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리부트 시리즈를 이끌던 시저 사후 30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설처럼 남아있는 시저에 대해 무지한 자와 이용하려는 자의 갈등은 종교를 떠오르게 하고, 유인원이 완전히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은 원작소설의 배경을 떠오르게 한다(원작의 시작은 작가인 피에르 불이 프랑스 의용군으로 참전하다 2년간 일본의 포로로 붙잡힌 일로부터 기인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략 이렇다. 인간이 유인원에게 완전히 지배당하는 세상에서 독수리부족인 노아는 우연한 계기로 인간인 메이를 만난다. 그들의 세상에서 인간은 그저 유인원에게는 열등할 존재일 뿐이다.
영화는 노아가 자신의 부족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이 여정이 노아에게는 성장이라기보다는 자각에 가깝다. 영화의 오프닝인 시저의 장례식은 <블랙팬서2>의 티찰라의 장례식을 떠올릴 만큼 장엄하게 진행된다. 영화가 구태여 300년 전인 시저의 장례식을 하나의 시퀀스로 보여준 이유는 그만큼 시저가 유인원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자명하기 위함이자, 영화가 지난 시리즈로서 분류됨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이후시저를 대하는 인물은 총 세가지로 나뉜다. 무지한 자(노아), 이용하는 자(프록시무스 시저), 계승하는 자(라카).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무지한 자가 이용하는 자와 계승하는 자와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쌓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동물인 유인원이 사람인 인간을 지배하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인종 등 차별받는 집단을 유인원에 비유해 본다면 영화는 마치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것과도 같다. 더불어 유인원이 갖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현대사회의 것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영화는 대칭되는 두 개의 입장에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저 인간인 메이와 유인원인 노아가 배신과 신뢰의 그 경계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각자의 신념대로 나아감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 연유로 결말의 시퀀스는 낙관적이면서도 비관적이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헐리우드의 자본을 갖고 철학적인 질문을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물었을 때의 옳은 결과물이다. 트랜스포머가 갈수록 혹평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반대로 이 영화가 흥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자신만의 기조를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았을 때의 예시와도 같다. 비슷한 이유로 곧 개봉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