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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an 02. 2023

나만의 것, 나만의 스타일을 위하여

2막 2장.


"무조건 스윙화 공구(공동구매) 하는 거예요!" 


팔뤄 동기의 반강제, 반농담식의 구매 요청에 우리는 웃고 말았다. 린디를 하게 되면 운동화보다 바닥이 부드럽게 잘 미끄러지는 스윙화가 좋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구매를 서두를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바닥이 비교적 평평한 신발에 가죽을 덧대는 방법도 있다고 들어서, 가지고 있던 신발 바닥에 가죽을 붙이려는 생각도 어렴풋하게 하고 있던 찰나였기에 그녀의 제안은 솔깃하면서도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가죽을 붙이려면 신과 가죽을 사서 구둣방에 붙여달라고 요청하면 돼요. 가격은 대략 2만 원 줬던 거 같아요."

지금은 린디 수업의 팔뤄 돔이 된 누나가 예전에 말했던 게 기억났다. 

'새 스윙화의 가격은 대략 5만원이고 공동구매를 하면 한 10~20퍼센트 이상은 저렴할 것 같다. 가죽을 붙이면 따로 신을 소유하지 못하는 반면 2만 원 선에서 해결 가능하다.'

나름의 셈을 하고 보니, 어차피 스윙을 계속하려면 스윙화가 필요하니 공동구매를 하고 기존에 샀던 신발은 일상화로 쓰면 될 것 같았다. 가죽만을 따로 구매해서 붙여볼까도 했지만, 선뜻 자신 있진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놀라운(?) 추진력의 결과로 10명 가까이 모여 공동구매를 하게 되었으나 결론은 고작 2천 원 할인이었다. 스윙화를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곳이 고작 한 곳뿐이었기에 할인 같지 않은 할인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살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홀대(?)한 건지 아니면 수제화라 순이익이 많지 않았기에 그렇게 할인율이 낮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윙화를 사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의 온도가 한순간에 식어버린 것은 분명했다.

'가죽을 직접 바닥에 붙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공동구매가 취소되었다는 공지를 보게 되자, 순간 직접 바닥에 가죽을 붙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가죽에 본드를 골고루 발라 바닥에 안 떨어지게 붙이기만 하면 되는지라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어떤 가죽을 붙여야 하는가와 어떤 본드로 어떻게 안 떨어지게 붙이느냐가 중요한 일인 듯했다.

일단, 유튜브로 스윙화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 몇 개 영상이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가죽을 써야 하는지, 어떤 본드가 적합한지를 알기가 어려웠다. 다만 몇 가지 영상을 종합하고 주변 분들의 의견을 들어봤을 때, 비교적 두툼한 일반적인 가죽의 스웨이드 부분을 활용해서 쓰는 듯했다. 구체적으로 만드는 과정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국내 유튜브에서는 자세하게 안내를 하지 않는 듯하여 DIY Swing Shoes로 영어로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가죽을 활용하여 스윙화를 비롯한 각종 댄스 슈즈를 제작하는 법을 비교적 자세히 안내하고 있었다. 문제는 외국 영상에서 소개하는 본드를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판매하고 있지 않거나 구매를 한다 해도 비싸다는 점이었는데, 그와 관련하여 계속 검색을 하니 구두나 가죽을 붙일 때 쓰는 본드와 거의 동일한 성분임을 알았으며,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공본드와 유사했다. 신발의 고무 부분과 가죽을 붙이기에 적합한 본드를 좀 더 알아보기 위해 가죽에 붙이는 본드들을 다시 검색해보니, 사용 용도나 점성, 활용 등에 따른 적합한 접착제를 안내하는 영상이 있었다.

그렇게 검색해서 나온 최종 결론은 가죽은 비싼 새것을 사기보다 자투리로 나오는 것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이 좋으며 본드는 소위 오공본드와 같이 구둣방이나 가죽 공예 등에서 작업할 때 쓰는 본드를 사되 집에서 작업할 걸 고려해 냄새가 심하지 않으나 접착이 잘 되는 것을 구매하면 될 것 같았다. 

