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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Dec 26. 2022

"락스텝 트-리플, 스텝스텝 트-리플"

2막 1장.

'이번에는 어쩌면 20분 안쪽으로 끊을 수 있겠어.'


시계를 보니 3시 10분 전이었다. 자전거 속도를 좀 더 빠르게 내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날은 무더웠고 옷은 땀으로 젖어갔다. 팔뤄들이 내 등이나 어깨를 잡는 것을 생각하니, 젖은 옷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멍청하게 왜 챙겨놓고서 두고 왔을까…' 


건널목 앞에서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등 뒤로 계속 흐르는 땀을 조금이라도 말려볼까 싶어서 옷을 흔들어댔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오늘은 올해 겪은 더위 중 가장 무더운 날인 듯싶었다.


'빨리빨리 움직여서 버스를 탈걸….'


그러나 버스를 기다리기엔 너무 시간이 걸렸고 택시를 타기엔 조금 돈이 아까웠다. 결국, 매번 하던 대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나섰지만, 실은 나서고 첫 신호등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기다리자마자, 더운 날씨에 이 선택이 잘못된 거란 걸 알아차렸다. 주머니에서 지난 지터벅 졸업 공연 때 파트너로부터 받은 하늘색 손수건을 꺼내 잠깐 내려다보다가 이내 땀이 난 이마와 얼굴을 닦았다.

달리면서 문득 첫 지터벅 모임 때에도 늦어서 자전거로 부리나케 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꽤 많은 일이 있었고 모든 어색함이 점차 익숙해져 갔다. 일상에서 벗어난 즐거운 일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일상을 수정해야 할 일도 점차 많아졌으며, 다시 일상의 안정을 찾기까지 삐걱거리는 일도 몇 가지 있었다. 마치 서로 어색하게 다가와 불같은 사랑이 되기까지의 과정 같았다.


"사랑에 있어서 친밀함으로 다가가는 단계 이전에는 열정으로 맞이하는 단계가 존재하지. 물론 친밀함으로만 존재하는 애정도 있기야 하지만, 연애의 달콤함을 추억하는 것은 열정이 아닐까 싶어. 여하튼, 그 열정이라는 이벤트의 첫 단추는 언제나 원래는 안될 시간도 할애하면서 시작되지만, 그 사랑이 친밀함으로 변해갈 때는 할애된 시간의 일부는 일상이 삐걱거리지 않게 다시 되돌아가는 법이야. 사랑 이외에도 일상에는 여러 문제가 껴 있기에 매번 열정적인 사랑에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친하던 후배가 나도 알고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변한 것 같다고 말할 때, 나는 그녀를 달랠 겸, 또 그를 옹호할 겸 이렇게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여하튼, 돌이켜보면 지터벅을 꽤 열정적으로 했던 듯하다. 이 시답잖은 사랑의 단계를 지터벅에 비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이런저런 생각을 마무리할 무렵 지도에 찍힌 장소에 거의 도착했다. 처음 간 곳이라 오히려 지도보다 좀 더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는데, 그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좀 더 늦고 말았다. 열쇠를 잠가두고 위로 올라서자 밝은 분위기의 연습장에 사람들이 이미 와서 몸을 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이제 막 몸을 풀고 있었어요."


이제 얼굴이 익숙한 팔뤄돔이 반가운 기색과 초콜릿을 건네며 말을 건넸다. 나 역시 그분을 보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명찰을 왼쪽 가슴에 달고 고개를 드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불빛과 거울, 그리고 강사님들이었다. 


'첫 모임에 간 무대는 어둡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연습장은 꽤 밝구나.'


오후 3시라는 낮 시간 대이기도 하거니와 불빛도 갈색이 아닌 백색이었다. 무대 위로 내려치는 빛이 무겁지 않아서인지 혹은 이미 다들 친밀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마음이 한껏 가벼웠고 연습하면서도 좀 더 편한 농담을 서로 할 수 있었다. 


