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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Dec 05. 2023

학예curating 2023년 단상들

2023 ART·CULTURE PROJECT

1. 

2주 후면 엄마가 돌아가신 지 만으로 2년이 된다. 엄마가 아프고 또 돌아가시면서 나는 사적인 일-엄마의 죽음-과 공적인 일-이를테면 직장에서의 업무나 프리랜서로서의 일, 사회참여와 같은 것들-을 구분 짓고 공적인 페르소나를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전까지 익숙하게 넘나들던 공과 사의 경계가 깊은 크레바스처럼, 거의 의식도 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쓰던 내 공적인 얼굴이 가면처럼 여겨졌다. 사적인 일들을 뒤로하고 업무에 집중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업무적인 대화 속에서 웃음을 주고받는 게, 성취를 향해 달려가는 게 껍데기만 남아 작동하는 것 같았다. 나에겐 엄마를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고 가장 가까운 이를 잃고 나서도 살아나간다는 것이 그리고 살기 위해서 일한다는 것이 무언지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했다. 

2022년 상반기를 퇴사로 마무리하고 하반기를 쉬었다. 그 와중에 이미 가볍게 앓고 있던 목디스크와 어깨통증이 심각해져 반강제로 오롯이 나 자신을 돌봐야 하는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상실의 고통이 신체적 아픔으로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소한 동작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순간 두려움이 엄습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유한함도 체감했다. 2023년 새해로 넘어오고 나서도 고민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자각한 건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때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얼마인지 모를 내 남은 시간을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는 선택으로 채워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당연히 일하는 순간들을 포함하여. 


2.

나에게 상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빈자리를 시간과 함께 메꾸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인정하고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과 함께 나의 일부가 되어 일상을 보내는 것부터 일을 구하고 또 일을 해나가는 방식과 태도까지도 바꾸었다. 가치의 우선순위도, 과정의 속도도, 결과의 평가까지도. 

급여가 부족하더라도 여유 있는 저녁을 확보하고 싶었고 학예라는 본분에 맞도록 성실한 연구와 창의적인 기획을 바탕으로 전시를, 교육프로그램을, 수집을 진행하고 싶었다. 단 하나의 작품이라도 정성을 기울여 수집하고 부족한 예산이더라도 최선을 다해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해 나가고 관람객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리는 매개자로서 역할하고 싶었다. 

2023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면서 서울여자대학교박물관이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시작한 학예연구사로서의 업무는 지금껏 나의 바람대로 흘러왔다. 업무는 나의 저녁시간을 위협할 정도로 과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히 저녁을 보내며 업무의 과정을 메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선임학예사 선생님의 다정한 가르침에 휘뚜루마뚜루 지나온 수장고와 수집품을 다루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걸음마 배우듯 재점검하고 익힐 수 있었고 지금껏 쌓아온 경험을 십분 발휘해 교육프로그램도 전시도 기획하고 운영해 나가는 것을 넘어 관람객의 입장을 고민하고 배려하는 작업들을 더해볼 수도 있었다. 특히나 기증품들을 수장고에서 꺼내어 등록하는 과정에서 하나하나 펼치고 이름을 붙여주고 조사하고 해제로 일차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업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이의 물건들을 어루만지며 보낸 시간들은 특정한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인물들과 대화하게 해 주었음을 그렇게 우리 모두가 무의미와 싸우고 있음을 그리고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위로해 주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2023년의 이제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 있는 지금, 나는 지나온 시간들을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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