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남긴 구옥을 리모델링하다
1. 셀프인테리어 두 번째: 조명, 어둠침침한 공간을 따뜻하게
두 번째로 손을 댄 셀프리모델링은 조명이었다. 역시나 업체와는 최소한의 작업으로 배선만 해둔 상태였다. 업체와 리모델링을 하고 이사하기까지가 워낙 급박해서 미뤄둔 것도 있었다. 전시 관련 일을 하면서 조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언제부터인가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조명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여느 집처럼 공간마다 중앙에 형광등이 달려있었고 엄마아빠는 그 등이 어두워지는 걸 넘어 깜박이다가 완전히 나갈 때까지 그대로 두셨다. 어둠침침한 형광등 불빛 아래 두 분의 모습을 보는 건 늘 내 마음에도 어둠을 드리우는 듯했었다.
첫 번째 집을 셀프리모델링하면서 만족했던 것 중의 하나가 레일을 설치하고 주백색 조명을 단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방식으로 밝힌 빛은 책을 읽을 때에도 생각에 잠길 때에도 자기 전 마음을 가라앉힐 때에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번에도 레일을 설치하고 조명을 달되 처음이라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보완했으면 했다. 그러니 어디에 레일을 달고 어떤 조명을 달지 생활 속에서 공간이 활용되는 방식을 고려하며 차근차근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이사를 마치고도 한동안 가구라고 할 만한 건 침대와 부엌수납장, 책상과 의자 외엔 없었다. 자고 일어나 씻고 먹는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추가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건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무언가가 없는 것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저녁시간을 준비하고 창밖의 불빛들이 반짝이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침대에 누워서는 창밖의 달을 발견하고 아침에는 햇살이 잠에서 깨어나길 재촉하듯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빛이 없어 불편한 순간들도 겪고 있었다. 스탠드나 무드조명에 의존해 간단히 식사를 할 순 있어도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둑한 가운데 작업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니 욕실 작업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곧이어 레일 작업을 시작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 레일달기,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뻗어 에너지를 전하는 혈관처럼
공간의 치수를 재고 레일을 달 위치를 스케치해 보았다. 각 공간의 크기, 활동, 들어갈 가구, 변경의 가능성을 고려해 보며 최대한 다양한 방향으로 조명을 드리울 수 있도록 레일의 위치를 정했다. 이전 집에선 가구배치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하고 레일을 달았다가 조명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는 걸 경험했었다. 방의 중앙뿐 아니라 벽면을 따라서 혹은 문과 이동동선을 고려해서 빛이 필요한 곳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주방의 작업대인 싱크대와 식사 공간, 거실에서 머물게 될 위치와 물건이 놓이게 될 위치와 같은 머무는 공간과 전시공간, 메인공간의 침대와 화장대, 행거와 전신거울이 있는 드레스룸 공간, 책장과 책상이 놓일 작업실이자 서재공간, 현관이나 방으로 이동하게 되는 동선공간, 각 공간에 놓일 가구들과 활동 그리고 동선을 최대한 커버할 수 있도록 레일의 위치를 잡고 각 활동에 맞는 조명의 컬러와 밝기도 정리해 보았다.
레일을 주문하고도 욕실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조명작업을 시작했다. 손으로 그린 투박한 설계도를 펼쳐두고 천군만마와 같은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작업의 순서를 정했다. 가장 사이즈가 큰 거실의 레일부터 차근차근 달기 시작했는데, 절반을 완성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이 되는 와중에 친구는 차분하게 전류테스트를 해주었다. 알고 보니 레일이 저렴한 탓인지 아니면 배달을 시킨 탓인지 들뜨거나 휜 부분들이 있어서 기억자 연결고리와 안정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부분이 접촉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전류테스트를 해보고 각 접합 부분을 펼쳐주거나 세워주며 접촉면이 확실히 닿게 만들어준 다음 다시 전류테스트를 하고 나서야 다음 레일을 이어나가다 보니 작업이 더디게 흘러갔다. 거실, 부엌, 마지막 방까지 마무리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다 진 저녁이었다. 마지막 방 레일에 전류가 제대로 흐르는지 테스트용 등을 달고 스위치를 켰을 때 어두운 방을 밝히는 불빛이 꼭 내 안을 밝혀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대로 뿌듯한 기분으로 등을 다는 건 미뤄두고 고생해 준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서며 생각했다. 각 방에 뻗은 배선이 꼭 사람의 몸 안에 뻗은 혈관 같다고, 우리 몸 구석구석에 에너지를 공급해 살아갈 수 있게 하듯 각 방의 레일로 전류가 돌고 등불에 빛을 밝혀 어둠 속에서도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3. 등 달기, 어둠 속을 드리우는 빛이 주는 조화로움
레일작업을 마치고도 역시나 생활해 보며 느릿느릿 등을 달았다. 일과를 보내며 등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위치를 확인하려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매일 빠질 수 없이 나갈 채비를 하게 되는 화장대, 옷을 찾고 입어보며 매무새를 정돈할 행거와 전신거울 앞, 식재료를 확인하고 식사준비를 하거나 주방가전을 이용하는 위치에 하나씩 하나씩. 해가 지고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한밤 중에 욕실로 향할 때, 어둠 속에 불편했던 자리를 확인하며 하나씩 하나씩. 형광색도 전구색도 아닌 주백색으로 눈이 편안해야 하는 곳은 확산형으로 활동할 때 잘 보여야 하는 곳은 집중형으로 채워갔다.
그렇게 꼭 필요한 곳에 등을 추가할 때마다 처음 레일을 테스트할 때처럼 마음속에서 하나씩 피어오르는 듯했다. 밝음이 어둠과 대비되어 빛 자체가 주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온전히 누리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빛을 더욱 아름답고 은은하게 전할 수 있는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특히 잠들기 전에 시간을 보내는 침대 위에,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게 될 테이블 위에,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와 편안히 우선 앉아서 시간을 보내게 될 아직 구매하지 않은 소파 곁에.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작가들의 하이엔드 작품들부터 중국산 싸구려 카피 제품들 속을 헤매며 우리 집에 들일 등과 전구를 검색했다. 예산 안에 그리고 구옥 주택의 특성에 맞는 제품들을 골라 주문을 하고 하나씩 추가해 나갔다. 침대 위에는 한지로 만든 작은 등을 달았다. 침대에 앉아 책을 읽어도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높이에 뜬 타원형의 한지는 마치 침대 위로 작은달이 뜬 것 같았다. 특히 그 안에는 스마트 전구를 넣어 일과를 마치면 조도를 어둡게 조절하고 차분하게 잠자리에 들고 간단히 켜고 끌 수 있게 만들었다. 다음으론 주방에 노란 펜던트 등을 달아 구옥의 원목과 오래된 벽에 어우러지는 발랄한 온기를 더했다. 테이블을 추가해 그 아래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하는 것도 누군가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려보며. 다음으론 소파가 올 공간 옆에 벽부등을 달아 어둠과 빛의 대비를 그 자체로 즐기며 저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역시나 스마트전구를 넣어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빛의 색이나 밝기, 깜박임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 집은 위에 적은 등 모두 기특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여기에 책상 옆을 밝히는 스탠드 그리고 현관에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등이 추가되었을 뿐. 늘 환히 밝히는 것보다는 어둠 속에 빛이 드리워지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자연스레 필요에 따라 조명에도 변화가 생기겠지.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 나가고 필요 없는 것들은 덜고 필요한 것들은 더하게 될 것이다. 다만 이 과정형의 변화에도, 엄마아빠를 기억하고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내일을 준비하는 순간들에, 조명이 늘 어둠을 밝히는 따뜻함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