오후 3시에는 어디에나 행복이 없다던 어느 시인의 구절과는 다르게 행복이 있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의 말대로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일는지도 몰랐지만, 오후 3시를 넘어선 내 인생에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은 그게 믿음이든, 진짜 행복이든 기쁜 일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실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아직도 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있으니까. 그러한 이유로 결국, 나는 내가 기쁘기 위해 편한 농담을 건네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두 달 동안 무대 위에서 오로지 한 가지 목적, 가능한 모든 사람과 춤을 추겠다고 다짐 후, 춤을 춘 적이 있었다. (이런 다짐이라도 없으면, '잘 못 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결국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번번이 실패한 일이긴 하지만, 그 의지 덕분에 수많은 분과 춤을 추면서 여러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상대가 웃거나 미소를 지을 때 나도 긴장이 완화되고 좀 더 수월하게 리딩을 할 수 있었던 반면, 상대가 무표정할 때에는 상대적으로 리딩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도 결국 나는 내가 기쁘게 춤추기 위해서 먼저 미소짓고, 상대에게 말을 걸고, 이따금 상대를 웃음 짓게 할 가벼운 농담을 했다.


사실 두 달 동안 춤을 추면서 기억에 남는 건, 춤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춤은 내가 어떤 동작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의 표정만큼은 강렬하게 남았다. 그중에는 환희에 차 보이는 듯한 표정도 있었는데, 물론 나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도 그 표정에 감동을 받아 기쁘게 출 수 있었다. 실로 그 순간에, 왜 모 가수가 '넌 감동이었어'라고 노래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환희에 찬 상대만 보이는 몰입의 순간,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을 순간이 분명했다. 그렇게 웃어준 팔뤄와 내게 친근한 미소를 지어준 모두에게 진실로 감사하다. 


"지터벅의 스텝이 락스텝, 스텝, 스텝이었다면 트리플은 락스텝, 트리플, 트리플이에요. 그러나 트리플이 각각 정박이 아니라 트-리플, 트-리플이 되죠."


눈앞에서 강사님들이 '린디합(Lindy Hop)'이라는 춤의 기본 스텝을 설명하면서 몸으로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 뜻이 무언인지 궁금해 오기 전에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나무 위키라는 곳에는 대략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스윙 댄스의 하위장르인 린디합(Lindy Hop) 은 1928년경 미국 뉴욕에서 개발된 파트너 춤이며, 스윙재즈의 시대(SwingEra) 시기에 발생했다. 린디합 이전 20년대에는 찰스턴, 폭스트롯, 탭댄스가 있었다고 하며 린디합 베리에이션에 활용된다. 린디합의 어원은 1927년 찰리 린디버그(Charles Lindbergh)라는 비행사가 쌍발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이벤트가 당시 뜨거운 이슈였는데, 이 '린디' 라는 말과 린디합 특유의 바운스인 뛰어오르는 모양 혹은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양인 '합(hop)'을 붙여 린디합이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 트리플을 하기에 앞서서 바운스를 하는 법을 알려줄게요. 바운스는 다운 바운스에요. 뒤꿈치를 들되 눌러 준다는 느낌으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말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음악에 맞춰 강사님들의 동작을 따라 계속 반복했다. 리듬감을 온몸으로 표현해 보려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리듬감을 돼지 꼬리 같다고 생각해봐. 돼지 꼬리가 용수철처럼 말려 있잖아? 약간 그 느낌으로 스텝을 밟도록 해봐."


며칠 전에 주짓수 도장에서 했던 형님의 말이 기억났다. 다운 바운스로 누르되 약간은 유압 스프링처럼 부드럽게 오르는 느낌이 포인트인 것 같았다. 발 앞부분부터 무릎까지의 유압 스프링을 아래로 꾹 눌렀다가 탄성을 튕기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올라온다는 상상을 하면서 몸을 계속 움직였다. 몇 번을 반복하니 생각보다 종아리가 땅겼다. 


'이거 운동이 되겠는걸?' 이런 생각과 더불어, '무릎이나 종아리에 무리가 덜 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릎이 무리가 가는 건 다운 바운스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갈 때 그 하중을 흘리지 못하고 무릎으로 다 받아서 그렇다. 그렇다면 흐름대로 다운 바운스 후 탄성으로 올라가는 힘을 무릎에서 끊을 게 아니라 함께 떠서 상체로 흘려야 하지 않을까? 또한, 너무 지나치게 뒤꿈치를 뜰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면서 앞의 거울을 보며 몸의 자세나 형태를 수정해나갔다. 그렇게 점차 몸이 흐름을 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젠 트리플을 알려줄게요. 트리플은 '트'가 길고 '리플'의 박자가 짧아요. 그걸 투 스텝이 아닌 쓰리 스텝으로 나누어 춰야 하죠. 스텝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발을 떼어야 해요."


