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일상실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서 틈틈이 물건을 정리했다. 여름을 나기 위해서 물로 바뀐 제습제통들을 비우고 다시 제습제를 채워서 넣어준 곳들은 대부분 평상시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납장 안쪽 깊숙한 곳이었다. 침실 수납장, 거실수납장, 부엌 수납장, 현관 수납장까지 제습제를 다시 넣으며 줄일 물건들이 눈에 띈 것이었다. 특히 계절용품들 중에 더는 쓰지 않는 것들, 내가 나눔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까운 이들이 준 물건들 중에서도 계절을 타는 물건들을 모아서 보관해두고 있었다. 이를테면, 물놀이용품이나 해먹이나 캠핑의자와 같은 야외용품들, 수납장 안에 잠들어있던 안마기나 외장하드, 혹시나 쓸까 해서 모아두었던 빈 유리병들…, 수납장마다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며 생기는 공간만큼 상쾌해지는 마음. 채워두는 것보다 비워두는 것이 물건의 보관과 관리도 생활도 쾌적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수납장 정리를 마무리한 것 외에는 매일의 유지와 관리를 반복하는 것이 여름의 주거생활의 핵심이었다. 매일 참이 일어나면 침대 곁의 창문을 활짝 열고, 거실로 나와서 스트레칭을 하며 거실 겸 부엌의 창문도 활짝 열었다. 초록을 마주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날의 날씨를 확인하고 욕실로 가서 역시 창밖의 푸르른 잎들이 매일같이 자라나는 것에 감탄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채비를 마치고 나면 창문을 열어둔 정도를 조절하고 온도와 습도계를 확인한 뒤 침구와 옷들이 있는 방에 제습기를 틀고 작동시간을 설정해 두었다.
기온이 오를수록 창문을 열어두는 시간도 제습기를 켜는 시간도 늘어났다. 온도가 오를수록 습도도 높아졌고 집에 돌아오면 제습기는 물이 가득 차 있기가 일쑤였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트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드문드문 트는 편이긴 했지만 7월 중순을 넘어서자 밤중에도 후덥지근함에 잠들지 못해서 결국은 에어컨을 틀어 강제적으로 온도를 낮추어야 했다. 올여름이 "역대급"으로 덥다는 뉴스까지는 괜찮았지만 아마도 올해를 매년 갱신하게 되리라고 올해가 가장 덜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전하는 뉴스들에는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이대로 제습기와 에어컨에 더더욱 의지하게 되는 여름을 보내게 될까. 최소로 에어컨을 트는 것 외에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2. 여름 주거생활의 일부, 괴산 한 달 살기 : 쾌적한 주거의 답은 역시 최소의 짐과 규칙적인 청소
고민은 한 달 살기를 떠난 괴산의 숙소에서도 계속됐다. 괴산은 지금껏 내가 지내본 그 어떤 곳보다도 건물이 적었고 내가 지내던 장연의 건물도 바로 뒤에 언덕과 숲 그리고 저수지로 이어지는 자연에 둘러싸인 곳이었음에도 찌는듯한 무더위는 어찌할 수 없었다. 내리쬐는 태양과 숨 막히도록 에워싸는 습기에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음식점에서도 도착한 실습지에서도 어디에서든 에어컨을 트는 것이 서울보다도 당연한 듯했다. 게다가 자연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식물뿐 아니라 벌레도 가까이 있다는 뜻. 숙소 안으로 끊임없이 벌레가 들어오고 저녁에 불을 켜면 벌레를 불러들이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당연히 문이나 창문단속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다만 에어컨을 계속 틀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숙소는 사랑스러운 공간이었다. 능선을 따라 가로수와 숲이 둘러싸고 작은 잔디밭과 텃밭을 곁에 둔 아담한 크기. 오래된 건물을 괴산의 산촌활성화센터에서 직접 리모델링하고 페인트칠까지 해서 아기자기한 모습에 마주하자마자 한 달 살기를 위해 도착한 모두가 예쁘다는 말을 연발했다. 각 호실은 방 두 개에 거실과 부엌, 욕실 그리고 에어컨과 보일러, 냉장고와 식기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었고 텃밭과 세탁기, 쓰레기관리는 공동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3호실 메이트에게 작은 방을 내가 쓰겠다 자처하고 짐을 풀었다. 지금껏 장기여행을 여러 차례 하면서 짐을 최소화하는 것이 움직이기도 생활하기에도 편리하다는 것을 터득한 터라 괴산에 올 때에도 기내용 트렁크 하나와 크로스백을 챙겼고 동기들을 만나고는 내 짐이 제일 적다는 것을 확인한 터였다. 