구매할 자투리 가죽을 검색하니 다행스럽게도 1kg 단위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본드는 '이태리 켄다본드'라는 걸 구매할 수 있었다. 참고로 본드는 인터넷에서는 개인에게 판매가 어려우며 사업자 등록증이 있어야만 구매할 수 있다.

가죽을 사는 목적이 그저 밑창 작업이었기에 아예 작은 자투리 가죽이 오면 곤란할 것 같아, 구매 후 글을 남기니 그다음 날 아침에 연락이 왔다.

"오늘 나온 가죽들의 크기가 작은데, 내일 보내드려도 될까요? 내일은 큼직한 것들이 나올 예정이라서요."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제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신발 바닥 크기뿐이니까요."

이삼일이 지나고 자투리 가죽 3kg과 250g짜리 본드 하나가 배송되었다. 그렇게 원하는 물건을 받고 나자, 그 전주 토요일에 뒤풀이에서 이야기 나눈 게 생각났다.

"신발 바닥 작업을 직접 해보려고요. 일단은 가죽을 조금 넉넉히 구매해서 제 신발을 수선해보고 남은 거로 가죽벙을 할까 해요. 그 가죽으로 자신의 신발을 댄스화로 바꿔보는 모임을 가지면 좋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재밌을 것 같기도 뭔가 우리에게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가죽이 비싸지 않겠어요?"

"일단 좀 더 알아봐야 하겠는데, 자투리 가죽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 있더라고요. 어차피 바닥 면이니까, 비싼 새 가죽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린디로 올라오면서 뭔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던 차에 함께 모여 친목을 쌓고 자기가 신을 신발을 댄스화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기에, 팔뤄 누나와 공동구매를 추진했던 팔뤄 기짱(여자 동기 대표)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그녀들은 모두 좋은 생각이라며 어두운 술집에서도 빛이 날 듯한 눈으로 긍정했고 나는 그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힘입어, 보기 좋게 이것들을 주문하게 된 것이었다. 

주문한 3kg의 가죽을 펼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신발의 양을 계산했다. 여러 색깔과 여러 크기의 자투리 가죽이 왔는데, 그렇다고 해도 최소 신발 하나 정도는 들어갈 크기로 보내주셔서, 얼추 못해도 20켤레 이상은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그중에서 하나를 펼쳐 유튜브에서 본 대로 바닥의 본을 뜨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가위를 들어 본을 뜬 선의 안쪽을 따라 잘라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르는 까닭은 가죽을 계속 밟으면 늘어나기도 하거니와 가죽이 신발의 바닥 면을 넘어서 삐져나오게 되면 작업 후 다시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죽을 자르면서 들리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서걱, 서걱….

꼼꼼하게 다 자른 뒤에는 자른 가죽의 면을 뒤집어 다시 본을 뜨고 잘라냈다. 이렇게 한 켤레가 완성되고 해야 할 일은 접착제를 펴 바르는 일이었다. 

"바닥 면과의 접촉력이 더 좋게 하기 위해서는 사포 등으로 신발과 가죽을 거칠게 문지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어느 유튜버가 신발과 가죽을 그냥 붙였을 때와 사포로 문질러 어느 정도 거칠게 만든 뒤 본드의 접촉력이 어떠한지에 대한 테스트를 하던 게 떠올랐다. 물론 이것은 구두의 바닥 면과 고무인 밑창을 붙이는 테스트이긴 했는데, 마찬가지로 댄스화를 만들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거친 사포로 몇 분간 문질러 봤지만, 생각보다 가죽을 거칠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을 작업하다가 큰 효과가 없을 것 같아 포기하고, 유리를 닦는 세정제로 지저분한 바닥 면과 가죽을 닦아냈다. 그런 다음 본드를 매끈한 가죽 면(우리가 필요한 부분은 스웨이드 면이다)에 펴 바른뒤 신발 바닥 면에 발랐다. 

