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윤리> 2018년 11월 호 기고문
(분량제한으로 <신문윤리>지면에서는 일부 내용이 축약되었고 각주가 생략되었음)
가짜뉴스(fake news)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의 높은 관심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트럼프 후보자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선거운동 기간 페이스북을 통해 널리 확산 유포된 가짜뉴스가 그의 당선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고 가짜뉴스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촉발되었다.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빈번하게 사용하여 대중 담론으로 끌어들인 정치인 역시 트럼프인데 그는 기성언론 중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의 기사를 ‘가짜뉴스’로 명명했다.
동어이의(同語異義)로 출발한 용어가 국내 언론에 소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가짜뉴스를 정의하려는 학자들의 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중 담론에서 가짜뉴스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매우 다양하다: 실수로 제공된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고의성을 띤 허위정보(disinformation), 풍자(satire), 소문(rumor), 언론의 오보,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보도, 편향성이 내포된 언론보도, 특정 정치인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트럼프의 용법), 정치선전(propaganda), 허위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극단적 주장, 민주주의 과정에 대한 외부 세력의 간섭(미국 대선에서의 러시아의 개입) 등.
이러한 개념적 모호성은 가짜뉴스 규제 논의에 필연적인 혼란을 초래한다. 게다가 가짜뉴스 규제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때로는 개인적 법익(예: 명예에 관한 권리 등 개인의 인격권, 사회적 약자 집단 구성원의 존엄성)이고 때로는 사회적 법익(예: 선거의 공정성, 포용의 공공선)이다. 가짜뉴스에 담긴 내용과 사용맥락에 따라 가짜뉴스가 침해하는 법익의 종류와 결이 달라지기 때문에, 규제대상으로서의 가짜뉴스는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개의 과녁을 하나의 돌을 던져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편,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는 가짜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라는 접미어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 즉, ‘뉴스 형식이 아닌 형태로 제공되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들 —가령 댓글이나 트윗 조작, 검색어 조작, 댓글 추천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 트위터 팔로워(follower)수 조작,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을 활용하여 조작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이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온라인 정보생태계(information ecosystem)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고 이러한 조작과 기망에 대해 창의적이고 다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한마디로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오염되었고 해결책 마련을 위한 생산적 논의에 유용하지 못하다. 우리 언론은 이제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대중담론에서 사용중지하고, 대신 우리 사회가 온라인 정보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 각종 조작 행위에 대응하는 방법을 포괄적으로 고민해야한다는 점을 제기해야 한다.1) 또 언론은 가짜뉴스로 지칭되는 다양한 내용들 중 어떤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규제되어야 할지에 대한 세부적이고 정치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환기시켜야 한다.
온라인 정보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성언론과 전문 언론인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마지막 제언을 위해 다시 미국의 사례로 돌아가고자 한다. 미국 대통령선거 이전 18개월 동안 온라인에서 유통된 2백만 개의 뉴스를 분석한 하버드 법대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선거 전 온라인에서 생겨났던 허위정보 모두가 널리 확산되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허위정보들 중 폭스뉴스(Fox News), 브라이트바트(Breitbart) 같은 보수 우파 매체들이 마치 정당한 의혹인 것처럼 보도했던 내용들만이 계속 살아남았다. 중도 및 진보매체들은 트럼프에 대한 아무 근거 없는 공격이 온라인에서 제기되었을 때 해당 주장을 검증한 후 보도하지 않은 반면, 보수우파매체들은 ‘힐러리는 소아성애자다’라는 아무 근거 없는 허위주장조차 확대재생산했다는 것, 요약컨대 진정한 문제는 온라인 허위정보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언론이었다는 것이 벤클러 교수 연구팀의 결론이다.2)
온라인에서 허위정보가 힘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유로 필터버블(filter bubble), 네트워크 양극화, 확증편향, 기성언론에 대한 신뢰저하가 있다. 미디어 이용자들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치성향에 맞는 정보만을 습득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소속집단의 동질성을 강화하여 정치적 극단주의를 유발할 뿐 아니라 객관성, 불편부당성, 공정성 등을 강조하는 기성언론에 대한 반감 혹은 불신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진보층이 한겨레와 경향을 외면하고 팟캐스트에 열광하는 현상, 한국의 보수층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외면하고 유튜브 채널에 열광하는 현상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하지만 벤클러 교수팀의 연구가 보여주듯 양극화된 온라인 세계에서 양측을 점점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온라인 허위정보만이 아니었고, 네트워크 양극화 양상 역시 양쪽 진영에서 동일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지 않았다. 온라인 허위정보가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기성언론과 전문 언론인이 그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가에 달려있었다. 온라인 허위정보에 맞서기 위해 기성언론과 전문 언론인이 해야 할 역할은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하는 일’이라는 뻔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
(각주)
1) 포괄적 대응책 마련과 관련해서는 지난 3월 유럽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가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하는데, 해당 보고서는 온라인 상의 허위정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언론사·조사기관·시민단체 등 여러 주체들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5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온라인 뉴스의 투명성 향상, 미디어 및 정보리터러시 함양, 이용자와 언론인들이 허위정보를 다루고 진화하는 정보기술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 언론 매체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 보호, 허위정보의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장려. 해당 보고서 전문은 https://ec.europa.eu/digital-single-market/en/news/final-report-high-level-expert-group-fake-news-and-online-disinformation 에서 볼 수 있다.
2) 벤클러 교수 연구팀은 여기 소개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2015년부터 3년간 온라인에서 유통된 4백만개의 기사를 추적 연구한 결과를 담은 신간을 지난 9월 내놓았는데, 이 신간의 제목은 <네트워크 프로파간다: 조작, 허위정보, 그리고 미국 정치의 극단화(Network Propaganda: Manipulation, Disinformation, and Radicalization in American Politic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