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노트
생존이라는 단어의 무게 ― 실업급여와 520,000원의 가치
솔직히 말하면, 파산선고 이후가 더 무서웠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는 잠깐이었고,
곧바로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지?”라는 막막함이 따라왔다.
예납금을 내고, 폐업하고, 송달료까지 다 지불하고 나니
통장엔 200만 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걸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다행히, 정리해고였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었다.
사업자등록이 있었던 기간 동안은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었지만,
파산 신청과 동시에 모든 사업자를 폐업 처리했다.
부가세 환급금 관련 세금 확정도 직접 홈택스에서 입력했고,
국세청 상담센터 126번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가며 고쳐 입력했다.
‘내가 망한 것’을 스스로 확정 지으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첫 실업급여 520,000원.
세상에, 50만 원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점심 한 끼를 고를 때, 가격표가 아닌 단백질 함량을 먼저 보게 되고,
마트에 가면 “1+1”을 두 번 돌아보고야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
돈이 없다는 건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생활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다.
그 와중에 나를 버티게 해준 건 ‘루틴’이었다.
매일 아침엔 모닝페이퍼를 썼다.
종이에 쏟아낸 마음은 말이 아니라 정화였다.
밤에는 명상을 했다.
16분간 호흡을 관찰하며 '지금 여기'를 느꼈다.
그 시간만큼은 빚도 파산도 잊을 수 있었다.
걸을 땐 묵주기도를 바쳤다.
절실한 마음이 나를 걷게 했고, 기도가 내 발걸음을 덜 무겁게 했다.
어느 날, 티스토리에 쓴 글에 첫 댓글이 달렸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줬다.
수입이 없을지언정, 가치는 만들 수 있다는 것.
파산 이후, 생존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나를 매일 지키는 일이었다.
실업급여의 하루치도, 걷는 20분도, 글 한 줄도
그 모든 게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무기였다.
이 기록은 계속된다.
나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살리는 루틴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건 생각보다 작고 조용한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