본드와 관련된 각종 채널을 살펴본 뒤 내린 한가지 중요한 깨달음이 있었는데, '나는 지금껏 본드를 잘못 쓰고 있었구나!' 였다. 지금껏 오공 본드류의 고무색의 본드가 잘 붙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싸구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무조건 강력 본드가 좋은 것으로 생각했고 접착을 해야 할 모든 것에는 투명한 강력 본드를 선호했다. 그렇기에 초등학교 이후로 난 그런 허섭 쓰레기 같다고 느낀 오공본드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실은 나는 튜브 연고같이 생긴 본드의 겉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씨도 제대로 읽지 않고 접착제가 후진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잠시 회상하며, 본드를 바른 가죽과 신발을 베란다에 두고 환기를 했다. 아무리 냄새가 적은 본드라고 하더라도 냄새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공 본드류 가죽 본드를 붙이는 것은 마치 투명 테이프의 접착 면을 서로 붙이는 것과 비슷했다. 누구나 경험이 있겠지만, 투명 테이프의 접착 면이 서로 붙어버리면 떼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가죽과 신발 밑창 양면에 본드를 바르는 이유도 바로 그렇게 붙이기 위함이었다. 적당히 말리는 까닭은 아무래도 일단은 바른 부분이 단단히 잘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유튜버는 최소 1시간 이상 말리고 최대 하루까지 말려도 괜찮다고 했다. 각 면이 잘 말랐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최소한 손가락을 대었다가 뗄 때 달라붙지 않고 쉽게 떨어지면 된다고 했다. 하루가량 말려서 손가락이 본드에 거의 안 붙게 되어도 상관이 없는데, 그 까닭은 적당히 열처리하면 다시 붙고 마르면서 접착력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붙이게 되면 붙일 때 붙인 면이 잘 떨어지지 않아, 실수를 해도 수선하기 어렵게 된다고도 했다.

아직은 그에 대한 의심이 있어서 하루나 반나절을 기다렸다가 붙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넉넉잡아 2시간 정도를 말리는 시간으로 잡았다. 그렇게 말리니 유튜버의 말대로 손가락을 대어도 쉽게 떨어지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이제 열처리를 해도 될 시간이라는 말이었다. 열처리는 헤어드라이어로 꼼꼼하게 양쪽 면에 열을 전달하는 건데, 아무래도 가죽 작업을 하는 유튜버의 도구와 가정용 드라이기로는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여하튼 그때는 나 역시 처음이라, 달리 방법을 생각지 못했다. (지금은 생일 촛불을 켤 때 쓰는 주둥이가 긴 라이터로 열처리를 좀 더 강하고 꼼꼼하게 한다.) 

충분한 열을 본드가 발라진 면에 공급한 뒤에 신발 바닥에 벗어나지 않도록 가죽을 대었다. 잘 말라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의 점성 때문에 실수로 잘못 붙여도 쉽게 떼어내고 다시 붙일 수 있었다. 물론 두 면이 많이 닿아버리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떼기가 어려우므로 계속 신경 써서 붙일 필요가 있었다. 

붙이고 나서는 가죽과 바닥 면이 더욱 잘 붙을 수 있도록 준비한 고무망치로 붙은 면을 계속 때렸다. 마치 검을 단련하듯 계속 두드려 댔다. 몇 번을 그렇게 두드리다가 망치로 그 소리가 생각보다 큰 듯하여, 이 또한 함께 사는 아파트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신발을 가지고 아파트에서 좀 멀찍한 곳으로 나와 두드려 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손이 아플 정도로 두드리고 나자 이제야 좀 만족스러운 바닥 면이 된 듯했다. 그 녀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 밖으로 삐져나온 부분을 다시 가위로 정리하고 모서리를 마지막으로 두드렸다. 이렇게 하고도 본드는 바로 붙는 게 아니라 약 이틀 정도가 지나야 완전히 마른다고 했다. 그 이틀간, 보통은 신발이 가죽과 잘 붙도록 이틀간 위에 무거운 걸 올려두거나 랩이나 테이프로 싸맨다고 했지만, 번거로운 듯해서 그냥 두었다. 

내 손으로 만든 댄스화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신발을 새로 사지 않고도 기존에 신던 신발을 작업해서 돈도 적게 들 뿐 아니라, 스타일이 몇 개 안 되는 스윙화가 아니라 자기 스타일에 맞는 신발을 골라 댄스화로 신을 수 있으니 모두가 좋아할 것 같았다. (이후 여러 신발을 작업하며 느낀 것은 모든 신발이 댄스화로 적합한 것은 아니고 바닥 면이 홈이 많지 않거나 울퉁불퉁하지 않으며, 일관적으로 고른 게 접착 면이 넓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고 작업하기도 수월했다. 그렇기에 인터넷에서도 '케즈'와 같은 밑면이 고르고 가벼운 신발에 가죽을 붙이는 걸 선호하는 듯했다.)

