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함과 자기 방어의 언저리에서 방황하다 이내 생각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더 이상 기대지 않겠다고. 노력해서 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기대하지 않겠다고.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며 지금의 시간을 잘 보내보겠노라고.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시간을 멈춘 여자가 시간이 멈춰진 남자에게 이내 매료되고 마는 서사를 가진다. 서로의 시계바퀴가 맞물려 이내 각자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끔 만든 그런 이야기이다.
조지 밀러식 로맨스 판타지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서사학자 알리테아가 우연히 골동품가게에서 산 호리병을 문지르다 3개의 소원을 들어주는 정녕 지니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지니의 과거를 서술함으로써 로맨스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의 사랑은 서사 극히 일부를 차지한다. 지니는 알리테아가 산 유리병을 포함하여 총 3번을 갇히게 되는데, 모두 지니가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갇히게 된다. 죽음과도 같은 불행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 앞에선 모든 걸 내어주고 마는 지니의 사랑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것이 곧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지니의 등장만큼이나 '지니 같은 사랑을 받는 것'이 현실에서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소원을 빌라며 재촉하는 지니에게 이미 나는 충분한 삶을 살고 있다던 알리테아는 지니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지니가 했던 그 사랑을 받아보는 것. 혼자서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알리테아가 마지막 소원으로 애정을 빈 것은 어쩌면 혼자서도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사랑을 애걸할 바에야, 원하는 사랑을 줄 대상을 찾기 위해 골몰하며 시간을 견딜 바에야.
영화 <3000년의 기다림>은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과감히 생략되어 버린다. 사실상 지니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그의 진솔한 사랑에 대한 과거가 대부분인지라, 무언가 대단한 판타지 로맨스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이게 뭐야?'라는 마음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 이 영화를 곱씹어보면 알리테아가 한순간에 지니에게 빠져버린 이유를 짐작하게 것이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판타지에 기반한 로맨스가 아닌 판타지 그 자체이다. 말도 안 되는 확률로 그런 사랑을 하는, 그럴 대상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치 수천만 분의 일 확률로 지니의 유리병을 갖게 된 알리테아처럼.
영화는 지니가 알리테아의 상상 속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구태여 관객에게 확인시킨다. 그것이 알리테아에게는 해피엔딩일 테니. 그것이 어쩌면 한 번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말하는 것일 테니. 모든 일상에 스며들지는 못하더라도 모든 재회가 특별한 어느 장거리연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