리모델링한 방은 목재를 써서 프레임을 마감한 터라 은은하게 나무향기가 났다. 이 방과 방에서 보이는 산촌 풍경을 최대한 누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적은 짐이라도 풀어헤쳐놓는 것보다는 질서 있게 정돈해 두는 게 나았기에, 노트북과 책, 필기구들을 선반에 봉옷걸이를 중심으로 옷가지와 트렁크를, 옷걸이 한쪽에 화장품과 세안용품이 담긴 팩을 걸어두었다. 접이식 3단 매트리스를 접으면 기대앉는 소파처럼, 펼치면 이부자리로 쓸 수 있기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메이트와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를 할 때 간단히 거실과 부엌을 뒷정리하고 청소해 두면 다음날 다시 쾌적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생활하면서 불편했던 건 단 하나 테이블과 의자가 없어서 목디스크가 있는 나로서는 자세가 불편해져서 일어나거나 스트레칭을 자주 해야 했다는 것. 그럴 때면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며 꽃과 풀, 나무를 관찰하기도 하고 때때로 저녁에 장작으로 불을 피우며 둘러앉아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과 풍광을 관찰하곤 했다. 덕분에 천년 넘는 오가리 느티나무와 수많은 별과 별똥별을 즐길 수 있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더할 나위 없는 여름을 선사해 준 주거공간이었다. 한 달 살기는 그렇게 주거가 쾌적해지려면 적은 물건과 깔끔한 유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에 가까운 그래서 산책을 하거나 야외활동을 할 수 있고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자연으로 공간적 확장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 셈이었다.
3. 여름의 마무리와 가을맞이: 다시 제습 유지와 물건 관리의 일상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는 8월, 여전히 무더운 여름 한복판이었다. 괴산에서의 한 달 살기와 달라질 건 없었다. 여전히 최소의 물건으로 공간의 여유를 충분히 두는 방식으로 생활하며 천천히 여름을 마무리하고 가을을 맞을 준비를 했다. 비워두었던 집은 다행히 제습기를 틀어두고 두어 번 점검해 준 덕분에 벽면이나 바닥, 수납장 안에도 곰팡이는 피지 않았다.
다만 원목으로 만든 뒤집게와 도마 그리고 의자에 얇게 습기를 먹고 곰팡이가 자라나려는 흔적을 발견했다. 아마도 목재가 머금은 습기가 곰팡이가 자랄 환경을 만들어준 모양이었다. 나는 놀라서 자세히 검색을 하고 다양한 설명과 조언들을 참고해서 사포 중에서도 천사포를 찾아 주문해서 조심스레 표면을 다듬어주었다. 표면을 덮은 희끄무레한 무언가를 갈아내고 뽀얀 나무의 속살이 드러나 옅은 나무향이 올라오고 나서야 안심을 했지만 아무래도 앞으로는 조리도구도 가구도 습기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는 선뜻 손이 가지 않을 듯했다.
더불어 큰맘 먹고 에어프라이어를 나눔 하고 에어프라이어와 전자레인지, 컨벡션오븐기능까지 포함된 제품을 구매하고 나무상판 조리대 위에 놓을 스테인리스 조리대 겸 도마를 구매했다. 에어컨은 방에 있어서 냉기가 전해지려면 오래 틀어두어야 했고 선풍기를 틀어놓아도 큰 창으로 여름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부엌의 기온은 쉽사리 내려가지 않는데 요리를 하면 온도도 습도도 올라가는 건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생채소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샐러드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소분해 둔 밥을 냉동실에 두었다가 데울라 쳐도 인덕션에 중탕하는 것만으로도 땀이 흘렀다. 소분한 음식을 데우는 전자레인지의 간단한 기능으로 해결될 일을 어리석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존의 에어프라이어에 전자레인지까지 사서 주방에 물건을 늘리고 공간이 좁아지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결국 열기 앞에 서는 걸 최대한 피하고 조리법도 다양화할 수 있으려면 멀티가전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기존에 쓰던 에어프라이어는 나눔으로 비우고 그 자리에 맞는 크기의 멀티레인지를 찾아 들인 것이다. lowbuyyear 선언을 하고 생활한 지 2년 차에 구입한 첫 가전이라 몇 달에 걸친 검색과 비교 끝에 신중하게 구입했고 가전을 들이고 난 지금도 조심스레 다루며 작동법과 기능을 천천히 익혀나가는 중이다. 부디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