'바닥에 가죽을 붙인 신으로 춤을 추면 어떤 느낌일까?'

만들고서 신발을 신어 보기야 했지만, 일반적인 바닥에서는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무로 된 무대 위에서는 어떤 느낌일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미 신어봤던 이들에게 들었던 대로 미끄러울 것이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렇게 새로운 댄스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라 있을 무렵, '코로나'라는 복병으로 인해 수업이 부득이하게 한주 뒤로 밀리게 되었고, 그 다음 주가 되어서야 당당히 내가 만든 신발을 꺼내 동기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어때요? 어떤 느낌이에요? 많이 미끄러워요?"

공구를 추진했었던 기짱이 내게 궁금한 듯 이것저것을 물었다. 나도 방금 신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바닥을 덧댄 댄스화의 느낌은 독특했다. 조금은 더 푹신해진 듯했으며, 트리플 연습을 할 때도 생각한 것보다 더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오! 느낌이 독특하네요. 생각한 것보다도 좀 더 미끄러워요."

이게 스윙 댄스에서 어떤 움직임을 좀 더 원활하게 하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미끄러워서 이 미끄러짐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무릎이나 관절에 더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신발의 미끄러움은 리더보다 팔뤄에게 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윙 아웃을 하게 된다거나 회전은 리더보다 팔뤄가 더 많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따금 무게 중심을 잡고 상대를 리드해야 할 때 신발이 많이 미끄러우면 되려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차차 알게 되겠지. 이게 일반 신발과 어떤 차이점을 보이게 될는지는.'

신발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일단은 이렇게 부드럽다는 것은 댄스화로서의 성능이 어느 정도 잘 유지된다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웠고 이제 자신만의 신발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과 모임을 계획 하기만 하면 될 듯했다. 


수업은 1주 차에서 진행한 것의 복습으로 바운스와 트리플 연습을 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바운스와 트리플을 배우고서 몇 번 영상을 찍어 보았다. 유압 스프링의 느낌을 살려 뭔가를 누르는 듯한 다운 바운스만으로 몇 곡을 연습하고 그다음에는 트리플 스텝을 앞뒤, 좌우로 밟아갔다. 바운스를 내리고 올리면서 자칫 무릎에 실리는 힘들을 어느 쪽으로 빼야 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나는 그 방향을 무릎이 올라가는 만큼 위쪽으로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체가 위로 뜨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와 달리 강사님들의 바운스에서 상체는 그렇게 큰 이동이 없었다. 말하자면, 다운 바운스 후 '〉' 이러한 오금의 모양이 거의 '|' 이런 형태가 되는 게 아니라 움직일 때 살짝 펴지고 계속 이 정도 '〉' 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발바닥도 앞부리를 계속 세우고 있는 게 아니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뒤꿈치까지 발바닥 지면을 누르고 다시 오르고 있었다. 즉, 오금의 가동 범위와 뒤꿈치를 떼어 줬다가 내리는 범위의 조정으로 상체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유지했다. 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걸어갈 때 상체가 거의 가만히 있게 되는 것과 유사했다. '어쩌면 나는 이 스윙의 스텝을 걷는 게 아니라 뛰는 동작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움직임에 대한 관찰은 정리되지 않은 몇 가지 궁금증을 낳았는데, 무엇보다 이 바운스 동작과 걷는 동작, 그리고 뛰는 동작에 대한 차이와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강사님들은 이 두 기본동작에 관한 연습이 어느 정도 끝난 후 정말 기본이지만, 중요한 사항들을 집어 주셨다. 그중 하나는 상대를 홀딩하는 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지터벅 때 했던 많은 동작이 리더의 의도에 따라 팔뤄가 따라 움직이는 동작을 이름으로 만든 것처럼, 상대를 홀딩할 때에는 내 키나 편의에 맞춰 상대를 잡는 게 아니라 여성인 상대가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팔의 높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이는 상대가 팔을 완전히 내린 다음 팔꿈치에서 손까지 한일(一)자로 가볍게 올려 잡을 수 있는 높이를 의미했다. 또한, 상대와의 그립은 일종의 멍키스패너 그립을 유지하고 그 위로 상대가 네 손가락을 걸치는 식이었다. 다른 운동에서도 이 그립은 쥐지 않아도 걸려있는 상대를 당기려 할 때 상당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거니와 엄지손가락이 꺾이는 부상을 방지하거나 상대의 손을 강하게 쥐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즉, 개인적인 생각으론 회전력이 빠른 춤에서 악력을 쓰지 않고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를 당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강사님은 리더와 팔러 각각의 겨드랑이에 계란 한 개가 들어갈 만큼의 폭을 유지하라고도 하셨다. 이는 팔을 L자 수직이 되게 올려보면 자연스럽게 팔이 몸 안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의식적으로 팔을 정면으로 유지하고 상대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왜 그 폭을 다른 것도 아니고 계란으로 정했는지, 또 강사님께서 처음으로 비유를 만드신 건지 아니면 그 비유가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그런 질문을 던질 겨를도 없이 여러 패턴을 이어서 연습했다.