강사님들은 대략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음악에 관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한 게 고등학교 때이기에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쭙잖은 음악 이론을 저 스텝에 대입해 본다면, 2박 중 '1과 1/4박'을 '트'에, '리'에는 2/4박을, '플'에 각각 1/4박을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자면 '트'에서는 다운 바운스로 내려간 몸이 탄성을 받아 빠르게 '리'와 '플' 스텝을 밟아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동작이 그 형님이 말씀하신 돼지 꼬리의 움직임, 즉 큰 돼지 꼬리를 담당하는 '1과 1/4'짜리 넓이의 타원 하나에 뒤이어 부드럽게 따라오는 '2/4'짜리 작은 돼지 꼬리 타원, 그리고 그것보다 더 작은 '1/4'짜리 넓이의 돼지 꼬리 타원이 연이어 와야 하는 형세였다. 말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이미지로는 그 움직임이 충분히 그려졌다. 


"락스텝 트-리플, 락스텝 트-리플, 스텝스텝 트-리플, 스텝스텝 트-리플!"


배우고 나면 늘 그렇듯 능히 해낼 수 있을 때까지 반복 숙달을 했다. 특히 반복 연습을 할 때는 크게 구음(口音) 하면서 몸을 움직였는데, 동료들도 이에 반응하여 함께 소리를 외쳐 지터벅 때처럼 군대 훈련과 같은 풍경이 연출 되었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보다 쉬지 않고 큰 소리를 뱉어내는 것이 더 힘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 동료들과 어떤 합이 맞아가는 듯한 느낌, 일체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큰소리로 하면서 호흡에 관한 체력을 향상하기 위함도 있거니와 계속 앞에서 입으로 스텝을 외치시는 강사님들의 노고를 덜어드리기 위함도 있었다.


"이제는 익숙해졌으니 원형으로 서 주세요. 앞으로 돌면서 트리플 스텝으로 이동할 거예요."


마치 원시 제식 행사를 치르는 듯, 우리는 원형으로 서서 구음을 하며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쉬는 시간이 오자, 한쪽에 모여 뻐근해진 무릎과 종아리를 주물렀다. 지터벅 때 수강했던 동기들이 거의 다 린디를 수강을 하고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처음 보는 분들도 몇 분 계셨다. 들어보니 대체로 기존 동호회 회원으로 일종의 재수강을 하는 거라고 했다. 아직은 어색해서 그런지 동기들은 다들 동기들끼리 뭉쳐 있었고, 그분들은 그분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고동락까지는 아니더라도 2개월의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현재로서는 이렇게 나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전에 본 영어 지문 중 하나에서 신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글에서는 대략 신뢰가 어떤 행동에 대한 의식적인 통제를 푼 다음,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수행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를 동기간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함께 모이는 까닭도 의식적인 통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즉, 신뢰한다는 것은 함께해도 불편함이 없는 것이며, 2개월이라는 기간은 그만큼의 신뢰를 쌓기에 충분했던 듯하다. 

신뢰를 쌓는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쌓는다'라는 말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돌담을 쌓듯 신뢰 관계는 노력과 동시에 진득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난 누군가에게 신뢰를 줄 만한 사람이던가?' 그리고 '나는 나를 신뢰하는가?' 끊임없는 회의와 반성 속에서 단단해지는 자기 확신만이 타인에게도 신뢰를 주는 내가 될 것만큼은 확신한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친구들이 쉬지 않고 내 앞에서 계속 트리플 연습을 했다.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일어나 그 연습을 따라 했다.


"자, 다시 시작합시다. 처음에는 클로즈 포지션을 한 자세에서 제자리 트리플 스텝을 밟을 거예요. 락스텝 트-리플 트-리플!"


