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이가 없고, 정신이 조금 흐리시긴 했지만, 치명적인 지병을 앓고 계시진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위독해서 와봐야 할 것 같다고 동생이 전화를 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이천으로 황급히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예전 회사 사장님을 만났다.
"오? 어디가니?"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해서요. 급히 이천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알겠다. 나중에 연락해라."
동생이 이천의료원이라고 이야기 해줬는데, 난 그 병원을 착각했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큰 병원인줄 알고 거기서 하차했는데,
알고 보니, 터미널쪽이 아니라 설봉공원 쪽, 즉 반대편에 있는 큰 병원이었다.
그래서 20여분을 뛰다가 걷다가 하면서 갔다.
응급센터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던 동생은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할지 고민이 먼저 생겼다.
동생에게 연락해보니 경찰서에 있다고 했다.
사고사라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뭔가 문제될만한 혐의점도 없었다.
이천의료원에는 장례식장도 같이 있었다. 장례식장의 직원에게 장례식장 이용에 대해 물었다.
검시필증과 사체검안서 둘 다 있어야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고사가 아니라면 사체검안서만 발급받아서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경우엔
사고사라서 검시필증까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검시필증은 바로 발급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검시필증이 나올 때까지, 어머니의 시신은 병원에서 임시보관하기로 하였다.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동생과 함께 집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검시필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부고문자를 만들었다.
부고문자는 회사에서도 요구하고 있었고, 지인들에게 보내야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https://www.mbugo.com/
모바일 부고사이트를 이용해서 부고문자를 편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작성을 위해서 빈소랑 발인일등이 정해져야 한다.)
오후 4~5시쯤 검시필증이 나왔다.
검시필증을 받자마자 장례식장으로 항했다.
장례식장에서 간단히 절차를 알려주고 상조가 있는지 물었다.
가입한 상조는 없었다. 자체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화장으로 진행하기로 했고 화장 예약은 직원이 직접해주었다. 이때 핸드폰 인증을 했다.
화장장은 원주 화장장으로 잡아주었다.
장지는 어디로 할지 물었고, 이천시립추모의집으로 했다.
어머니가 이천시민이었어서 관내할인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버스랑 버스&리무진 중에 무엇으로 하겠냐고해서 버스만 하는 걸로 선택했다.
버스로 장례식장에서 납골당까지 가는 걸로 선택했다.
수의는 화장이니까 간소하게 하고, 관도 화장이니까 얇은 관으로 했다.
꽃 장식은 뭘로 할지도 정해야 했고,
화장이 끝나고 사용할 유골함도 정해야 됐다.
꽃장식은 저렴하게 하고, 대실은 중간 크기 방으로 했던 거 같다.
유골함은 뭐가 필요한지 몰라 느낌가는데로 골랐다.
천주교였기 때문에 천주교 유골함을 골랐다.
근데 유골함 선택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진공 유골함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고
어른들은 진공으로 하는 게 좋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근데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서 바꿀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