"지터벅에서 했던 연습들은 그대로 린디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요."

그 전에 팔뤄 강사님께서 소셜 시간에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말씀에 힘입어 지터벅의 여러 동작들을 트리플 스텝에 맞춰 했었는데, 다행스럽게 그때 미리 해봤던 동작들이 많았다. 아직은 트리플 스텝이 바운스가 없는 점프 스텝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동작 자체는 이미 알고 있는 거라 대체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뭐든 기초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에 지터벅에서 유사한 동작을 쉬지 않고 연습하고 또 졸업 공연까지 한 보람이 있었다. 물론 안되는 것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턱 턴 회전이었다. 락스텝과 트리플 스텝 이후 바로 '스텝스텝'을 하면서 상대가 두 번 턴을 하도록 팔뤄 정수리에 팔을 올려만 두고 있으면 되는 동작이었는데, 지금껏 춤을 추면서 '락-스텝 트리플 스텝, 트리플 스텝' 이후 다시 똑같은 움직임으로만 춰서 그런지 몸이 다른 응용 스텝을 맞춰 따라가지 못했다. 팔뤄 누나가 "결국 스텝 스텝도 트리플 스텝과 박자가 같은 거야." 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몸이 내 맘처럼 따라가지 않았다. 그 밖에도 스윗하트나 허들도 배웠는데, 지터벅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어렵지 않았다.

여러 동작을 배우고 전체적으로 연습을 하니 어느덧 2시간이 벌써 지나고 말았다. 다음 수업을 위해 사람들이 들어왔고 일부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 춤을 느낌 있게 춘다고 생각해 매번 감탄하는 리더도 있었다. 소셜 시간 때, 이따금 그를 볼 때면 배울 점이 너무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부드러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유였다. 그와 추고 있는 상대를 보면 상대가 편안하게 출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는 걸 느끼곤 했는데, 수년을 춘 그와 동작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대가 안심할 수 있도록 저렇게 여유가 있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따금 그가 보여주는 즉흥적인 동작들이었는데, 이 역시 그가 가진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실수도 즐겁게 춤으로 녹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관찰 때문인지 소셜 때 생긴 버릇 중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춤을 추다가 주눅이 들거나 혹은 무언가 잘 안된다고 느낄 때, 잘하는 사람의 동작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모든 이들은 나의 스승이었고 앉아 있을 때의 나의 목표는 그들의 동작을 따라 해보고 나아가 완전히 내 것으로 훔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은 따라 하고 모방할 수밖에 없는 위치이지만,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은 그 모든 것들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나의 시간의 점뿐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시간의 점 위에 나를 새길 방법은 바로 그뿐이다.

아직은 이런 생각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 햇병아리라고 느끼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바 근처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계속 생각했다. 아직 날씨가 더웠고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다. 

"정확한 방향성이 필요해요."

리더 강사님이 거울 앞으로 오셔서 말씀하신다.