우리는 지터벅 때와 마찬가지로 한 동작을 익힌 후에 다음 동작을 배웠다. 지터벅 턱턴(Tuck Turn)과 쉬고즈 히고즈(She goes He goes) 동작이었다, 특히 쉬고즈 히고즈 동작은 지터벅 첫 날 배웠던 것이었다. 문득 첫날 강사님들 앞에서 어색한 인사를 하고 어색한 동작을 취하던 풋풋한 추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때와 동작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말인즉 지터벅에서 배운 동작들을 트리플에서도 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동작들도 언더 암턴이나 사이드 패스같이 지터벅 때에도 배웠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동작들도 마찬가지로 린디에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것을 지터벅 스텝이 아니라 트-리플 스텝으로 바꿔가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발 빠르고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제자리 트리플 스텝, 턱턴, 쉬고즈 히고즈, 인사이드 언더 암 턴, 사이드 패스를 연달아 연습했다.


"소셜 모임을 하실 때, 계속 이것을 반복하시면 돼요. 아니면 아직 린디가 자신이 없다면 지터벅을 해도 무방하고요."


강사님들은 혹시나 우리가 소셜에서 다른 린디를 추시는 분들께 민폐가 될까 걱정할 걸 예상했는지 혹은 자신의 실력이 부끄러워서 홀딩 신청을 못 할 걸 걱정하셨는지, 어려우면 지터벅으로 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다시 문득, 제일 처음 소셜 모임을 할 때, 의기소침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의기소침해지고 나서, '이 무대 위의 모든 팔뤄와 다 손을 잡아보자!' 라며 두려울 때마다 매번 다짐했던 것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 다짐을 다 완수한 적은 인원이 비교적 적은 수요일 정기 모임 때를 제외하곤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을 먹고 나면 부끄럽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물리칠 수 있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다.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의지를 더 내세울 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게도 해주고 문제였던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닌 것이 되기도 했다. 


'자신감은 자기 자신과 자신이 가진 능력이 쓸만하다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상대의 능력이 나보다 우수해 보일 때나 혹은 잘 알지 못할 때 또는 평가받을 위치에 서 있을 때는 내 능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은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때가 진정 자신감이 작동하기 위해서 의지라는 기름을 넣을 때이다. 끊임없는 두려움과 회의 속에서도 그럼에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는 의지, 나는 잘났다고 믿는 의지, 나는 적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충분한 연습을 했다고 믿는 의지가 필요할 때이다. 물론 그 의지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특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내 능력과 자기 최면에 가까운 의지의 격차가 클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까닭에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는 의지와 실력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어도 나의 결론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무척이나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 소심증을 대범함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자기 최면이 필요했으며, 그 최면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실력을 쌓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결국,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결점이 지금껏 나를 성장시켰다. 


잘 되지 않는 트리플을 배운 것들에 맞춰 계속 반복한다. 곧 익숙해질 거라는 확신으로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한 번 더 해볼게요." 다행스럽게도 함께 해주는 도우미분들이 나의 이런 계속된 연습 요청을 웃으면서 받아주시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특히, 들어오자마자 내게 청심환같이 생긴 초콜릿을 주신 팔뤄돔은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린디를 어떻게 춰야 할지 보여준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팔뤄돔이라 그런지 더 편하고 반갑다. 


아직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공간,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린디의 스텝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라는 걸 안다. 그 시간을 그저 흘러버리지 않고 관심을 두고 지켜보며 또 노력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좀 더 깊어지느냐의 문제일 따름이다. 공간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도, 그리고 배우는 기술과의 관계도 그렇다.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보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다.'라는 구절이 있다. 비단 사랑이 아니더라도 결국 그 사랑은 깊은 관심의 다른 이름이니 '관심이 있으면 좀 더 노력하여 알게 되고 그렇게 알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라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익숙해지면 보이는 게 전과 같지 않은 건 당연할 일이다. 이러한 과정이 없이 조급해지면,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어색함이 싫어 억지로 관계를 끼워 맞춰보려고도 했지만, 그보다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좋다는 걸 어느 시기부터 알아차렸다. 조바심을 내기보다 관심을 두고 지켜보면서 알아가고 탈이 나지 않도록 꾸준히 맞춰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꾸준한 관심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기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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