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의 깨달음 주해
책에 대한 감상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기도문의 가장 처음 대목이다.
하늘. 하늘은 무엇인가? 하늘나라를 말한다.
하늘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나라가 하늘에 있다면 새들이 먼저 들어갈 것이고,
하늘나라가 바다에 있다면 물고기들이 먼저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로지 깨어 있는 의식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하늘나라는 곧 하느님 나라와 같은 말이다.
우리 아버지.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곧 우주를 뜻한다. 우주 전체가 아버지다.
우주는 나를 낳았고 나를 죽게 하며,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는 진정한 의미의 부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는 나를 낳을 뿐만 아니라 생명 전체를 낳는다.
그렇기에 우리의 부모이다. 우리의 아버지다.
도마복음에는 옷차림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너희는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걱정하지 말라."
정경에는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마태 6:28-29
라고 나와있다.
사실 걱정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걱정해도 들에 핀 꽃들 보다
아름답게 차려입을 수 없다. 걱정 속에 파 묻힐 것 같다면
공원에 나가 들꽃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은 악마와 같고, 쓰레기와 같다. 그것은 계속 떠들지만
결국엔 소음이다.
명상을 통해 좌뇌의 스위치를 내리고, 우뇌의 스위치를 올리면
소음은 줄어들고, 고요함이 커진다.
그리고 그 고요함은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이 책에서 오쇼는 자주 산스크리트어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산스크리트어는 깨달은 사람이 만든 언어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에 산스크리트어에 조금 관심이 생겼다.
발췌
단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뢰의 길이다.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신뢰하는 것이다. - 390p
내부에서 아무것도 잠들어 있지 않을 때, 의식 전쳇가 하나의 빛이
될 때, 어느 한 부분도 무의식이 아닐 때, 존재 전체가 빛으로 채워질 때,
이것이 바로 붓다와 그리스도의 의미이다. 그곳에 무의식은
존재하지 않는,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정상이다. - 417p
삶은 전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다. 도덕적인 것도 비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삶은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삶은 그 둘 다를 향해 움직여 간다.
삶은 그 둘과 함께 한다. - 473p
우주를 아버지나 어머니로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545p
독특함은 존재의 속성이 아니다. 독특함은 인식의 속성에 존재한다.
예수는 그것을 알고 그대는 모른다. -546
그대가 전체의 부분일 경우에만 그대는 의미를 갖는다. 현대인들이
계속 자신들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신을 부정하고 신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신없이 인간은 결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전체이고 인간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 558p
고통은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자각은 고통과 자기 동일시를 깨뜨린다.
이것이 생명의 열쇠다. - 565p
에너지는 하나이다. 그대는 그 에너지로 섹스를 할 수 있다. 그것을 변화시켜
사랑을 할 수도 있다. 더 높게 변형시켜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 에너지는 같은 것이다. - 567p
모든 노력은 그대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가를
자각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 633p
현재의 조직화되고 기업화된 종교들은 새로운 종류의 감옥에
지나지 않는다. - 639p
욕망이 없는 단순한 상태 일 때, 그때 눈에서 안개가 사라지고
그대의 두 눈은 명확해진다. - 656p
제자는 여성처럼 되어야 한다. 스승과 깊은 사랑에 빠져야 한다.
그때 그곳에 높은 영적합일이 이루어지는 만남이 가능하다. - 668p
여자는 쉽게 도약할 수 있다. 여자는 육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믿음이 강하다. 여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일단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
그녀는 그 남자와 지옥에까지라도 갈 수 있다. -734p
다른 이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과 같다.
예수는 그것을 기도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너희들은 혼자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너희들은 먹을 때 함께 있어야 한다고.
이것이 내면의 동물성을 초월하는 것이다. - 758p
종교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받아들인다. 결코 다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깊은 수용력을 갖고 있다. 그는 어떤 것이라도 감사하며,
불평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추하다. 이것은 나쁘다.
이것은 악몽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아름답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 787p
완벽한 바보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도스도예프스키의 소설 <백치>를
읽어보라. - 791p
그대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집을 추구하고 있었다. 영원한 휴식을,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그대가 추구한 것은 밖에
있는 집이 아니라, 집에 있는 것과 같은 평화로운 존재의 상태이다.
그대는 부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았고 죽음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추구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대는 어떤 죽음도 파괴시킬 수 없는 생명을 추구하고 있다. - 821p
지식도 가져갈 수 없다. 육체가 떨어져 나가면 머리도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머리는 지식의 보관소이다. - 830p
삶 전체는 죽음 속에서 깨어있기 위한 하나의 준비과정이다. 산야신이 하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도자가 하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준비하라! 한순간
이라도 놓치지 말라. 일단 놓치면 그것은 다시 얻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풍요는 의식이 더 깨어있음으로써 가능하다.
무엇을 하든 예민하게 깨어 있는 마음으로 행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다를 수 있지만 내적인 추구는 다를 수 없다. 내면의 추구는 같은 것이다. - 834p
마음의 휴식이 가능한 지점까지 오기 전에는 많은 것을 행해야 한다. - 844p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난 후에야 새벽이 다가온다. - 84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