"어디로 움직일지 명확하게 움직여주세요. 앞으로 갈 거면 확실히 앞으로 가고 옆으로 가려면 확실히 옆으로 움직이세요. 그리고 지금 머리가 뜨잖아요. 상체는 띄우지 않도록 움직여주고요."

몇 곡을 연달아 트리플 스텝을 밟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초는 언제나 중요하며 나는 꽤 지루한 동작을 반복하는 걸 즐긴다. 그 덕분에 무릎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는 하지만….


"춤추는 게 주짓수보다 재밌죠?"

"아직은 주짓수가 더 재밌어요."

동호회에서 알게 된 주짓수 관장님이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낸다. 자신은 이 춤이 주짓수보다 더 재밌는 거 같다며 무대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농담을 한다.

"주짓수는 상대의 흐름을 깨뜨려 승리하는 거라면, 이 춤은 상대와의 흐름을 서로 맞춰나가는 거라 더 좋아요."

둘 다 나의 움직임에 대한 상대의 대응, 상대의 대응에 따른 나의 반응이라는 마치 대화와 같은 공통점이 있지만, 그의 말대로 주짓수는 그 대응을 깨뜨려 한쪽이 승리를 얻는 것이고, 스윙은 그 대응을 받아들여 양쪽 모두가 승리감을 얻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기는 사람이 존재하는 스파링이나 시합의 경우로 봐서 그렇고, 마치 동네 친구와 배드민턴을 치듯, 이길 생각이 없는 것이라면 주짓수 또한 춤처럼 서로의 흐름에 맞춰갈 수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체스나 장기와 같은 게임이 가지는 일대일의 승부라는 측면을 버려두고 이 운동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 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과 스윙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위대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흐름이다.

물 흐르듯 한 흐름. 주짓수에서도 통용되고 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며, 재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움직임에 해당하는 바로 그것! 바로 '흐름(flow)'이다. 음악의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따라 움직이며 상대의 흐름에 움직임을 맞춰 나간다. 춤을 잘 춘다는 것은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신선한 스타일, 또는 정형화되지 않는 파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리더는 몇 분간의 음악에 따라 나와 상대를 부드럽게 그 음악의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운전사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여러 멋진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그와의 대화 가운데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어두운 의자에 앉아 조명 아래에서 멋진 춤을 추고 있는 이들을 바라본다. 그녀는 날개가 달린 것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고 있다.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그 윤곽선이 선명하지 않지만, 그녀의 춤은 잘 추는 누구보다도 더 깊은 인상으로 박힌다. 다른 이는 매우 선명하다. 움직임이 사진처럼 선명하며 명확하다. 선명한 원색을 좋아할 것 같다. 또 다른 존재는 이제 막 배운 어린아이 같다.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즐기는 듯한 모습이 순수한 아이의 그림 일기처럼 즐겁다. 누구도 똑같지 않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표현들이 교차하며 다양한 그림을 만든다.

이들을 보며 나는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 하나 떠오른다. 《어둠의 심연》이라는 불멸의 책을 쓴 조셉 콘래드가 예술에 관해 쓴 글인데, 어둔 밤, 이 춤들 속에서, 세상사를 멈추고 순간이나마 그 광경 속에서 있던 나를 황홀케 했으니, 그렇게 만들어준 나타샤 같은 이들에게 헌정하는 겸, 이 글을 바친다. 


세상사로 바쁜 손길을, 한 번의 호흡을 하는 순간이나마 멈추게 하고, 요원한 목적의 광경에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로 하여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와 색채, 햇빛과 그림자의 비전을 잠시 보게 하는 것, 하던 일을 멈추고 한 번 보게 하며, 한숨을 한 번 쉬게 하고, 미소를 한 번 짓게 하는 것, 이것이 어렵고도 덧없는 예술의 목표인데, 이는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성취할 수 있도록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자격이 있거나 운 좋은 사람들에 의해 이 목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성취될 때 - 보십시오! - 삶의 모든 진실이 그곳에 나타납니다. 비전의 순간이, 한숨과 미소가 - 그리고 영원한 안식으로의 회귀가 말입니다. 《조셉 콘래드 『나르서스호의 검둥이』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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