도 로또를 사본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 할 일은 단 하나,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로또를 사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너의 장점이 뭐냐 묻는다면 그나마 제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시작한 일은 끝을 본다는 것. 그러나 호떡 뒤집듯  이는 나의 치명적인 단점과도 맞닿아있으니 애초에 시작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귀찮아서) (좀 있다 여유가 생기면) (과연 될까) - 아빠 '말린'이 아들 '니모'를 찾듯 나 또한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를 찾으려 얼마나 부단히 애썼던가. 


그러한 내가 시작한 글쓰기. 시작이 반이고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이 글귀는 나에게 이별이 아닌 만남, 새로운 시작이다.





얼마 전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 하나. 뼈를 때린다. 감히 돈에게 한마디 전해본다.


그래 돈아 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을게. 잘 지내렴.

누군가의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가지도 말고

사방팔방 쏘다녀 길을 잃지도 말고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길.

내가 데리러 갈 테니

곧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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